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병협, 16일 소아 필수의약품 품절 관련 기자회견
“아티반 공급 중단에 현장에선 진료 차질 현실화”
응답 병원 34% “재고 이미 소진”…대체약 부작용·환자 전원 부담도
“낮은 약가·규제 강화가 생산 포기 불러…공급 안정 대책 마련해야”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장(가운데)이 16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소아 필수의약품 반복 품절 사태와 공급 안정 시스템 구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이렇게 매번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는 방식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공급 불안 우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왔고, 실제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던 필수약인데 왜 이제서야 대책을 이야기하는지 답답합니다. 설령 7월에 아티반 생산이 재개돼 현장에 공급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같은 공급 불안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큽니다.”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장(소청병협)은 16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소아 필수의약품 반복 품절 사태와 공급 안정 시스템 구축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며 소아 필수약 공급 체계 전반의 개선을 정부에 촉구했다.
최 회장은 “아티반 공급 중단이 선언된 이후 1년 6개월 동안 보건당국은 사실상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며 “최근 언론 보도로 우려가 커지자 공급 공백 해소 방안을 발표했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재생산 시점조차 명확하지 않은 데다 이미 재고가 바닥나고 있어 환자 치료 차질을 걱정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아티반(성분명 로라제팜)은 소아 급성 경련의 1차 치료제로 사용되는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항발작제다. 열성경련 환아에게 필수적인 응급약물로, 뇌의 과도한 신경 흥분을 빠르게 억제해 발작을 신속히 멈추는 역할을 한다. 현재 국가필수의약품이자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1982년부터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티반 주사제를 공급해온 일동제약이 지난해 12월 생산 중단을 결정하면서 공급 공백이 현실화됐다. 기존 유통 재고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 의료계에서는 이르면 오는 7월께 시장 재고가 사실상 바닥날 것으로 봤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2일 “로라제팜 주사제가 현재 공급사 보유 재고와 향후 변경허가 절차 등을 고려해 의료 현장에 지속 공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존 공급사인 일동제약이 보유 재고로 공백을 메우고, 삼진제약이 품목을 넘겨받아 생산·공급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아티반 주사제. ⓒ일동제약
그럼에도 의료계에서는 정부 발표만으로는 현장의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아티반 기술 이전과 식약처의 조속 심사가 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위탁 생산 협상부터 안정적인 유통 체계 구축까지 통상 6~12개월이 걸린다는 점에서다. 아티반 재고가 거의 바닥난 상태인 병원은 최소 6개월 이상의 공급 공백을 견뎌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동균 소청병협 부회장(광주시 남구 미래아동병원장)은 “소아 필수약은 저출산 등으로 사용량이 적어 공급자 입장에서는 생산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공급 중단이나 수급 불안이 반복되면서 우리나라 소아청소년들은 아프면 성인용 약을 나눠 투약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날 소청병협이 발표한 ‘아티반 공급 중단 긴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병원 35곳 중 12곳(34%)은 “이미 재고가 소진돼 응급환자 발생 시 처치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답했다. 또 13곳(37%)은 “1~2개월 내 재고가 소진될 예정으로 7월 이전 치료 대란이 우려된다”고 응답했다. 응답 병원의 절반 이상이 아티반 공급 불안으로 실제 진료 차질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또 35개 병원 중 10개 병원은 최근 6개월간 아티반 수급 불안으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19개 병원은 대체 약물 사용에 따른 부작용 우려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병원들은 아티반이 다른 약물로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이유로 ‘골든타임 확보’를 꼽았다. 응답 병원 6곳(17%)은 “5~10분 내 신속한 작용으로 영구적 뇌 손상을 막을 수 있는 약물”이라고 답했고, 또 다른 6곳은 “연약한 소아 환자에게 호흡기 자극이 가장 적어 안전성이 검증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절반이 넘는 20개 병원(57%)은 아티반이 소아 경련 치료의 ‘1차 선택지’로 사실상 대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홍준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부회장(맨 왼쪽)이 16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소아 필수의약품 반복 품절 사태와 공급 안정 시스템 구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생산 중단의 배경으로는 강화된 제조 기준과 지나치게 낮은 약가 구조가 동시에 지목됐다. 정부가 무균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GMP)을 국제 기준에 맞춰 강화하면서 수십억원 규모의 설비 투자 부담이 발생했지만, 낮은 약가 탓에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조사에서 23개 병원(66%)은 공급 불안 사태에 대해 “필수의약품의 공공재적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시장 논리에만 맡긴 정부 관리 부실이 문제”라고 답했다. 또 22개 병원(63%)은 “제약사가 생산을 지속할 수 있도록 실제 원가를 반영한 약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의료계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아티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표 사례로는 급성 부신피질기능부전증 치료에 사용되는 ‘하이드로코르티손 주사제(코티소루주)’가 언급됐다. 급성 부신피질기능부전증은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쇼크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 응급질환으로, 초미숙아의 혈압 조절과 저혈압 치료에도 필수적인 약물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약 역시 재고가 오는 7월께 바닥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식약처는 품질 강화를 이유로 생동성 재평가를 요구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약가를 100㎎ 바이알당 820원, 신생아 1회 투여(50㎎) 기준 410원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회는 “정부는 경구용 제제나 다른 주사제로 대체하면 된다고 쉽게 말하지만 쇼크 상태의 아이나 기계 호흡에 의존하는 1kg 미만 미숙아에게 먹는 약을 쓰라는 것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대안 없는 규제가 결국 아이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홍준 소청병협 부회장(김포 아이제일병원장)도 “아이들이 먹는 간식 값은 1000원인데 사람을 살리는 약 가격은 그보다도 낮다”며 “단순히 약값을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필수약 공급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소아 필수의약품 목록 정비와 자동 트리거 입법, 소아 우선 공급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며 “반복되는 ‘부랴부랴 행정’을 끝낼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어떤 의약품 규제를 도입하더라도 필수의약품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분석하는 ‘공급 영향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며 “약가 자동 연동 시스템 도입과 범부처 통합 컨트롤타워 구축, 초저가 필수의약품에 대한 원가·관리비 100% 보전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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