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독주 속 고용 둔화와 낙수효과 실종
잠재성장률 복원과 네덜란드 벽 넘을 정교한 로드맵 필요
구체적 연차별 목표와 대체 경로 마련해야
반도체 수출 호조로 성장률과 국민소득 전망은 높아졌지만 고용 둔화와 생산성 정체, 산업 편중이라는 구조적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함)
정부가 ‘잠재성장 3%, 수출 4강, 소득 5만 달러’를 일컫는 ‘3·4·5 비전’을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의 전면에 내걸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성장축으로 삼아 장기간 하락한 성장경로를 되돌리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1~4월 수출 순위가 세계 5위로 올라섰고,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3.0% 성장하며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4만 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의 이같은 전망은 상반기 지표가 예상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2026년 통관수출 증가율을 40.0%, 경상 GDP 성장률을 12.3%로 내다봤다. 1~5월 반도체 수출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73.4~163.3% 올랐다.
문제는 이런 지표들이 올해 하반기에도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느냐다. 정부 전망에서도 2027년 실질성장률은 2.2%, 통관수출 증가율은 1.0%로 낮아진다.
특히 ‘3·4·5 시대를 연다’는 방향은 제시하면서도 각 목표의 달성 연도와 연차별 중간 목표,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때의 ‘플랜B’는 이번 전략에서 빠졌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은 “주요 투자기관들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계속 올리고 있다”며 “자신감 갖고 이재명 정부 내 추진할 계획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달성 시기를 짚기는 어렵다. 하지만 목표로 삼고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체력 복원하겠다는데…노동·인구 보완책 없는 잠재성장률
한국은행은 2024~2026년 평균 잠재성장률을 2.0%로 추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더 보수적이다. 현재 수준을 1%대 후반으로 봤다. 잠재성장률 3.0%를 달성하려면 한국은행 추정치보다 1%p, 현재 수준의 절반에 해당하는 성장능력을 추가해야 한다.
한국은행 추정에서 잠재성장률이 3%대였던 마지막 구간은 2015~2018년이다. 당시 추정치는 3.0~3.2%였다. 정부 목표는 약 10년 전 성장능력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경기회복 속도를 높이는 수준을 넘어 인구구조와 산업 생산성의 하락 흐름을 되돌려야 한다.
여건은 당시보다 불리하다. KDI는 생산연령인구 감소로 노동투입의 성장기여도가 2030년 전후 마이너스로 전환하고, 총요소생산성 둔화와 자본수익성 하락이 투자 증가세까지 낮출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공개한 한국 경제전망 보고서 세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1.85%에서 올해 1.66%, 내년 1.52%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4분기 기준으로는 지난해 1.70%에서 올해 1.61%로 0.09%포인트(p) 하락한 데 이어 내년에는 1.46%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뉴시스
노동 감소분을 경제활동 참가율과 우수인력 유입으로 보완하면서 생산성과 자본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려야 3%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제시한 해법은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중심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다. 수도권 반도체 팹의 준공을 앞당겨 5년 내 메모리 생산능력을 2배로 늘리고, 서남권 반도체 생산거점에는 민간투자를 포함해 총 800조원을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충청권 HBM 패키징 분야에도 156조원 투자가 제시됐다.
투자계획의 상당 부분은 2030~2031년에 효과가 나타나는 장기 사업이다. 전력·용수 공급, 인허가, 전문인력 확보가 지연되면 생산성 효과도 늦어진다.
이에 대해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은 “기본적으로 3·4·5 비전이 도전적인 거 인정한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머물지 않고 나아갈 생각인데 이번에 생각한 건 반도체 호황을 활용하기 위해 메가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미국 사례를 살펴봤을 때 잠재성장률 떨어질 때 반전된 계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차관은 이어 “이게(3·4·5 비전이) 되면 일단 자본쪽에서 늘면서 잠재성장률 늘어날 계기 된다. 총생산량 올라가는 효과라고 보면 된다”며 "로봇이나 자동차, 방산, 우주 등으로 저변 넓혀지면 총생산량 올려서 다시 올라갈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생산능력 확대가 실제 수요보다 빠르면 반도체 가격 하락기에 공급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잠재성장률을 평가하려면 투자액보다 가동률, 부가가치, 신규 고용, 기술 자립도, 비수도권 생산성 상승분을 중간 지표로 제시해야 한다.
AI의 생산성 효과도 아직 확정된 결과로 보기 어렵다. 한국은행은 AI 활용이 업무시간을 줄이는 효과를 확인했지만 거시 생산성 지표에서는 뚜렷한 개선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기업의 AI 도입률이 높아지는 것과 경제 전체의 잠재성장률이 오르는 것 사이에는 조직 혁신과 인력 재배치, 서비스업 확산이라는 추가 단계가 남아 있다.
반도체 꺾이면 1%대로 뚝…'수출 4강'에 부가가치 지표가 빠진 이유
정부가 제시한 세계 수출 5위는 2026년 1~4월 통관수출을 비교한 잠정 순위다. 이 기간 한국은 일본과 이탈리아를 추월했다. 반도체 가격과 수요가 급등한 시기의 4개월 실적이라는 점에서 연간 순위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2025년 연간 상품수출 순위에서 한국은 7090억 달러로 8위였다. 중국이 3조7720억 달러, 미국 2조1850억 달러, 독일 1조7640억 달러, 네덜란드 9890억 달러로 1~4위를 차지했다.
한국 앞에는 홍콩 7540억 달러, 일본 7380억 달러, 이탈리아 7260억 달러도 있다. 세계 4강에 진입하려면 우선 세 나라를 안정적으로 넘은 뒤 네덜란드와의 격차까지 줄여야 한다.
2025년 기준 한국과 네덜란드의 수출액 차이는 2800억 달러다. 네덜란드 수출이 한 해도 늘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한국 수출이 39.5% 증가해야 같은 수준에 도달한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6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수출은 1년 전보다 70.9% 증가한 1023억 달러(158조4627억원), 수입은 30.1% 증가한 661억 달러(102조5542억원)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독일·중국·미국에 이어 전세계에서 네 번째로 월 수출액 1000억 달러 이상을 넘어선 기록이다. 이날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뉴시스
정부의 2026년 수출 증가율 전망 40.0%가 현실화될 경우 산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그 전망 자체는 반도체 가격 급등을 전제로 한다. 정부는 바로 다음 해인 2027년 수출 증가율을 1.0%로 예상했다.
현재의 수출 상위 4개국 구도는 2019년 WTO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중국은 2조4990억 달러, 미국 1조6460억 달러, 독일 1조4890억 달러였다. 네덜란드는 7090억 달러로 일본의 7060억 달러를 30억 달러 차이로 제치고 4위에 올랐다. 2025년에는 네덜란드와 일본의 격차가 2510억 달러로 커졌다.
네덜란드는 제조업 수출국인 동시에 유럽의 물류·재수출 허브다. 네덜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상품수출 6769억 유로 가운데 자국에서 생산하거나 상당한 가공을 거친 수출은 3245억 유로, 수입 후 거의 가공하지 않고 다시 내보낸 재수출은 3524억 유로였다. 재수출이 자국산 상품수출보다 많았다. 2022년에는 상품수입의 절반 이상이 재수출용이었다.
이 구조에서는 한국산 제품이 네덜란드를 거쳐 다른 유럽 국가로 이동할 경우 한국의 수출 증가분이 네덜란드의 총수출에도 반영될 수 있다. 한국이 추격하는 동안 네덜란드 수출액도 함께 늘어나는 ‘움직이는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총수출액 기준 순위가 생산경쟁력뿐 아니라 물류허브와 재수출 규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WTO도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의 수출 통계에 상당한 재수출이 포함돼 있다고 명시했다.
한 통상 전문가는 “수출 4강을 정책 성과로 삼으려면 기준부터 정해야 한다”며 “WTO 연간 상품수출인지, 서비스수출을 포함하는지, EU 역내거래와 재수출을 그대로 반영하는지에 따라 순위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순위와 함께 국내 부가가치 수출, 중소·중견기업 수출,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 증가율을 공개해야 실물 경쟁력의 변화를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11년 걸린 3만 달러 고지…30년 뒤 청사진은 의미 없다
한국은행의 수정계열을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94년 1만357달러로 처음 1만 달러를 넘었다. 이후 2006년 2만1664달러로 2만달러에 진입했고, 2017년 3만1734달러로 처음 3만 달러를 돌파했다.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까지는 11년이 걸린 셈이다.
정부는 올해 반도체 수출가격 상승과 교역조건 개선으로 1인당 GNI가 4만 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했다. 4만 달러에 ‘근접’하는 단계에서 5만 달러까지는 최소 1만 달러 이상을 더 높여야 한다.
그렇다면 4만 달러를 출발점으로 단순 계산해보자. 산술적으로 2030년 5만 달러에 도달하려면 달러 기준 1인당 GNI가 매년 평균 5.7%씩 늘어야 한다. 시한을 2031년으로 잡아도 연평균 4.6% 증가가 필요하다. 실제 출발점이 4만 달러보다 낮다면 필요한 상승률은 더 높아진다.
달러 기준 국민소득은 실질 성장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물가와 GDP 디플레이터, 원·달러 환율, 해외에서 벌어들인 순소득, 인구 변화가 함께 작용한다.
한국은행도 환율과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커 국민소득 달성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입장인데, 정부가 반도체 가격 상승과 원화 강세가 겹치는 ‘경우의 수’를 들어 5만 달러를 호언장담한 것이다.
올해 1분기 한국 경제가 1.8% 성장했다. 지난 4월 발표된 속보치보다 0.1%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전체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모든 소득을 합산한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9.2% 증가했다. ⓒ뉴시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건 경제성장률이다. 당초보다 굉장히 높아져서 4만 달러 달성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환율이 높은 수준인데 다 감안했다. 이 수준 유지되거나 큰 폭의 유인 없다면 4만 달러 달성하기는 살짝 어려운 게 사실인데 그렇다 해도 굉장히 근접한 숫자로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5만 달러 달성은 성장보다 환율 관리가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1인당 GNI는 현재까지 평균이 1380원대다. 성장 상방요인이 작용하거나 우리(재경부)가 열심히 해서 환율 낮아지면 달성 가능성 있다는 거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경부의 이같은 발상은 반도체 가격 조정이나 원화 약세가 발생하면 실질경제가 성장해도 달러 기준 소득은 후퇴할 수 있다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국민소득과 가계가 느끼는 소득의 차이도 살펴야 한다. 1인당 GNI는 가계소득만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가 벌어들인 소득을 모두 합쳐 인구로 나눈 지표다. 반도체 대기업의 이익과 정부 세수가 늘면 GNI가 상승해도 자영업자와 임금근로자의 처분가능소득이 같은 폭으로 오르지는 않는다.
정부 전망에서도 이 간극이 드러난다. 2026년 실질성장률은 3.0%, 통관수출은 40.0% 증가하지만 취업자 증가 폭은 15만명으로 2025년 19만명보다 오히려 줄어든다.
수출과 국민소득의 숫자가 커지는 동안 고용 확산력은 오히려 낮아지는 구도다. 전문가들이 5만 달러 목표에는 가계총처분가능소득과 중위소득, 실질임금, 서비스업 생산성을 보조 지표로 붙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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