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별초군의 난 – 경주와 영주 [정명섭의 실패한 쿠테타 역사㉟]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5.12 14:01  수정 2026.05.12 14:01

반란은 목표는 현 정권의 타도에 있다. 국왕이든 대통령, 수상에 상관없이 집권자와 집권 세력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나를 위협하거나 괴롭히면 무력을 동원해서 엎어버리는 방식이 바로 반란의 본질적인 목표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려, 특히 무신 집권기에는 굉장히 특이한 반란들이 많이 일어났다. 특히, 무신 정권기의 최종 승자라고 할 수 있는 최충헌의 집권시기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온갖 반란들이 일어났다. 그래서 강력한 힘이 반란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보고 있다.


반란은 일어날 만한 이유가 생기고 호응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벌어진다. 반란에 가담하면 자신과 가족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고려시대 무신 집권기에 일어난 몇 몇 반란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경우가 많았다. 고려 신종 5년인 서기 1202년 10월에 벌어진 경주 별초군의 난이 대표적이다.


경주 읍성 ⓒ직접 촬영

경주의 별초군(別抄軍)이 영주의 사람들과 평소에 불화가 있었다. 이달에 끝내 운문의 도적과 부인사·동화사 두 절의 승도를 이끌고 영주를 공격하였다. 영주 사람 이극인과 견수등이 정예를 이끌고 성에서 뛰쳐나와 싸웠다. 경주 사람들이 패하여 달아났다.


별초군은 고려 중기 이후에 생겨난 군 조직으로 기존의 군 조직이 약화되자 대체된 일종의 특수부대로 윤관의 여진정벌 때 만들어진 별무반이 대표적이다. 시간이 흘러서 반란을 일으킨 무신들이 사병조직처럼 거느렸는데 조위총의 난을 평정할 때 편성된 전봉별초가 유명했다. 경주의 별초군은 아마도 해당 지역의 반란이나 위험상황을 평정하기 위해 편성된 부대로 보인다. 이미 8월에 경주에 선유사를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봐서는 해당 지역의 상황이 굉장히 안 좋은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는 고려 때 개경과 서경과 더불어서 동경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김사미와 효심의 반란에 휩쓸리고 무신 정권의 타락이 겹치면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이비와 패좌의 반란도 진압되지 않은 상태라서 당시의 경주는 몹시 혼란한 상황이 분명하다. 그런데 경주의 치안을 책임져야 할 별초군이 이웃 지역을 쳐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운문의 도적들은 물론 부인사와 동화사의 승려들까지 합세했다. 군대와 도적과 승려들이 손을 잡은 셈이다. 거기다 영주 주민들의 반격에 패배하고 쫓겨난 것이다. 반격을 주도한 이극인과 견수가 직책이 표시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일반인이 분명했다.


경주 별초군이 패배한 이후 경상도안찰사 지자심은 조정에 굳이 군대를 동원해서 진압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최충헌은 펄펄 뛰면서 강경한 진압을 주장한다. 최충헌이 이렇게 결심한 이상, 그 누구도 말릴 수는 없었다. 대장군 김척후를 지휘관으로 하는 진압군이 남하하자 경주 지역의 반란군들은 운문산과 울진, 초전의 반란군과 손을 잡고 3군을 편성한 다음 지휘관을 정국병마사로 칭했다. 비슷한 시기, 이비와 패좌의 반란이 진행 중이어서 이들도 함께 토벌할 목적으로 보인다. 고려사를 보면 이비의 직책이 경주 도령이라고 나오는데 어쩌면 이비가 영주를 공격한 경주 별초군의 핵심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해프닝처럼 끝날 뻔한 일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번진다. 바로 경주 지역의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이 좀 더 거창한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사 정언진 열전에 보면 경주 사람들이 몰래 고부군에 유배 중인 장군 석성주에게 낭장동정 배원우를보낸다.


고려의 왕업이 거의 다하였고, 신라가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이니 당신이 우두머리가 되어 사평도(沙平渡)를 경계로 하면 어떻습니까?


여기서 나온 사평도는 고려사 지리지에 한강이라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러니까 예전 신라의 영역을 그대로 차지해서 북쪽의 고려와 대치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왜 석성주인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혹시 신라의 왕성 중 하나이 석씨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같은 집안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던 석성주는 비록 유배 중이기는 하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단 승낙한 척 해서 상대방을 안심시킨 후에 군수에게 신고해서 체포하게 만든다. 배원우가 처형되면서 신라 부흥을 꿈꾸던 경주 별초군의 반란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고려에 대한 증오심이 컸던 경주 사람들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2년 후인 1204년에 가서야 잔당들이 토벌되면서 소멸되었다. 고려가 자신들을 괴롭히자 270여 년 전에 사라진 신라를 꿈꾼 것이다. 당대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손가락질을 했겠지만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을 당사자들에게는 정말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이자 바램이었을 것이다.



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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