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는 돌려쓰고, 충무로는 못 키우고…극장가 '차세대 무비 스타' 난항 [영화 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8.24 10:27  수정 2026.08.24 10:29

홀랜드·젠데이아·퓨, 95·96년생 배우들 대형 프로젝트 잇단 주연

국내 OTT선 20~30대 스타 잇따라 등장…극장 주연으로 성장할 작품은 부족

위축된 제작·투자에 끊어진 성장 경로…극장 시장 반등이 새 변수

최근 극장가에서 같은 할리우드 배우를 연이어 만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1995년생 티모시 샬라메와 1996년생 톰 홀랜드·젠데이아·플로렌스 퓨부터 1986년생 로버트 패틴슨까지, 비교적 젊은 주연 배우들이 굵직한 프랜차이즈와 대작을 오가며 스크린을 채우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스타는 등장했지만, 정작 그 흐름을 이어갈 주연급 배우군은 좀처럼 넓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와 이달 5일 개봉한 '오디세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96년생 동갑내기인 톰 홀랜드와 젠데이아가 두 작품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에서 피터 파커와 MJ로 호흡을 맞춘 홀랜드와 젠데이아는 '오디세이'에서는 각각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와 여신 아테나로 변신했다.


1986년생 로버트 패틴슨 역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디세이'에서 안티노오스를 연기한 그는 다음 달 젠데이아와 예비 부부로 호흡을 맞춘 '더 드라마'로 다시 관객을 찾는다.


톰홀랜드·젠데이아·티모시 샬라메·로버트 패틴슨ⓒ뉴시스/AP·데일리안 방규현 기자·뉴시스/AP

몇몇 배우의 작품이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몰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범위를 최근 몇 년으로 넓히면 특정 배우에게 대형 프로젝트가 집중되는 흐름은 더욱 선명해진다. 1995년생 티모시 샬라메와 1996년생 플로렌스 퓨 역시 프랜차이즈와 작가주의 영화를 오가며 할리우드 대작의 주요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1990년대 중반생 배우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샬라메는 1995년생, 홀랜드와 젠데이아, 퓨는 모두 1996년생이다. 여기에 이들보다 한 세대 앞선 1986년생 패틴슨까지 여전히 대형 프로젝트의 주요 주연으로 활약하고 있다. 할리우드가 젊은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아닌 셈이다. 문제는 대규모 제작비와 글로벌 흥행을 맡길 수 있는 배우군이 이들 몇 명을 중심으로 좀처럼 넓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이후 북미 극장 시장이 회복되고 대작 제작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제작비가 커질수록 실패에 따른 부담도 커진다. 글로벌 인지도와 연기력, 프랜차이즈 적응력까지 검증된 배우를 찾다 보면 결국 익숙한 몇몇 이름으로 선택지가 모이게 된다.


한국영화도 '다음 무비 스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지만 상황은 조금 다르다. 조인성, 박정민, 류준열, 구교환, 변요한 등 40대 배우들이 상업영화의 주요 주연으로 자리를 넓히며 중심 연령대가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20~30대로 내려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박지훈ⓒ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드라마와 OTT에서는 새로운 얼굴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한 작품으로 국내외 팬덤을 확보하고 단숨에 주연으로 올라서는 20~30대 배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극장에서는 배우의 이름 자체가 관객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무비 스타'로 자리 잡은 젊은 배우를 꼽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올해 이 흐름을 깬 대표적인 사례가 1999년생 박지훈이다. 박지훈은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을 연기하며 극장 흥행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지난 2월 개봉한 영화는 4월 누적 관객 1628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박지훈의 이전 출연작까지 다시 주목받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런 점에서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젊은 배우에게도 극장 관객을 움직일 힘이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제작사 측 역시 유해진이라는 기존 스타의 캐스팅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배우를 기용하는 선택이 가능했다고 밝힌 바 있다. 흥행 이후에는 이번 성공이 미래 세대 창작자와 배우에게 더 많은 기회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지훈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한국영화가 안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젊은 배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극장에서 주연으로 시험받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관객에게 각인할 작품이 충분한지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산업은 아직 팬데믹 이전의 규모를 완전히 되찾지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극장 관객은 1억 609만명으로 전년보다 13.8% 감소했고 매출액 역시 12.4% 줄었다. 한국영화 흥행 부진이 전체 시장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2025년에는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천만 영화가 한 편도 나오지 않았다.


시장 위축은 배우가 성장하는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과거에는 다양한 규모의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신인이나 조연 배우가 작은 작품의 주연을 맡고, 흥행과 연기력을 인정받아 더 큰 영화로 이동하는 경로가 존재했다. 영화 제작과 투자가 위축되고 작품 수가 줄면 이 과정에서 배우가 경험을 축적할 기회도 함께 감소할 수밖에 없다.


올해 극장 시장이 빠르게 살아나고 있다는 점은 새로운 변수다. 상반기 극장 관객은 약 3737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9% 증가했다. 이 같은 성장세를 주도한 작품은 1600만 관객을 돌파한 '왕과 사는 남자'였다. 시장의 반등이 새로운 배우들에게 더 많은 기회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다음 과제다.


결국 할리우드와 한국영화가 겪는 고민은 닮은 듯 다르다. 할리우드는 티모시 샬라메, 톰 홀랜드, 젠데이아, 플로렌스 퓨를 비롯해 패틴슨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비교적 젊은 스타들을 대형 프로젝트의 중심에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대체하거나 뒤따를 선택지가 충분히 넓어지지 않으면서 소수 배우에게 작품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영화의 고민은 다른 지점에 있다. 드라마와 OTT를 통해 젊은 스타 후보는 계속 등장하지만 이들이 극장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무비 스타'로 성장할 무대가 충분하지 않다. '왕과 사는 남자'의 박지훈이 보여준 것은 젊은 영화 스타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새로운 얼굴을 과감하게 전면에 내세웠을 때 관객이 반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할리우드가 이미 만들어진 젊은 스타 몇 명을 '돌려쓰는' 문제를 안고 있다면, 충무로에는 새로운 스타를 지속적으로 '키워낼' 환경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았다. '왕과 사는 남자'로 가능성을 증명한 박지훈이 또 다른 흥행작의 주역으로 자리 잡고, 그 뒤를 이을 20~30대 배우들이 계속 등장하려면 한 번의 기용과 성공을 다음 작품의 기회로 연결하는 선순환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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