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관객 시대의 ‘성장 고민’에서 1억 관객 시대의 ‘생존 고민’으로
특별관 키우고 할인권 풀고 홀드백 논의까지
극장은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다음’을 준비했다. 관객 변화에 맞춰 특별관을 키웠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장에는 극장에서만 가능한 경험으로 맞섰다. 코로나19로 시장이 멈추자 긴급 지원과 포스트코로나 정책이 뒤따랐고, 이후에도 관람 활성화와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대책이 이어졌다. 그중 특별관처럼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은 해법도 있다. 그런데 2026년 극장가는 여전히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넷플릭스가 국내 서비스 진출 한 해 전,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부는 ‘관객 변화에 따른 멀티플렉스의 미래 전략-극장, 미래를 대비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당시 국내 극장 관객은 연간 2억명을 넘어섰고, 2019년에는 역대 최대인 2억 2668만명까지 성장했다. 극장이 지금과 같은 침체를 겪기 전부터 이미 다음 성장 동력을 고민하고 있었던 셈이다.
해당 보고서에 인용된 CJ CGV 관계자는 한국의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데다 절대적인 인구 규모에도 한계가 있어 향후 성장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관객을 계속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진단이었다.
ⓒAI 이미지
이후 극장을 둘러싼 환경은 예상보다 빠르게 달라졌다.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창구가 넓어졌다.
그렇다고 극장 시장이 바로 위축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2019년 국내 극장 관객은 2억 2668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극한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 ‘겨울왕국2’, ‘알라딘’, ‘기생충’ 등 천만영화도 5편이나 나왔다. 극장의 다음을 걱정하는 목소리와 시장의 성장이 한동안 동시에 이어진 것이다.
SCREENX 상영 장면 연출 이미지ⓒCJ CGV
극장업계가 찾아온 답 가운데 하나는 ‘극장에서만 가능한 경험’이었다. IMAX와 4DX, 스크린X(ScreenX) 등 특별관은 OTT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지만,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 일상화될수록 그 역할은 커졌다. OTT의 편의성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큰 화면과 음향, 공간 등 집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경험으로 차별화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 이후 이 전략은 더욱 힘을 받았다. 영진위의 ‘202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4D·IMAX·스크린X·돌비시네마 등 특수상영 매출은 1264억원으로 전년보다 271.2% 증가했다. 특수상영 관객도 865만명으로 252.2% 늘었다. 전체 극장 매출의 10.9%, 관객의 7.7%가 특수상영에서 나왔다.
최근 이 흐름이 한층 뚜렷해졌다. 2025년 전체 극장 관객이 전년보다 13.8% 감소한 가운데 특수상영 매출은 46.3% 증가한 1110억원, 관객은 52.4% 늘어난 739만명을 기록했다. 전체 시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특별관은 반대 방향으로 성장했다.
올해도 대형 작품을 중심으로 IMAX와 4DX, 스크린X, 돌비시네마 등에 수요가 몰리고 극장업계는 관련 시설 확대와 리뉴얼에 힘을 싣고 있다. 특별관은 블록버스터를 더 화려하게 즐기는 선택지를 넘어 관객 감소 시대 극장이 수익을 확보하는 주요 축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10년 전부터 극장업계가 찾아온 ‘극장에서만 가능한 경험’이라는 답이 현재 가장 선명한 성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관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요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특별관의 성장이 보여준다.
다만 특별관이 성장하는 동안 극장 시장 전체가 함께 커진 것은 아니었다. 2025년 특수상영 관객이 큰 폭으로 증가한 같은 해 전체 극장 관객은 감소했다. 영진위의 ‘2023년 영화 소비자 행태조사’에서도 특별관 관람 경험이 없다는 응답은 53.8%였다. 특별관에 대한 강한 수요가 형성되는 것과 전체 관객의 극장 방문이 늘어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남아 있다.
가격을 둘러싼 흐름에서는 극장산업이 처한 상황이 더욱 복잡하게 나타난다. 극장업계는 관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관람 경험의 가치를 높이고 객단가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특별관과 프리미엄관이 대표적이다. 일반 관람료도 코로나19를 거치며 올랐다. 2022년 평균 관람요금은 1만285원으로 처음 1만원을 넘어섰다.
반면 정부의 관람 활성화 정책은 가격 부담을 낮추는 방향에서 나왔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산업에 170억원을 추가 투입하고 영화발전기금 부과금을 한시적으로 감면하는 한편 6000원 영화관람 할인권을 지원했다. 감염 우려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극장 방문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관객 수요를 되살리기 위한 긴급대책이었다.
5년 뒤 같은 금액의 할인권이 다시 등장했다. 문체부와 영진위는 2025년 271억원을 투입해 6000원 할인권 450만장을 배포했다. 코로나19와 같은 물리적인 관람 제약이 사라진 뒤였지만 이번에는 장기간 침체한 영화산업과 극장 수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2020년과 2025년의 위기는 달랐지만, 관객을 움직여야 한다는 과제는 이어졌다. 한편에서는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관객을 겨냥한 특별관이 성장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공공 재정을 투입해 관객이 체감하는 가격을 낮췄다. 관객 감소에 대응하는 방식도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지 않은 셈이다.
극장과 온라인 플랫폼 사이의 유통질서를 둘러싼 고민도 형태를 바꾸며 계속됐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둘러싼 논쟁은 극장과 OTT의 충돌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극장 개봉 영화는 일정 기간 극장에서 상영한 뒤 IPTV 등 부가시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옥자’를 극장과 자사 플랫폼에서 같은 날 공개하기로 했다. 극장에 먼저 영화를 공급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기존 유통 순서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국내 3대 멀티플렉스는 이에 반발해 ‘옥자’를 상영하지 않았다.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동시에 영화를 볼 수 있게 되면 극장에 우선적인 상영 기간을 보장해온 기존 유통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국내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멀티플렉스 3사가 빠지면서 ‘옥자’는 대한극장과 서울극장 등 비(非)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관객을 만났다.
논쟁은 한 작품을 어느 극장에서 볼 수 있느냐에 그치지 않았다. OTT가 영화에 직접 투자하고 극장과 온라인에서 동시에 작품을 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극장이 반드시 영화의 첫 번째 상영 창구여야 하는지, 극장에는 얼마만큼의 독점적인 상영 기간을 보장해야 하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OTT가 영화산업의 주요 유통 주체로 성장할 경우 극장과 온라인 플랫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 지라는 질문도 함께 던져졌다.
코로나19는 이 문제를 다시 다른 단계로 옮겨놓았다. 극장 개봉을 준비하던 작품들이 OTT로 향했고 극장과 온라인 사이의 경계도 빠르게 흐려졌다. 영진위는 2020년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 추진단’을 꾸려 코로나19 이후 영화산업의 변화를 논의했고, 이듬해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 2022’를 발표했다. 영화계 22개 분야 전문가 46명과 외부 전문연구원 8명, 정책패널 199명이 참여해 5대 정책과제와 11개 세부과제를 마련했다. 디지털 미디어 확산에 따른 법·제도 정비도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팬데믹 이후에도 논의는 계속됐다. 영진위는 2023년 멀티플렉스와 투자·배급사, IPTV 등을 대상으로 9차례 긴급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후 ‘한국 영화 재도약 정책 실무 협의체’를 통해 6차례 회의를 이어간 뒤 같은 해 9월 ‘한국 영화 산업 위기 극복 정책 협의회’를 출범시켰다.
논의 테이블에는 홀드백을 비롯해 티켓 객단가와 스크린 운영 등 영화산업의 수익구조와 관련된 문제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제작·배급사와 극장, IPTV 등 각 주체의 이해관계가 달라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홀드백은 이후에도 주요 의제로 남았다. 2025년에는 극장 상영 종료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OTT 등에 영화를 공급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올해 5월에는 문체부와 영진위가 ‘한국 영화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다시 출범시켰다.
2017년 ‘옥자’에서 불거진 질문이 9년 뒤에도 이어지고 있지만, 쟁점의 범위는 훨씬 넓어졌다. 당시에는 극장과 온라인의 동시 공개를 허용할 것인지가 갈등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극장과 부가시장 사이의 수익 배분과 OTT의 콘텐츠 확보, 중소 배급사의 수익 회수, 관객의 선택권까지 맞물린 유통구조의 문제로 확장됐다.
홀드백 논의는 올해도 진행형이다. 민관협의체는 극장 개봉 이후 구독형 OTT 공개까지 일정한 유예기간을 두는 자율협약을 추진했지만 적용 기간과 대상을 놓고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갈렸다. 당초 지난달까지 협약을 마련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합의는 지연됐다.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 지속발전 특별위원회’ 발족식ⓒ영화진흥위원회 제공
9월에는 또 하나의 논의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영진위는 영화계 현장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국영화 지속발전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선순환 생태계 복원과 투자 활성화, 영화 향유 기반 확대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2023년 ‘한국 영화 산업 위기 극복 정책 협의회’, 올해 5월 ‘한국 영화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민관협의체’에 이어 다시 새로운 기구가 꾸려진 것이다.
새로운 논의 테이블이 계속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지난 대응이 효과가 없었다는 의미로만 볼 수는 없다. 하나의 답을 찾는 동안 문제의 성격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별관은 실제 수요를 만들어냈지만, 전체 관객 감소라는 과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했다. 코로나19 당시에는 극장에 관객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 자체가 시급했다면 팬데믹 이후에는 가격과 관람 빈도 등이 새로운 고민으로 떠올랐다. 홀드백 역시 극장과 OTT의 대립에서 여러 유통 주체의 수익과 관객의 선택권이 얽힌 문제로 범위가 넓어졌다.
2015년에는 연간 2억명 이상이 극장을 찾는 시장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2026년에는 1억명대로 줄어든 시장에서 어떤 관객이 어떤 영화에 얼마를 지불하고 극장을 찾을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10년 동안 이어진 것은 같은 위기가 아니라, 시장이 달라질 때마다 다시 등장한 ‘극장의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사이 가장 크게 달라진 변수 가운데 하나는 관객이다. OTT가 영화 소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고 유튜브와 숏폼 등 콘텐츠를 소비할 선택지도 크게 늘었다. 극장이 새로운 경험과 제도를 마련하는 동안 관객이 영화를 보고, 시간을 쓰고, 극장을 찾는 방식도 달라졌다. 10년 동안 극장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새로운 답을 내놨다. 그런데도 미래를 다시 걱정하고 있다면 이제 또 하나의 대책을 보태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