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영국 국왕(왼쪽에서 두 번째) 부부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 내외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커밀라 왕비, 찰스 국왕, 트럼프 대통령, 멜라니아 여사.ⓒAP/연합뉴스
찰스의 의회 연설
찰스 영국 국왕은 60대가 되도록 존재감도 없고 자신감도 없고 자기 정체성도 없는 사고뭉치였다. 못 생긴데다 말도 어눌하고 엄마 엘리자베스 여왕 눈치만 보는 마마보이였다. 주제에 고상하고 기품있는 영국의 자랑 첫 부인 다이애나 왕세자빈을 버려두고 바람 피우는, 한 마디로 영국의 수치였다. 오죽하면 영국에서 찰스 왕세자와 그 말썽꾸러기 남매들 때문에 국왕제 폐지가 진지하게 논의됐을까?
그 찰스 국왕이 미국을 방문해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찰스 국왕의 미국 의회 연설은 지난 1991년 엘리자베스 여왕 이후 사상 두 번째 영국 국왕 연설로, 무려 36년만이다. 한국 시간 새벽 CNN과 BBC로 생방송된 찰스의 미국 의회 연설은 왜 영국에 국왕제가 필요한 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어쩌면 영국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수십 년간 참고 참으며 국왕제를 유지한 보람이 그 연설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80을 눈앞에 둔 노령에도 찰스 국왕은 자세도 꼿꼿하고 표정도 여유 있었고 발음도 정확했다. 연설 내용도 훌륭했다. 미국 상하원 의원들은 기립 박수로 회의장에 들어서는 국빈 찰스 국왕을 맞았고 연설 중간 중간 기립 박수로 동의했다. 연설이 끝난 뒤에는 기립 박수로 찰스 왕에게 경의를 표했다.
지난 2달 간의 이란 전쟁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보여준 객관적·중립적 태도 때문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 감정이 상한 것이 아니었다. 대다수 미국민 역시 영국에 대해 감정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모든 미국민들이 트럼프의 이란 전쟁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민들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온 동맹국 영국이 전쟁 국면에서 그런 객관적 자세를 취한 것에는 서운하다. 그게 인간이다. 그런데 찰스왕은 미국 의회 연설로 미국 의회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고, 미국민의 서운한 감정을 달래는데 성공했다.
부러운 패권국가들
찰스 국왕의 의회 연설 내용은 다른 언론에서 아주 자세히 보도됐으니 여기서 다룰 생각이 없다. 다만 부럽다. 미국이 부럽고 영국이 부럽다. 이란과 사생 결단의 전쟁을 치르는 중인데도 미국 국내는 여전히 평화롭고 할 거 다한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 직후인데도 찰스 국왕의 공식 방문(State Visit)도 예정된 대로 진행됐다. 지지율 30%밖에 안 되도 대통령은 여전히 대통령이고 여야 의원은 사이가 좋다.
그 큰 나라가 국가 이슈에 관한 한 하나로 뭉치는 거 보면 신기하고 또 부럽다. 한쪽은 대통령을 연호하지만 다른 한 쪽은 대통령 비난 구호가 난무하는 우리네와 다르다. 한쪽이 박수치면 다른 한쪽은 무조건 거부하는 우리 국회와는 너무 다르다. 코딱지만한 쪼끄마한 땅덩어리에 항상 반으로 쫙 갈라져 아웅다웅하는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
노쇠한 왕년의 패권국 영국도 부럽다. 국가 수반인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이란 전쟁 국면에서 원칙을 택하고 트럼프에게 협력을 거부한 결과, 실리의 손실이 만만찮은 것이 작금의 영미 관계다. 그러지 않아도 관세 협상과 그린란드 영유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분담금 인상 등으로 미국과 유럽 특히 영국의 관계가 껄끄럽던 차에 터진 이란 전쟁은 영미 관계를 아마도 1960년대 수에즈 운하 사건이후 가장 악화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찰스 국왕의 미국 의회 연설 한 방으로 영미 관계는 따스한 봄 햇살에 눈녹듯 녹아내렸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찰스 국왕 부부는 거의 이틀 내내 함께 식사하고 움직였다. 4월 27일 오후에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비공개 티타임을 갖고 저녁에는 영국 대사관 가든파티에 참석했다. 그 다음 날인 28일에는 백악관 공식 환영행사가 열리고 찰스 국왕이 미국 의회 연설 후에는 백악관 만찬을 함께 했다. 영국 버킹엄궁은 이번 방문이 영국과 미국, 그리고 동맹국들이 마주한 도전 속에서 양자 관계를 ‘재확인하고 갱신한(reaffirm and renew)’ 순간이라고 자랑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의 기억
1960년대 초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협상 대표로 일본에 보냈다. 국교정상화의 기본 골격은 김종필-오히라(일본 외무상) 메모였지만 실제 조율은 비공식 라인이었다. 당시 김종필은 박정희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겠지만, 별다른 경력없는 초급 장교 출신의 30대 중반 청년이었다. 일본은 야마사키 도요코의 대하소설 불모지대의 주인공 이키 다다오의 실제 모델 세지마 류조(瀬島 龍三) 이토 추 업무본부장을 막후 밀사로 썼다.
세지마 류조는 일본 육사와 육군대학을 수석 졸업한, 일본 대본영 작전참모 출신의 엘리트 장교였다. 그는 공식 외교 라인이 풀지 못한 난제들을 '막후 파이프라인'으로서 해결하는 역할을 했다. 세지마는 이후 이토추 회장을 역임하고 나카소네 내각의 고문으로 일본 정재계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했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맞았을 때 작고한 박태준 당시 자민련 총재가 일본 정재계 원로를 설득해 일본의 자금 지원을 받아냈다. 외교에는 이런 비공식 라인이 꼭 필요하다.
한국 외교, 우회 수단 있나?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이런 우회 수단이 전혀 없다. 한국의 누가 미국 방문해 트럼프와 식사 같이 하고 의회에서 연설할 수 있을까? 워싱턴의 주미 한국 대사관에서 파티한다고 트럼프 부부가 참석이나 할까? 그게 부럽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미국을 방문해 결국 주미 대사와 식사하지 않았나?
한일 관계만 해도 그렇다. 과거에는 박태준, 김종필, 김대중 등 일본이 인정하는 지일파들이 있어 외교관들이 풀지 못하는 숙제나 현안을 일본 정계의 원로와 직접 해결했다. 지금은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한중 관계는 더하다. 한국에 송시열이 명나라를 그리워했듯 중국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친중파는 많은데 중국 내에는 친한파가 없다. 한국을 졸로 보는 경한파 멸한파(輕韓派 蔑韓派)만 즐비하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아침부터 간이 식당에서 혼밥하도록 내버려뒀겠나? 그나마 중국 권부에서 예우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금은 운신의 폭이 전혀 없다.
관세협상에 이란 전쟁까지 터진 지난달 중순, 김민석 국무총리가 미국을 방문하고도 미국 부통령을 만나고도 쿠팡 로비나 받고 돌아오는 현실. 야당 대표 장동혁이 미국을 1주일이나 방문하고도 차관보인지 차관 비서실장인지밖에 만날 수 없는 현실. 그게 우리의 외교력 수준이다. 그러니 우리가 진정한 외교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大~한민국’이라 자부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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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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