강연 듣고 독서하러 극장으로?…몰입으로 넓어지는 상영관의 쓰임 [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8.26 08:29  수정 2026.08.26 08:33

CGV 북클럽·롯데시네마 강연까지…영화 밖으로 넓어지는 상영관의 쓰임

리클라이너·음향·독립된 공간 활용

대체콘텐츠에서 체류형 프로그램으로

영화관에 갔지만 영화는 보지 않는다. 대신 상영관 좌석에 앉아 책을 펼친다. 외부와 분리된 공간에서 두 시간 동안 독서에 집중하고, 다른 날에는 같은 공간에서 역사나 예술에 관한 강연을 듣는다. 영화 관람을 위해 만들어진 상영관의 쓰임이 달라지고 있다. 스크린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를 넘어 관객이 일정 시간 머물며 하나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활용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CJ CGV·롯데컬처웍스

CGV는 지난 10일 씨네드쉐프 용산 스트레스리스 시네마에서 'CGV 북클럽 with 오디세이아'를 진행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 개봉을 기념해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참가자 전원에게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아'를 제공하고 약 2시간 동안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회차에 따라 휘낭시에와 쿠키, 샌드위치와 디저트, 커피 등도 함께 제공했다.


CGV가 극장에서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개봉에 맞춰 'CGV 북클럽 with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열었다. 참가자에게 원작 도서를 제공하고 프리미엄 리클라이너 상영관인 스트레스리스 시네마에서 약 2시간 동안 자유롭게 읽도록 했다. 당시에는 작품의 우주 배경을 활용한 영상과 음악도 더했다. CGV는 지난해 만우절에도 같은 상영관에서 독서와 간식, 식사를 함께 즐기는 '씨집책방 독서 전용관'을 운영했다. 일회성 이벤트로 시작한 극장 독서가 영화 IP와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이어진 셈이다.


팬데믹 이후 영화관이 영화 이외의 콘텐츠를 받아들인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극장들은 관객 감소와 영화 개봉 편수 축소에 대응해 스포츠 경기 생중계와 콘서트·공연 실황, 팬미팅, 강연 등으로 프로그램을 넓혀왔다. 영화 대신 야구나 축구 경기를 함께 응원하거나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설을 통해 공연을 즐기는 식이다. 상영하는 콘텐츠의 종류는 달라졌지만 기본적인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크린에 무언가를 보여주고 관객은 이를 보기 위해 좌석을 구매하는 구조였다.


최근 등장한 북클럽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CGV 북클럽에서 스크린은 프로그램의 중심이 아니다. 참가자는 각자 책을 펼쳐 읽고 극장은 이를 위해 좌석과 조명, 음악, 음식과 음료 등을 제공한다. 지난 3월 '프로젝트 헤일메리' 북클럽에서는 작품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영상도 활용했지만 프로그램의 핵심은 원작을 읽으며 두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오디세이아' 북클럽 역시 마찬가지다. 극장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관객이 이를 관람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관객이 직접 독서라는 활동을 하는 동안 극장은 이를 위한 환경을 제공한다.


더욱이 독서는 반드시 영화관에 가야 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니다. 집에서도, 카페나 도서관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극장을 찾는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씨네드쉐프 용산의 스트레스리스 시네마는 리클라이너 좌석을 갖춘 프리미엄 상영관이다. 여기에 정해진 시간 동안 같은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함께 책을 읽고 음식과 음료를 즐기는 프로그램을 얹었다. 책 한 권뿐 아니라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련된 환경과 일정한 시간을 하나의 경험으로 묶는 방식이다.


이는 극장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기존 멀티플렉스에서 상영관은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를 관람하기 위한 공간이었고, 스포츠 중계나 공연 실황 등 대체콘텐츠가 늘어난 뒤에도 이러한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북클럽에서는 외부와 분리된 공간, 편안한 좌석, 조명과 음향, 일정한 체류 시간 등 기존에는 영화 관람을 뒷받침하던 상영관의 조건들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활용된다. 상영관의 시설과 환경이 콘텐츠를 담는 배경에서 하나의 경험을 만드는 요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롯데시네마와 교보문고의 협업은 이러한 공간 활용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양사는 극장 공간을 활용한 문화 프로그램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강연은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설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CGV 북클럽과는 차이가 있지만, 영화 상영을 넘어 관객이 극장에 머물며 지식과 취향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다.


지난 8일에는 교보문고 '시네마틱 클래스'의 '심용환의 신화의 역사: 오디세이에서 중국 신화까지, 인간은 왜 신화를 만들었나' 시리즈가 시작됐다. 영화 '오디세이'와 연계해 신화와 역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으로 다음 달 16일까지 이어진다. 교보문고의 도서 강연 커뮤니티 '보라(VORA)'도 롯데시네마에서 열린다. 다음 달 9일 김미경의 강연을 시작으로 11월에는 송길영 작가의 강연이 예정돼 있다.


다루는 분야도 넓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 여행을 코스 요리에 비유해 풀어내는 이서준 도슨트의 강연이 이달 진행됐으며, 다음 달에는 바티칸 박물관과 프라도 미술관을 다루는 '씨네뮤지엄' 강연이 예정돼 있다. 영화와 직접 연결된 원작·역사 콘텐츠에서 인문·예술 분야까지 상영관에 들어오는 콘텐츠의 범위가 넓어지는 모습이다.


이수정 롯데컬처웍스 커뮤니케이션팀 책임은 "롯데시네마는 대형 스크린과 음향, 객석 등 극장이 가진 인프라를 활용해 교보문고와 독서·인문 강연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며 "실제 '심용환의 신화의 역사' 첫 강연이 전석 매진되는 등 새로운 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 확인하고 있다. 앞으로도 극장 인프라의 강점을 살린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CGV와 롯데시네마의 접근 방식은 조금 다르다. 롯데시네마의 강연 프로그램이 대형 스크린과 음향 등 극장이 갖춘 시설을 다른 문화 콘텐츠에 활용하는 방식이라면, CGV의 북클럽은 스크린의 역할을 줄이고 좌석과 분위기, 일정한 체류 시간 등 상영관의 공간적 특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스포츠·공연처럼 '다른 것을 상영하는 것'에서 강연과 클래스 등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진 데 이어, 이제는 독서처럼 상영관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지까지 극장의 새로운 시도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극장이 관객을 불러들이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OTT가 보편화된 이후 극장들은 IMAX와 돌비시네마 등 특별관을 앞세워 집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관람 경험을 강화해왔다. 이제는 그 차별화가 영화 관람 밖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찾던 상영관에서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극장들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뿐 아니라 '관객이 이곳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