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실패해도 다시 돌아올 곳 있다”…근로장애인 ‘일반 취업’ 이끈 땀방울

김성웅 기자 (woong@dailian.co.kr)

입력 2026.07.08 16:39  수정 2026.07.08 16:40

훈련 넘어 자립 이끈 전환지원사업

취업 이후에도 이어지는 맞춤형 관리

훈련과 취업 잇는 디딤돌 역할

서울 강동노인복지관에서 급식보조 업무를 하는 남재희 씨. ⓒ데일리안 김성웅 기자

“오늘은 복지관 어버이날 행사가 있어서 휴가를 못 씁니다. 제가 일해야 하거든요.”


서울 강동노인복지관에서 급식보조 업무를 하는 근로장애인 남재희 씨는 이제 행사 일정에 맞춰 스스로 휴가를 조정한다. 직장 동료와 같은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한때는 일반 기업 취업에 실패해 상처를 받았던 그가 지금은 정규직 전환까지 기대받는 직원으로 성장했다.


남 씨의 변화 뒤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근로장애인 전환지원사업’과 이를 현장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의 꾸준한 지원이 있었다.


취업이 끝이 아니었다. 실패해도 다시 돌아와 재도전할 수 있도록 돕고, 직장에 적응할 때까지 함께하는 과정이 전환지원사업의 진짜 역할이었다.


HACCP 작업장에서 시작되는 ‘일반 취업’ 준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송파위더스에는 위생복과 위생모를 착용한 근로장애인들이 제빵 작업장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근로장애인은 갓 구워낸 쿠키를 하나하나 봉투에 담고 실링(밀봉) 작업을 마친 뒤 금속검출기에 올렸다. 쇳조각 등 이물질이 없는지 확인하는 마지막 공정까지 직접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HACCP 인증을 받은 작업장답게 위생복과 위생모를 착용한 채 모든 공정이 엄격한 위생관리 기준에 따라 진행됐다.


한쪽에서는 또 다른 근로장애인이 쿠키 봉투에 라벨을 붙이고 있었다. 손동작이 상당히 빨라 가히 ‘달인’ 수준이었다.


시설 관계자는 “라벨 부착 작업은 정확성과 반복 수행 능력이 중요한 공정”이라며 “근로장애인들이 숙련도를 높여 안정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꾸준히 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업장 곳곳에서는 근로장애인들이 각자의 특성과 강점에 맞는 공정을 맡아 숙련도를 높이며 일반 노동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근로장애인이 갓 구워낸 쿠키를 하나하나 봉투에 담고 실링(밀봉) 작업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성웅 기자
“최저임금보다 중요한 건 사회인이 되는 과정”


근로장애인 전환지원사업은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를 받은 장애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무훈련과 취업지원을 제공해 일반 노동시장으로의 전환을 돕는 사업이다.


2020년 시작된 이후 매년 전국 190여개 직업재활시설에서 800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80명이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일반 일자리로 전환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이 사업의 핵심은 임금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시설 관계자는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큰 변화는 자신감”이라며 “취업한 분들이 월급을 받으면 작업장에 찾아와 동료들에게 간식을 사주기도 하고, 후배들은 ‘나도 저 형처럼 취업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근로장애인들의 변화는 작은 일상에서 먼저 나타난다.


출근 시간을 스스로 지키고, 면접에는 정장을 입고, 직장 동료에게 먼저 인사한다. 휴가를 쓰기보다 업무를 먼저 생각하는 책임감도 생긴다.


담당자는 “작업장에서는 계속 이야기해도 잘 바뀌지 않던 생활습관이 일반 기업에 취업한 뒤에는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근로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쿠키. ⓒ데일리안 김성웅 기자
취업보다 어려운 ‘고용 유지’…실패해도 다시 시작한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의외로 ‘취업’이 아니라 ‘사후관리’였다.


전환지원사업 참여자가 일반 기업에 취업하더라도 지원은 끝나지 않는다.


시설과 공단은 면접에 함께 동행하고, 출퇴근 연습을 돕는다. 직장 적응이 어려우면 사업장을 직접 찾아 상담하고, 보호자와도 지속적으로 소통한다.


취업 이후에도 근로자는 다시 시설을 찾아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오전에는 일반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오후에는 시설에서 상담과 직무훈련을 받으며 직장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함께 해결한다.


생활 전반에 대한 지원도 이어진다. 통장을 함께 확인하며 적금을 가입하고, 소비 습관을 점검한다. 보호자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시설이 직접 개입한다.


직장과 시설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도 중재자 역할을 맡는다.


시설 관계자는 “취업보다 유지가 훨씬 어렵다”며 “일반 기업에서 겪는 작은 갈등도 방치하면 퇴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전환지원사업이 다른 취업지원사업과 구별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취업에 실패해도 다시 시설로 복귀해 훈련을 받고 재도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시설 관계자는 “실패했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안도감이 장애인들에게는 매우 크다”며 “그 덕분에 일반 취업에 도전하려는 용기도 생긴다”고 말했다.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남재희 씨


남재희 씨 역시 여러 번의 실패와 도전을 거쳤다.


고등학교 졸업 후 주유소에 취업했지만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근무환경 속에서 상처를 받았고, 보호자 역시 일반 취업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


이후 전환지원사업에 참여해 직무훈련을 받은 뒤 취업에 성공했지만 잦은 지각과 집중력 저하 등으로 계약이 종료됐다.


많은 사람이라면 여기서 포기했겠지만, 남 씨는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왔다.


시설은 출퇴근 습관을 바로잡기 위해 매일 귀가 시간을 확인했고, 생활습관을 함께 관리했다. 다시 직무훈련을 거친 그는 서울특별시립 강동노인복지관 급식보조 업무에 취업했다.


지금은 급식 준비와 도시락 물품 정리, 분리수거 등을 맡으며 2년 근속 이후 다시 채용돼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복지관에서는 직원들과 같은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며 정규직 전환도 검토하고 있다.


시설 관계자는 “예전에는 인사도 잘 하지 않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어르신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행사 때문에 휴가를 쓰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책임감이 생겼다”며 “사업장에서도 직원처럼 대해준 것이 큰 변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구립장애인직업재활시설 송파위더스. ⓒ데일리안 김성웅 기자
“취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


현장에서는 또 다른 근로장애인이 배달 직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출근 시간을 오전 11시에서 9시 30분으로 앞당겨 실제 배달 업무에 적응하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근로지원인이 함께 이동하며 대중교통 이용과 배달 동선을 익히고 있었다.


또 다른 참여자는 휠체어 정리 업무를 맡은 병원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자 시설과 사업장이 함께 상담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처럼 전환지원사업은 단순히 취업 한 건을 늘리는 사업이 아니다.


근로장애인이 직업재활시설이라는 보호된 환경을 벗어나 일반 노동시장으로 나아가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긴 여정에 가깝다.


시설 관계자는 “예전에는 인사도 잘 하지 않던 친구였는데 이제는 ‘행사가 있어서 휴가를 못 쓴다’고 먼저 말할 정도로 책임감이 생겼다”며 “취업보다 더 기쁜 건 한 사람이 사회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남재희 씨가 스스로 “제가 일해야 하거든요”라고 말하기까지는 수많은 훈련과 실패,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놓지 않은 사람들의 시간이 있었다. 전환지원사업이 키워낸 것은 단순한 취업자 아니라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하는 한 명의 사회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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