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아닌 고뇌하는 인간으로”…67년 세월을 건너온 박근형의 샤일록 [D:현장]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5.12 17:59  수정 2026.05.12 17:59

신구 박근형, 전 회차 원캐스트로 '베니스의 상인' 출연

7월 8일부터 8월 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공연

연극계의 두 거장, 배우 신구와 박근형이 셰익스피어의 가장 논쟁적인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다. 이번 공연은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지며 동시대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데일리안DB

오경택 연출은 이번 프로덕션의 핵심 키워드로 ‘선택적 공정성’을 꼽았다. 그는 유대인 샤일록을 단순한 악인으로 규정하기보다, 그가 처한 환경과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의 공정성을 조명한다고 설명했다.


오 연출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놀 서경스퀘어 1관에서 열린 ‘베니스의 상인’ 기자간담회에서 “샤일록의 복수 행위는 잔혹하지만,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은 그의 선택이 아니었다”며 “재산을 몰수하고 개종을 강요하는 판결 역시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원작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샤일록의 인간적인 고뇌와 동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서사를 재구성했다”고 덧붙였다.


작품의 서사는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가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고리대금업자 샤일록과 맺는 위험한 계약에서 시작된다. 기한 내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자신의 살 1파운드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이야기는 세 가지 플롯이 정교하게 맞물리며 전개된다. 포셔가 세 개의 상자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시험을 통해 사랑을 찾는 ‘벨몬트 플롯’, 목숨을 건 ‘계약 플롯’, 그리고 사랑의 맹세가 담긴 ‘반지 플롯’이 교묘하게 얽힌다. 오 연출은 “이 세 가지 주요 플롯에 주도적으로 얽혀 있는 샤일록, 안토니오, 포셔, 바사니오 네 명의 캐릭터 모두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샤일록 역에 박근형과 베니스의 통치자인 공작 역의 신구는 전 회차 모두 원 캐스트로 소화한다. 이밖에 안토니오 역에 이승주와 카이, 포셔 역에 최수영과 원진아, 바사니오 역에 이상윤, 제시카 역에 김슬기와 김아영, 로렌조 역에 최정헌, 랜슬럿 역에 박명훈과 조달환 등이 출연한다.


ⓒ데일리안DB

샤일록 역을 맡은 배우 박근형은 1959년 대학 시절 이후 67년 만에 다시 샤일록을 연기한다. 그는 “젊었을 때는 단순히 권선징악의 틀 안에서 표현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환경 속에 처한 ‘사람’ 그 자체를 표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어 “진정한 예술가로서 샤일록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고, 관객들에게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도록 완숙한 연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니스의 법과 질서를 상징하는 공작 역의 신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무대를 향한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세월은 이길 수 없지만 대화하고 무대에 서는 시간이 즐겁고 보람차기에 남아있는 힘을 동력 삼아 공연에 임하겠다”며 소감을 전했다.


지혜로운 여인 포셔 역에는 배우 최수영과 원진아가 캐스팅되어 재치 넘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원진아는 “작품 자체가 고전이라 특정한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지나쳐온 과거를 대변해준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면서 “저 시대에는 저럴 수 있었겠다는 시선으로 보되, 지금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그 차이를 함께 느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수영은 “우아하고 클래식한 면모 뒤에 숨겨진 재치와 모험심을 입체적으로 살려 개성 있는 포셔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는 ‘연극내일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된 5명의 신진 배우가 앙상블로 합류해 그 의미를 더한다. 이 기금은 앞서 신구와 박근형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출연료와 공연 수익을 기탁하면서 조성된 것으로, 청년 연극인들이 현장에서 대가들과 직접 호흡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박근형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걸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젊은 배우들이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다”면서 “그 중에서도 고전을 하는 이유는 창작 희곡을 일으켜 세우려는 움직임이 필요하고, 젊은 연극인들이 기초적인 전통극을 알고 난 뒤 실험적인 활동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연극 ‘베니스의 상인’은 7월 8일부터 8월 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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