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 6월 '샤힌프로젝트' 기계적 완공…정유 의존도 낮출 승부수
NCC 감축 논의 속 대형 에틸렌 설비 등장…기존 석화업계는 공급 부담 우려
"구조조정 취지 동참" 속 최신 설비 경쟁력 강조…업계 시선은 엇갈려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에서 원유를 정제해서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는TC2C건설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에쓰오일
요즘 석유화학업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구조조정'이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제품값은 눌리고 수익성은 떨어졌다. 정부와 업계는 나프타분해시설(NCC) 생산능력을 줄이는 방안까지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회사가 있다. 에쓰오일이다.
기존 석유화학 업체들은 설비 감축과 통폐합 압박을 받는데 정유사인 에쓰오일은 울산 온산공장에 9조원 넘게 들여 대형 석유화학 설비를 짓고 있다. 이름은 샤힌프로젝트다. 겉으로 보면 공급과잉 업종에 새 공급자가 들어오는 일이다. 하지만 에쓰오일 입장에서는 정유·석유화학 통합 사업자로 넘어가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오는 6월 말 샤힌프로젝트를 기계적으로 완공할 예정이다. 이후 올해 말까지 시운전을 거쳐 상업가동 준비를 마치고 내년 초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에쓰오일은 지난 11일 올해 1분기 경영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샤힌프로젝트와 관련해 "스케줄에 지금까지 변화 사항은 없다"며 "6월 말 기계적 완공 그리고 하반기 중 시운전을 거쳐서 내년 초에 상업 가동 예정"이라고 밝혔다.
샤힌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에쓰오일은 스팀크래커 기준 연산 180만t 규모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에틸렌은 플라스틱과 합성수지, 포장재, 자동차 부품 등으로 이어지는 석유화학 밸류체인의 출발점이다. 흔히 '석유화학의 쌀'로 불린다.
샤힌 프로젝트 경쟁력. 에쓰오일 IR 자료 캡쳐
핵심은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s) 기술이다. 기존 석유화학 공정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온 나프타 등을 다시 NCC에 투입하는 단계를 거친다. 반면 TC2C는 원유와 중질유 등 원료를 화학제품 생산 공정으로 더 직접 연결해 중간 단계를 줄이고 화학제품 수율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에쓰오일의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자료에 따르면 샤힌프로젝트는 TC2C 신기술 도입을 통해 화학제품 생산 수율을 높이고 기존 공정 대비 설비투자비와 운영비를 30~4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사는 이를 통해 동북아시아 역내 상위권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에쓰오일이 9조원을 건 이유는 정유사업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정유업은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재고효과에 따라 실적이 크게 흔들린다. 올해 1분기 에쓰오일도 영업이익 1조2311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했지만 실적 개선에는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과 래깅효과, 등·경유 중심의 정제마진 개선이 함께 작용했다.
정유업계 입장에서는 원유를 계속 연료로만 팔 것인지, 화학제품 원료로 더 비싸게 바꿔 팔 것인지가 핵심 과제다. 샤힌프로젝트는 에쓰오일이 후자를 택했다는 신호다. 모회사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원유를 화학제품 원료로 전환하는 다운스트림 투자를 확대해온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진행 현황. 에쓰오일 IR 자료 캡쳐
사업은 이미 막바지다. 에쓰오일의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자료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샤힌프로젝트의 EPC 전체 진행률은 96.9%다. 설계는 97.3%, 구매는 99.9%, 건설은 93.6%까지 진행됐다. 스팀크래커 주요 설비와 TC2C 가열로, 저장탱크 설치도 완료됐다.
판매 기반도 함께 깔고 있다. 에쓰오일은 올레핀 모노머 고객사와 연간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추가 계약도 추진 중이다. 제품 고객사로 연결되는 지선 배관 공사도 진행하고 있다. 폴리에틸렌(PE)은 사전 마케팅을 통해 국내 주요 고객을 확보했고 장기 수출계약도 체결했다.
문제는 완공 시점이다. 석유화학업계는 지금 새 설비를 반길 만한 상황이 아니다. 중국 업체들이 대규모 증설에 나서면서 범용 제품 공급은 이미 넘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수익성이 떨어진 NCC를 줄이거나 통폐합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구조조정 논의도 구체화됐다. 정부와 업계는 지난해 8월 석유화학산업 사업재편 자율협약을 통해 국내 NCC 생산능력을 270만~370만t 줄이는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 2월에는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케미칼, 롯데케미칼이 제출한 대산 1호 사업재편계획도 승인됐다. 업계 전체가 공급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샤힌프로젝트는 다른 결의 변수로 등장한 셈이다.
이 대목에서 기존 석화업계와의 미묘한 신경전도 생긴다. 한쪽에서는 공급이 많아 설비를 줄여야 한다고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연산 180만t 규모 에틸렌 설비가 새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기존 업체들 입장에서는 '우리는 줄이라면서 신규 공급은 들어오는 구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에쓰오일도 구조조정 논의 자체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정부 사업재편의 목적이 노후·저효율 설비를 줄이고 고효율 설비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데 있다며 샤힌프로젝트가 이 같은 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한다고 설명해왔다.
다만 에쓰오일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논의일 수밖에 없다. 샤힌프로젝트는 중국발 공급과잉이 본격화된 뒤 갑자기 추진한 투자가 아니라 수년 전부터 9조원대 자금을 투입해 진행해온 초대형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완공 직전 기존 노후 NCC와 같은 구조조정 잣대로 묶이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구조다.
샤힌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면 에쓰오일은 최신 설비와 정유 기반 원료 조달을 앞세워 에틸렌·프로필렌과 PE 등 주요 제품군에서 존재감을 키우게 된다. 기존 석화사들은 낮은 마진과 높은 원가 부담을 안고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상황에서 새 경쟁자를 맞게 된다.
결국 샤힌프로젝트의 성패는 '싸게 만들어 안정적으로 팔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최신 설비와 정유 기반 원료 조달을 앞세워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면 에쓰오일은 정유사에서 정유·석유화학 통합 사업자로 체질을 바꿀 수 있다. 반대로 석화 시황 부진이 길어지고 제품 마진이 약세를 이어가면 9조원대 투자 부담이 실적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샤힌프로젝트는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 국면에 던져진 역설적인 변수다. 업계가 공급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 시점에 에쓰오일은 오히려 최신 설비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선택을 했다. 결국 관건은 이 선택이 공급과잉을 키우는 부담으로 남을지, 노후 설비를 밀어내는 새로운 경쟁력으로 작용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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