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56곳 동시 분석하는 진단 기술 개발
미진단 소뇌실조증 환자 32.4%서 원인 확인
검사부터 분석까지 25시간…진단 활용 가능성 제시
nCATS–STRiker 기반 반복서열 확장질환 진단 워크플로우. ⓒ서울대병원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여러 검사를 반복해야 했던 소뇌실조증 환자의 유전적 원인을 하루 이틀 만에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 기술이 개발됐다. 국내 연구진이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반복서열(STR) 확장’ 관련 유전자 56곳을 한 번에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다.
17일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문장섭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와 배상수 서울의대 생화학교실 교수 공동 연구팀은 기존 유전자 검사로도 원인을 찾지 못했던 소뇌실조증 환자에게 새로운 진단 기술을 적용한 결과, 약 32%에서 질병 원인이 되는 유전자 이상을 새롭게 확인했다.
‘반복서열 확장질환’은 유전자 속 특정 염기서열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반복되면서 뇌와 신경계 등에 이상을 일으키는 유전질환이다. 몸의 균형을 잡거나 움직임을 조절하기 어려워지는 소뇌실조증이 대표적이다. 현재까지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 부위는 56곳이 알려져 있으며 새로운 부위도 계속 보고되고 있다.
다만 기존 검사로는 길게 늘어난 반복서열의 구조와 반복 횟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워 원인을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 실제 이번 연구에서 원인이 확인된 환자들은 증상이 나타난 뒤 확진까지 평균 8.9년이 걸렸다.
미진단 소뇌실조증 환자 대상 임상 적용 성과.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 가위(CRISPR-Cas9)를 이용해 질환과 관련된 56개 유전자 부위만 골라낸 뒤 긴 염기서열을 직접 읽는 3세대 나노포어 시퀀싱 기술을 적용했다. 여기에 복잡한 반복서열 패턴을 자동으로 판독하고 시각화하는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 ‘STRiker’를 결합했다.
이를 통해 한 번의 검사로 56개 유전자 부위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게 됐다. 환자의 혈액에서 추출한 DNA 5㎍만 있으면 검사가 가능하며 DNA 추출부터 검사 준비, 시퀀싱까지 걸리는 시간은 총 25시간이다. 이후 전산 분석은 수 분 안에 마칠 수 있다.
실제 미진단 환자에게 적용한 결과도 확인됐다. 연구팀이 최신 유전자 검사를 받고도 원인을 찾지 못했던 소뇌실조증 환자 37명을 분석한 결과, 12명(32.4%)에서 질병 원인이 되는 반복서열 확장을 새롭게 발견했다.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문장섭·이승복 교수, 서울의대 생화학교실 배상수 교수. ⓒ서울대병원
유전자별로는 FGF14에서 4명, ATXN8OS·NOP56·RFC1에서 각각 2명, PRNP·NOTCH2NLC에서 각각 1명이 확인됐다. 특히 PRNP 반복서열 확장은 아시아인에서 처음 보고된 사례다. 연구팀은 진단된 환자의 가족까지 추가로 검사해 5개 가족의 친척 6명에서도 같은 유전자 이상을 확인했다.
새로운 기술은 반복서열뿐 아니라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DNA 메틸화’ 상태까지 함께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유전자를 별도로 복제하거나 증폭하지 않고 원래 상태 그대로 긴 염기서열을 읽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구팀이 NOTCH2NLC 유전자의 반복서열 확장이 나타난 두 가계를 분석한 결과, 어머니에게서 자녀로 유전될 때 반복서열은 더 길어졌지만 메틸화도 함께 증가하면서 자녀에게서는 오히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일부 반복서열 확장질환에서는 반복 길이뿐 아니라 메틸화 상태를 함께 분석하는 것이 질환의 발현 양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이 소뇌실조증뿐 아니라 반복서열 확장이 원인이 되는 다른 유전질환의 진단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존 검사로 원인을 찾지 못한 환자의 진단 가능성을 높이고 오랜 기간 여러 검사를 반복하는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문장섭 교수는 “그동안 여러 검사를 거치고도 원인을 찾지 못했던 소뇌실조증 등 반복서열 확장질환 환자들에게 새로운 진단 기회를 제공한 연구”라며 “앞으로 더욱 많은 환자가 수년에 걸친 진단 여정을 거치지 않고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IF 14.1)’ 최신호에 게재됐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