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안정감·즉각적인 촉감·행동의 습관화가 인기 배경
20·30대의 완구 소비가 늘고 있다. 어린이의 놀이 도구로 여겨졌던 완구가 성인의 일상적인 취미 소비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최근 유행을 이끄는 상품의 공통점은 손으로 직접 만지고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촉감 완구들.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말랑이와 스퀴시는 누르고 주무르는 촉감을 앞세운다. 말랑이는 쫀득한 실리콘 등이 채워진 촉감 완구이고, 스퀴시는 스펀지 소재로 만들어져 누른 뒤 원래 모양으로 돌아온다. 말랑한 점토 겉면을 왁스로 코팅한 ‘왁뿌볼’은 깨뜨리는 순간의 자극이 상품의 핵심이다. 슬라임과 클리커, 키캡형 상품도 손끝에 닿는 느낌과 소리를 통해 짧고 즉각적인 만족을 준다.
최근 찾은 서울 종로구 창신동 완구거리에서 만난 20대 소비자들도 촉감과 휴대성을 구매 이유로 꼽았다. 친구와 함께 완구거리를 찾은 강승한(23·서울 노원구)씨는 “가볍게 만지기 좋고 갖고 다니기도 편하다”며 “어디서든 주물거리며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어 어른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숏폼과 자율감각 쾌락반응(ASMR) 콘텐츠는 이 같은 욕구를 실제 구매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말랑이를 누르거나 스퀴시가 천천히 복원되는 모습, 왁뿌볼을 깨뜨리는 장면은 몇 초 안에 결과가 드러난다. 소리와 움직임을 함께 강조한 영상은 제품을 직접 만지지 않고도 촉감을 상상하게 만든다.
미국 뉴욕에서 한국을 여행하던 중 창신동 완구거리를 찾은 아비가일(26)씨도 유튜버 ‘라이옹’의 ASMR 영상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잘 때마다 라이옹의 영상을 봤고, 화면으로만 보던 왁뿌볼이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 직접 찾아왔다”고 말했다. 영상으로 먼저 소비한 감각을 오프라인에서 확인하려는 욕구가 완구거리 방문으로 이어진 사례다.
SNS의 영향은 제품의 흥행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생활용품 판매점 다이소에 따르면 일명 ‘말차 계산기’로 불리는 키보드형 컬러 계산기는 키캡을 누르는 듯한 촉감과 복고풍 디자인으로 SNS에서 입소문을 탔다. 제품은 지난 5월 중순 초도 물량이 모두 팔렸고, 정가 5000원인 제품이 일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2~3만원대에 거래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계산기는 본래 실용적인 상품이지만 소비자들은 기능만 보고 구매하지 않았다. 키캡의 촉감과 소리를 즐기고 제품을 스티커로 장식하는 과정까지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다이소에 따르면 입체형 보석 스티커 등 데코스티커의 지난 6월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약 60% 증가했다.
왁뿌볼처럼 한 번 깨뜨리면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제품까지 인기를 얻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상품을 오래 소유하는 것보다 사용하는 순간 얻는 자극과 이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경험이 구매 가치를 만들고 있다.
창신동 완구 거리를 찾은 사람들. ⓒ전지원 기자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어른들이 촉감형 완구를 찾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의 편안했던 경험’ 때문이다. 곽 교수는 “성인이 되면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므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며 “이때 어린 시절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느꼈던 편안함을 기억하며 당시 가지고 놀던 장난감으로 돌아가 안정을 찾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두 번째는 촉감이 주는 ‘직관적인 효과’다. 그는 “누군가를 껴안을 때 포근함을 느끼는 것처럼 편안한 촉감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데 큰 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복잡한 사용법이나 긴 시간 없이 손에 쥐고 누르는 행위만으로 즉각적인 감각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촉감 완구의 특징이다.
반복해서 공을 쥐는 행동이 스트레스를 낮출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6월 국제학술지 ‘BMC 보완의학과 치료’에 게재된 ‘스트레스볼 사용이 혈액투석 환자의 스트레스, 수면의 질 및 안위에 미치는 영향: 무작위 대조시험’에서 연구진은 혈액투석 환자 60명을 스트레스볼 사용군과 대조군에 배정했다. 중도 탈락한 3명을 제외하고 사용군 28명과 대조군 29명 등 57명의 결과를 분석했다.
사용군은 4주 동안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15분씩 총 12차례 실리콘 재질의 스트레스볼을 반복해서 쥐었다. 그 결과 지각된 스트레스 척도 점수는 평균 29.64점에서 19.86점으로 9.78점, 약 33% 감소했다. 반면 별도의 개입 없이 기존 치료와 간호만 받은 대조군은 32.17점에서 36.17점으로 높아졌다. 이에 연구진은 스트레스볼을 반복해서 쥐는 행동이 환자의 주의를 스트레스 요인에서 손의 움직임으로 옮기고 이완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마지막 이유는 ‘행동의 습관화’다. 곽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촉감 완구를 만지는 행동이 반복되면 이는 뇌에 학습된다”며 “나중에는 특별한 효과가 없더라도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무의식적으로 촉감 완구에 손이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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