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8년 만의 신작·나홍진 네 편 연속 칸행…감독 이름값도 팽팽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년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한국 대표 출품작 공모 결과를 발표한 가운데 나홍진 감독의 '호프'와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총 6편의 출품작 가운데 특히 두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작품성뿐 아니라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이 세계 시장으로 향하는 서로 다른 제작·투자·유통 구조를 각각 보여주기 때문이다. '호프'가 전통적인 극장 중심 투자·배급 시스템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면, '가능한 사랑'은 글로벌 OTT 자본을 기반으로 완성된 사례다. 두 작품은 우열을 가리는 경쟁을 넘어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한국 영화가 선택하고 있는 서로 다른 생존 모델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창동·나홍진 감독ⓒ넷플릭스·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공모에는 '군체'(연상호 감독), '살목지'(이상민 감독), '가능한 사랑'(이창동 감독), '호프'(나홍진 감독), '프로젝트 Y'(이환 감독),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김동호 감독) 등 총 6편이 출품됐다. 업계에서는 작품성과 해외 경쟁력, 감독의 국제적 위상 등을 종합할 때 한국 대표 출품작은 사실상 '호프'와 '가능한 사랑'으로 압축된 분위기다.
두 감독 모두 세계 영화계에서 검증된 이름이라는 점도 강점이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 등을 통해 칸과 베니스를 비롯한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꾸준히 수상과 초청을 이어오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한국 사회를 깊이 있게 응시하는 시선과 인간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연출로 세계 평단의 꾸준한 신뢰를 받아온 한국 대표 거장이다.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 '황해', '곡성', '호프'까지 네 편 연속 칸국제영화제에 진출하며 독창적인 장르 연출력을 인정받았고, 국내에서는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입증하며 한국 상업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제작 구조다. '호프'는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한 기존 투자·배급 시스템을 통해 완성된 대형 상업영화다. 그러나 작품이 제작된 이후 한국 영화 산업은 투자 위축과 제작비 상승, 극장 관객 감소가 맞물리며 수백억원 규모 블록버스터 제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여기에 '호프' 개봉을 앞두고 중앙그룹의 콘텐츠 사업 재편 움직임까지 불거지면서 영화계의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대형 투자·배급사의 역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속에 한국형 블록버스터 신작마저 드물어진 상황에서 '호프'는 극장 중심 한국 상업영화의 경쟁력을 다시 입증해야 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업계에서 '호프'를 두고 '한국 영화의 희망'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흥행 성패를 넘어 침체된 투자 심리를 되살리고 한국형 블록버스터 제작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가능한 사랑'은 변화한 제작 환경을 상징하는 사례다. 이 작품은 당초 영화진흥위원회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지원금을 받기로 했으나, 대형 투자배급사와의 투자 협상이 불발되면서 지원금 신청을 철회했다. 투자에 나서겠다는 국내 투자배급사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넷플릭스가 투자를 결정했다. 국내 공적 지원과 상업 투자 양쪽에서 모두 벽에 부딪힌 프로젝트를 글로벌 OTT 자본이 흡수한 셈이다.
팬데믹 이후 극장 중심 투자 환경이 위축되는 사이 글로벌 OTT의 제작 영향력은 갈수록 커졌고, 국내에서 성사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플랫폼이 흡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가능한 사랑' 역시 변화한 한국 영화의 자금 조달과 제작·유통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도 다르다. '호프'는 극장 개봉을 중심으로 흥행과 평단의 평가를 축적한 뒤 오스카 캠페인을 이어가는 전통적인 전략을 택했다. 북미에서 9월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이끌었던 네온(NEON)이 배급을 맡아 극장 중심 캠페인을 펼친다.
'가능한 사랑'은 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 출품 자격을 충족하기 위한 주요 시장 극장 상영을 거친 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하는 전략이 유력하다. 극장 개봉을 중심에 둔 '호프'와 달리 OTT 공개를 전제로 하면서도 시상식 캠페인을 위해 극장 상영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가능한 사랑'은 올해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공식 초청됐다.
이에 '가능한 사랑'은 한국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되지 않더라도 별도의 출품 경로가 열려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아카데미 측이 내년 제99회 시상식부터 적용하기로 한 개정 규정에 따르면, 각국·지역의 공식 출품작 외에도 아카데미가 지정한 6개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비영어권 영화는 국가 추천 없이도 별도로 출품 자격을 얻는다. 대상 영화제는 베를린(황금곰상), 부산(부산 어워드 대상), 칸(황금종려상), 선댄스(월드시네마 심사위원대상), 토론토(플랫폼상), 베니스(황금사자상) 등 6곳이다. 즉 '가능한 사랑'이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경우, 한국 대표 출품 여부와 무관하게 국제장편영화상 심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호프'와 '가능한 사랑'의 경쟁은 단순히 어느 작품이 한국 대표로 선정되느냐를 넘어, 전통적인 극장 중심 상업영화와 글로벌 OTT 기반 제작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한국 영화 생존 모델이 세계 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을 증명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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