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통과…노사갈등 여전
‘실질적 지배력’ 개념 모호…사법부 해석에 따라 결정
“지침 없으면 법 판단도 ‘뒤죽박죽’…정의로운 판결 아냐”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동계가 ‘20년 숙원’으로 불러온 법안이 마침내 입법화 된 것이다.
다만 개정된 법 조항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6개월 유예기간 후 시행된다. 그동안 노사갈등과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가장 큰 쟁점은 ‘실질적 지배력’ 개념의 모호성이다. 개정법은 사용자를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규정해 원청도 교섭 의무를 부담하게 했다.
이 때문에 ‘실질적 지배력’의 구체적 범위가 법률상 제시되지 않아, 결국 사법부의 해석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질적’이라는 표현은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명확한 지침이 없으면 법원의 판결도 기준 없이 뒤죽박죽될 수 있다. 이는 정의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교섭 절차 두고 논란…“노노갈등 키운다”
교섭 절차 역시 해결해야 할 난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의2(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따르면,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조직형태에 관계없이 근로자가 설립하거나 가입한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인 경우 노동조합은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하여 교섭을 요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쉽게 말해 노조가 2개 이상 존재하더라도 교섭창구는 하나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적용할 경우 원청과 하청 노조의 상충된 이해관계 때문에 공동 교섭이 원활히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노사갈등뿐 아니라 노노갈등도 야기시킬 수 있다”며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하면 원청 노조의 이익을 침범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갈등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노란봉투법은 기업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해치는 혼란을 가져올뿐 아니라 노동자의 권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쟁의행위의 범위가 경영상 결정까지 확대된 점도 논란이다. 정리해고, 구조조정, 외주화와 등 근로조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면 노동계의 파업 사유로 인정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6단체는 법 통과 직후 “사실상 모든 경영 의사결정이 파업 대상이 될 것”이라며 “경영 자율성 침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파업 손해배상 청구 제한도 쟁점이다. 개정안은 법원이 노동자의 지위·역할·참여 정도에 따라 책임을 차등 산정하도록 했으며, 과도한 배상액은 감면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계는 이를 ‘입막음 소송’ 완화로 환영했지만, 경영계는 “불법 파업의 면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발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안이 담고 있는 모호성을 해소해야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며 “시행령은 구체적이고 명백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시행령에는 기업의 방어권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포함해야 한다”며 “특히 기업이 노조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수단과 절차에 대한 지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재계 “사용자 방어권 입법화해야”…노동계, 환영 일색
경제 6단체는 본회의 직후 공동 입장문을 내고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개념이 확대됐지만 불명확하다”며 후속 입법을 촉구했다. 이들은 국제 표준에 맞춰 “대체근로 허용 등 사용자의 방어권도 입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법을 ‘경제 내란법’으로 규정하며 헌법소원 제기를 준비 중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법 통과 직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에 강행 처리되는 악법들의 위헌성을 검토하고 강력한 추가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다.
노동계는 환영 일색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법안이 시행될 때까지 교섭 방식과 대상을 두고 치열한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며 “2026년을 ‘비정규직·특수고용 노동자 권리 쟁취 전환의 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입장문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특고·하청·플랫폼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을 상대로 노조를 설립할 권리를 대폭 확대할 길이 드디어 열렸다”고 환영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꾸준히 노란봉투법 입법 의지를 밝혀왔다는 점에서 법 통과 의의가 크다고 자평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사용자성이 제대로 인정되지 못해 새로운 갈등이 생겨났고, 기업의 손해배상·가압류 등이 노동권을 억제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며 “노란봉투법은 노동시장의 비정상을 정상화시킨 것으로, 법 시행을 통해 취약 노동자의 노동권이 개선되고 노동 이중구조가 완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유예기간 TF구성…제도 보완 및 재계 우려 경청
정부는 법 시행까지 남은 6개월 안에 행정 지침 등을 통해 제도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6개월 동안 태스크포스(TF)를 구성·운영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경영계 등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집중한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개정법의 실제 적용과 관련한 의견을 상시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노사 소통창구를 TF에 설치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이해당사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해 법 시행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제시되는 판례와 판단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원청 사용자성 판단 기준, 교섭 절차, 노동쟁의의 범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도 정교하게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고용부는 지방고용노동청을 통해 노란봉투법에 취약할 수 있는 권역별 주요 기업들을 진단하고, 필요시 컨설팅을 지원해 원하청이 상생할 수 있는 교섭사례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훈 고용부 장관은 “이번 개정은 투쟁과 대결이 아닌 책임 있는 대화와 타협의 노사관계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며 “무분별한 교섭이나 무제한 파업, 불법파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면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