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 구성시 핵시설' 발언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뉴시스
통일 담론이 책임져야 한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의식·의지는 물론이고 관심조차 옅어졌다. 정치인은 더 하다. 대선, 총선, 지선에서 ‘통일’이 사라졌다. “통일, 하지 말자”에서 “통일은 폭력적이다”까지, 입이 참으로 자유롭다.
남북 모두에서 ‘두 국가’가 울린다. 북쪽은 ‘2민족’까지 주장한다. 남쪽은 평화 공존에 목맨다. 통일 담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왜 그럴까, 왜 인기가 없어진 건가, 무엇이 문제인가. 통일이 다시 대한민국 중심에 놓여야 하고, 힘을 얻어야 한다. 비판적 성찰이 출발이다.
자신의 티끌에도 유의하고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턱도 없는 바깥의 들보는 뿌리째 뽑아내어야 한다. 한둘이 아니다, 무리다, 체계적이다, 이념적이다. 힘든 삶에, 어지럽게 돌아가는 정국 감상에도 부족한, 없는 시간을 쪼개어 그들의 발언을 살펴봐야 하는 괴로움을 어찌할 수가 없다. 현직이자, ‘통일부’ 장관인 정동영의 최근 발언을 예로 삼는다.
통일이 굉장히 폭력적이라니,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어떤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인지, 왜 어떻게 폭력적인지 설명도 없다.
김정은 입장에선가, 북한 주민 입장에선가. 두 국가를 주장한 그가, 더불어민주당 강령에도 없는 통일을 목표, 꿈이라 입에 담았다. 그런데 폭력적인 통일이 목표라 꿈이라, 말이 되는가. 정동영에게 통일은 어떤 외형과 내용, 형식, 과정인지 밝혀야 한다.
하긴 그는 “통일은 독일식 모델, 베트남 모델, 개성공단 모델 3개가 있었는데 독일식 모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베트남 모델도 불가능하다. 개성공단 모델은 닫혔다”고 했다. 개성공단 모델이 통일 모델인가. 최상의 지향이 교류협력에 의한 평화 공존 아닌가.
사실 이 말 전에 그는 “오늘 현재 통일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개념이 아니고 이상적인 개념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대한민국 헌법적 통일은 허상일 뿐이다. 그에게 통일은 결국 평화 공존 아닌가. 그렇기에 개성공단을 말한 게 아닌가.
평화 공존 예찬은 거듭된다.
“일찍이 옥중의 안중근 의사께서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우리 민족의 비원(悲願),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역대 정부가 35년 동안 걸어온 노선에 대한 역사적 계승, 분열이냐 통일이냐, 조국은 하나다를 외치며 분단 시대를 헤쳐 온 수많은 이들의 눈물 섞인 염원, 그리고 빛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이재명 정부의 국정철학을 관통하는 시대적 과업, 그것이 바로, 한반도의 평화 공존입니다(2026 통일부 시무식, 1월 2일).”
참 문제가 많은 발언들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조국은 비록 너덜너덜했지만 아직 존재했다, 분단도 없었다. 그가 옥중에서 한·중·일 그리고 기타 아시아 국가가 참여하는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저술했지만 그 평화가 분단된 조국과 이웃 국가와의 평화는 아니었다.
만약 안 의사께서 지금의 한반도 현실을 보신다면, 평화 공존 아니면 조국의 완전한 독립 즉 통일, 무엇을 염원하시겠는가. 어디에 몸을 던지시겠는가. 왜 안 의사를 소환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평화 공존과 연계지어 자신들을 합리화하려는, 고육지책이 아니라 억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제 8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금년 3.1절 기념사에서 “선열께서 간절하게 바랐던 평화와 공존의 꿈을 지금, 여기, 한반도에서부터 실현해 나갑시다”며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남북 평화 공존과 연계한 것도 마찬가지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역사적 계승이 평화 공존인가. 기본합의서는 남북이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규율하기 위한 합의가 아니었던가. 통일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기본합의서가 과연 존재했을까, 서명되었을까. 평화가 합의서의 목적이었나.
'남북기본합의서'의 전문은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4 남북 공동 성명에서 천명된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고(…)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고 명시했다.
역대 정부의 그 수 많았던 헌신과 노력의 목적이 평화에만 머물렀던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평화적 과정을 통한 통일이 아니었던가. 평화가 목적이었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었던 셈이다. 헌법적 의무를 간과·무시했기 때문에.
앞서 독일식 모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처럼 정동영은 독일 통일을 우리 통일 모델에서 지웠다. “북한이 의심하는 독일식 흡수통일은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길이 아니다(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열린 ‘2025 국제한반도포럼’, 지난해 9월 30일)”, “거듭 강조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를 존중하며, 북측이 말하는 ‘도이췰란트식 체제통일’을 배제합니다(2026 통일부 시무식, 1월 2일).”
독일 통일을 흡수통일로 규정한 빈약한 인식에 대해서는 더할 말이 없다. 필자의 칼럼(“1990년 3월 18일 독일, 가야만 하는 길,” 2026.03.20)으로 대신한다.
정동영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북미 대화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평화의 시작은 전쟁을 끝내는 것입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출발점은 적대관계의 해소입니다. 그중에서도 북미 적대관계 해소가 본질입니다. (…)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과 함께 북미대화 성사에 대한 기대감의 불씨도 살아났습니다. 우리 정부는 자기중심성을 갖고 북미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역할과 함께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의 역할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통일부-통일연구원 공동주최 학술회의, 3월 25일).”
“북미대화를 적극 지원해 가면서, ‘전쟁 상태 종식’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주변국의 건설적 역할도 이끌어 내게 될 것입니다(2026 통일부 시무식, 1월 2일).”
북핵 문제가, 한반도 긴장이, 북한의 도발이 북미 간에 대화가 없어서였는가. 북미 간의 수 많았던 대화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것은 북한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국가이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북핵 문제 해결을 포함하여 평화, 통일에 이르는 우리의 국가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고, 북미대화는 여러 ‘필요조건’ 중 하나일 뿐이라고 강조해 왔다(“‘분단 부역자’에 더한 ‘북핵 부역자’,” 2026.01.23: “대선 후보가 명심해야 할 성장·통일 7가지 원칙(상/하),” 2025.04.25/05.02).
순간적인 외형적 평화,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익을 대한민국의 이익이라 포장해 정치 쇼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면, 북한 편들기가 아니라면, 북미 대화 외에 우리가 추진해야 할 다른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실현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가 가야 할 길이다.
정동영의 말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통일부는 절망의 끝, 패배의 시간 속에서도 한반도 평화의 역사를 한줄 한줄 쉼 없이 써내려 온 모든 이들의 계승자입니다. (···) 통일부는 적대와 대결의 마지막 방파제, 화해협력과 평화 공존의 마지막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2026 통일부 시무식, 1월 2일).”
통일부가 답해야 한다. 무슨 뜻입니까, 이해가 됩니까. 동의합니까. 통일부가 평화부, 평화공존부입니까. 존재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동영은 통일부 시무식에서 북한에도 새해 인사를 전했다. 통일부 직원도 끼워 넣었다. “신년사를 마치면서 오늘은 특별히 이 자리를 빌어서, 연초부터 큰 정치행사로 분주할 북측의 인사들에게도 새해 인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 ‘한반도의 봄을 기다리는’ 600명의 통일부 직원들과 함께 북측에 따뜻한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인사의 대상은 북한 관계자, 당국자였다. 북한 주민에는 한 마디도 없었다. ‘남의 나라 국민’이라서 새해 인사 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이재명·더불어민주당·소속 정치인, 정동영 생각과 다른 점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통일 마구잡이가 나오는 현실이다. 통일 담론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6월 중순 공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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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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