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센느 원이·미나미가 풀어낸 태연표 ‘만찬가’ [MV 리플레이 ㊺]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7.23 08:26  수정 2026.07.23 08:26

상처 입은 소녀에게 차려진 가장 다정한 만찬

쇼츠, 릴스 등 짧은 길이의 영상물들만 소비되는 현재 가수가 곡 안에 담아낸 상징과 그들의 세계관, 서사를 곱씹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가 담아낸 ‘작은 영화’인 뮤직비디오를 충분히 음미해보려 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의 연출, 상징과 메시지를 논하는 이 코너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태연은 지난달 29일 ‘제이팝 리메이크’(J-POP REMAKE) 프로젝트의 첫 번째 음원 ‘만찬가’(晩餐歌)를 발매했다. 일본 싱어송라이터 츠키(tuki.)가 2023년 발표한 동명의 히트곡을 한국어로 재해석한 곡이다. 원곡이 상대를 아프게 할 것을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모순된 사랑을 만찬에 빗댔다면, 뮤직비디오는 이를 상처를 품은 한 소녀가 누군가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웃음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로 확장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그룹 리센느(RESCENE)의 원이와 미나미가 각각 먼저 손을 내미는 소녀와 스스로를 고립시킨 소녀를 연기했다. 두 사람은 대사 한마디 없이 시선과 표정, 손짓만으로 가까워지는 마음의 거리를 촘촘하게 그려낸다.


리센느 원이·미나미, 태연 ‘만찬가’ MV 비하인드 ⓒSHgold네트웍스
줄거리


교실 구석에서 미나미가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다. 앞자리에 앉은 원이는 조용히 뒤를 돌아 미나미를 바라본다. 홀로 옥상에 올라 크림빵을 먹는 미나미를 찾아간 원이는 물을 건네지만, 미나미는 이를 뿌리친 채 자리를 벗어난다. 미나미의 얼굴에는 누군가에게 맞은 듯한 상처가 남아 있다.


하굣길에도 원이는 혼자 걷는 미나미의 뒤를 따라간다. 미나미가 걸음을 재촉하자 원이도 함께 달리기 시작하지만 이내 바닥에 넘어진다. 이를 외면하지 못한 미나미가 멈춰 서면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나무 아래에 나란히 앉는다. 원이는 미나미가 혼자 듣던 이어폰을 가져가 같은 노래를 나눠 듣는다.


다시 옥상. 원이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미나미에게 물을 건넨다. 이번에는 미나미가 물을 받아 마신다. 두 사람은 팔에 비슷하게 자리한 두 개의 점을 발견하고, 그 아래 곡선을 그어 웃는 얼굴을 만든다. 우연히 닮은 흔적은 둘만의 표식이 된다.


이후 원이는 언제나 혼자 있는 미나미를 찾아간다. 몸이 아파 쓰러진 미나미를 집으로 데려가 열을 식혀주고, 함께 따뜻한 식사를 나눈다. 조금씩 가까워진 두 사람 앞에 어느 날 미나미의 가족으로 보이는 인물이 나타난다. 얼굴의 상처와 미나미를 거칠게 대하는 태도는 그가 가정에서 폭력에 노출돼 있었음을 암시한다.


싫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그를 따라가던 미나미가 뒤를 돌아보자 원이는 미나미의 손을 잡고 달린다. 밤이 될 때까지 함께 도망친 두 사람은 마침내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끌어안는다. 이후 원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미소를 되찾은 미나미가 마지막 장면에서 원이와 마주 보고 웃으면서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리센느 원이·미나미, 태연 ‘만찬가’ MV 비하인드 ⓒSHgold네트웍스
해석


‘만찬가’ 뮤직비디오는 같은 장면의 반복을 통해 미나미가 마음을 여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 옥상에서 원이가 내민 물을 뿌리쳤던 미나미는 두 번째에는 이를 받아 마신다. 물을 내미는 원이의 행동은 같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미나미의 태도가 달라졌다. 물 한 모금은 두 사람 사이에 처음으로 오간 신뢰이자 미나미가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원이 역시 일방적으로 미나미를 구하는 인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원이가 자신을 따라오다 넘어졌을 때 미나미가 걸음을 멈추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쫓는 사람과 도망치는 사람에서 서로를 돌아보는 관계로 바뀐다. 미나미가 원이를 외면하지 않은 선택이 두 사람을 나무 아래 같은 자리에 앉힌다.


두 사람이 이어폰을 나눠 듣는 장면은 미나미의 닫힌 세계에 원이가 처음 들어서는 순간이다. 혼자만 듣던 노래가 둘의 노래가 되고, 말로 설명하지 못한 감정은 음악을 통해 공유된다. 팔의 두 점 아래 그려 넣은 곡선도 같은 의미를 품는다. 원이는 기존의 흔적을 지우거나 가리지 않는다. 그 아래 미소 하나를 더해 흔적의 의미를 바꾼다. 이는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 위에 새로운 기억을 쌓을 수 있다는 메시지와 맞닿는다.


손을 활용한 대비도 선명하다. 가족으로 보이는 인물이 미나미를 데려가는 손이 통제와 억압을 의미한다면, 원이가 잡아끄는 손은 미나미의 선택을 돕는 탈출구다. 같은 손짓이 누구에게서 비롯됐느냐에 따라 속박과 구원이라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끝없이 달린 뒤 두 사람이 서로를 껴안는 장면은 미나미가 마침내 자신을 붙드는 손과 함께 가고 싶은 손을 구분해냈음을 보여준다.


리센느 원이·미나미, 태연 ‘만찬가’ MV 비하인드 ⓒSHgold네트웍스
총평


제목인 ‘만찬가’는 영상 안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두 사람이 먹는 것은 화려한 만찬이 아니다. 옥상의 크림빵과 물, 원이의 집에서 함께 먹는 평범한 한 끼가 전부다. 그러나 원이가 건넨 물, 정성이 담긴 간호, 마지막 포옹을 차례로 놓고 보면 그것이야말로 미나미에게 차려진 마음의 ‘풀 코스’다.


가사 속 사랑도 연인 사이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뮤직비디오는 두 사람의 관계를 우정이나 연애 중 하나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계속 곁에 남아 상대의 마음을 기다려주는 행위 자체를 사랑이라고 말한다. 수십 번에서 수만 번의 밤으로 점차 커지는 가사의 시간은 미나미를 계속 찾아가고 기다린 원이의 꾸준함과 겹쳐진다.


태연의 목소리는 미나미가 감춰온 아픔을 대신 들려주는 내레이션처럼 기능한다. 곡이 후반부로 향할수록 넓어지는 태연의 감정은 두 소녀가 달리고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과 맞물리며 울림을 키운다.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호흡과 섬세한 표정 연기는 한 소녀의 상처가 관계를 통해 천천히 치유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한줄평


가장 다정한 만찬은 끝까지 곁을 지킨 마음으로 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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