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관노의 난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반란 [정명섭의 실패한 쿠테타 역사㊸]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8.25 14:01  수정 2026.08.25 14:01

최충헌과 그의 자식들이 정권 장악하던 고려, 백성들은 대를 이어 고통 받아

충주부사 우종주, 몽골군 피해 도망 갔다가 돌아와 백성들 은그릇 갈취

목숨 걸고 충주성 지킨 충주 노비들과 천민들, 도둑 취급 받으며 죽어가

우리는 세상에 정의가 존재하기를 바란다. 악당과 나쁜 놈은 패배해서 죽거나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승리를 쟁취하고 행복하기 사는 엔딩을 원한다. 그래서 헐리우드를 비롯해서 많은 국가의 영화에서는 이런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역설적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악당이 시원스럽게 몰락하는 이유는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일 수 도 있다.


최충헌과 그의 자식들이 정권을 장악하던 시기의 고려가 딱 그랬다. 최종 보스인 악당이 존재하고, 아부와 아첨의 달인들이 주변에 포진한 상태에서 국가는 휘청거리고 백성들은 대를 이어 고통을 받는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몽골군이 자신들의 사신인 저고여가 피살당했다는 명분으로 고려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집권자인 최우는 자신의 안위만 걱정할 뿐 위기에 빠진 국가를 구하겠다는 마음가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의 측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를 정복한 몽골군이 쳐들어오고, 각 지역의 백성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충주성 역시 그런 운명에 처했다. 다행스럽게도 충주성은 몽골군의 침략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고종 18년에 벌어진 몽골군의 제1차 침략은 지휘관인 살리타이가 처인성에서 김윤후에게 사살되면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비극적인 갈등이 시작되었다. 고종 19년인 서기 1232년 1월 고려사절요의 기록을 살펴보자.


우종주는 양반별초(兩班別抄)를 거느리고, 유홍익은 노군·잡류별초(奴軍雜類別抄)를 거느리고서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였다. 몽고군이 이르자 우종주·유홍익과 양반 등은 모두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오직 노군과 잡류가 힘을 합하여 격퇴하였다.


우종주는 충주 부사였고, 유홍익은 판관이었다. 몽골군으로부터 충주성을 지키라고 보냈는데 정작 둘은 갈등을 빚었고, 그들이 거느리고 있던 수비군들도 신분에 따라 다퉜다. 그러다가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유홍익과 양반별초들은 도망쳤고, 노군, 즉 노비들과 하층민들이 힘을 합쳐서 몽골군을 몰아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돌아온 우종주가 관가와 민가의 은그릇이 부족하다고 트집을 잡았다. 성을 지키던 유홍익과 수비군들로서는 기가 막혔을 것이다. 자기 목숨 지키자고 도망칠 때는 언제고 몽골군이 물러나니까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은그릇을 내놓으라고 했으니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 호장을 비롯한 양반들이 노비들의 우두머리를 죽이려고 모의했다. 이 사실을 안 노비들은 분노가 하늘 끝까지 치밀어올랐고, 결국 선수를 치기로 한다. 몽골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른다는 명분으로 동료들을 모으고 나발을 불어서 반란이 시작을 알렸다. 노비들을 죽이기로 모의한 호장과 지배층들의 집을 습격한 그들은 가담자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남김없이 죽였다. 관노들의 반란이라고 나온 것을 보면 관청에 속한 노비들이 주도한 반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충주 탄금대에서 바라본 남한강ⓒ직접 촬영

보고를 받은 최우는 안무별감을 보내서 회유하기로 한다. 제대로 보고를 받았다면 진압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정에서 파견한 안무별감들은 임무를 잘 수행했다. 노군도령 지영수와 승려 우본이 개경으로 왔는데 이들에게 포상을 한 것을 보면 충주성에서 반란을 일으킨 노비들 역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당시로서는 드물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추가된 기록을 보면 배드엔딩이었다. 충주를 비롯한 각지에서 벌어진 반란을 평정하는 전문가였던 이자성의 열전을 보면 안타까운 결말이 나온다.


그가 강화도 천도로 인한 혼란을 틈타 어사대의 조예 이통이 벌인 반란을 진압한 다음에 나온 기록이 바로 충주 노비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내용이었다. 세가의 기록을 보면 처음에는 좋게 해결된 모양인데 최우의 마음이 바뀐 건지 아니면 다른 돌발사태가 벌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이끄는 진압군이 충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달천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놓고 있는데 충주성에서 온 반란군들이 주모자를 제거하는 조건으로 항복을 제안한다. 이자성은 주모자만 처벌하겠다고 약속하자 그들은 돌아가서 승려 우본의 목을 베어서 건넨다. 우본은 앞서 개경으로 온 기록이 있는데 그 사이에 다시 돌아가서 반란을 일으킨 것 같다. 우본이 죽고 성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간 이자성은 약속대로 주모자들만 처형한 후에 개경으로 돌아간다. 보고를 받은 최우는 나름 공평하고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뿌듯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몽골군을 물리친 충주의 노비들과 천민들 입장에서는 돌아온 자들에 의해 도둑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먼저 제거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충주성을 지킨 댓가는 반란군이라는 타이틀과 참혹한 죽음 뿐이었다.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승리하는 몽골의 침입 시기 벌어진 수많은 베드앤딩의 시작이었다.



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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