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지원과 구조적 모순 사이…지연되는 예술가의 자립
지원이 오히려 생계 위협?…수급권 박탈 공포에 떠는 청년 예술가들
한국의 예술인 복지 정책은 지난 10여 년간 유례없는 양적 성장을 거듭해왔다. 과거 ‘개인의 희생’에 의존하던 창작 환경은 이제 국가가 예술 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주는 공적 부조 체계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특히 청년 예술가들을 향한 예산 투입과 지원 사업의 다각화는 이들이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자부심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가장 가시적인 성과는 직접 지원 사업의 규모 확대와 그에 따른 창작 지속성 확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대표 사업인 ‘예술활동준비금’은 매년 2만명 내외 예술인에게 1인당 300만원을 지급하면서 청년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중단하지 않게 돕는 ‘최후의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생애 단 한 번 제공되는 ‘신진예술인 예술활동준비금’(200만원)은 시장 진입 장벽이 높은 청년 및 무명 예술가들에게 첫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는 실질적인 마중물이 되고 있다.
2015년 도입 당시 3523명에 불과했던 지원 규모는 2021년 2만1000명, 2025년 기준 1만9995명 등으로 확대됐다. 사업 시작 이후 현재까지 누적 13만명이 넘는 예술인이 이 제도를 통해 창작의 최소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수혜를 입은 김도엽 연주자(클래식 타악기)는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예술가가 한 단계 더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출발점”이라며 제도의 긍정적 역할을 전했다. 이정연 배우(방송/연극) 또한 “정확한 입금 시기를 알 수 없는 불안한 환경 속에서 준비금은 하고 싶었던 활동을 실현하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예술인을 사회보장 체계 안으로 포섭한 제도적 안착 또한 주요한 성과다. 2020년 말 도입된 예술인 고용보험은 가입자 수가 꾸준히 증가해 2023년 20만명을 돌파한 이후 2025년 현재까지 외형적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표준계약서 체결 시 제공되는 ‘예술인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과 청년들의 자산 형성을 돕는 ‘예술활동 적립계좌’ 등은 예술인들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문체부는 지난해 국립예술단체 청년교육단원을 확대해 542명에게 전문교육과 현장 경험을 제공하고, 전통연희·한국무용·연극·오케스트라 분야 국립청년예술단 4개 단체를 신설했고, 청년예술인 예술활동 적립계좌도 도입해 청년예술인 약 3000명이 창작활동을 지속하며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문체부는 국무조정실 주관 ‘2025년 청년정책 추진실적 평가’에서 장관급 기관 1위를 차지하며 정책의 실효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예술활동준비금지원사업 소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성과 이면에는 현장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모순이 여전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지점은 지원 주기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격년의 함정’이다. 예술활동준비금은 한정된 재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전년도 수혜자를 제외하는 격년제 참여를 원칙으로 한다. 한 청년 연극인은 “한 해 지원을 받으면 다음 해에는 필연적으로 ‘지원 절벽’을 경험한다”면서 “계획적인 경력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행정적 피로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비용이다. 예술활동증명부터 소득 심사, 사후 보고서 제출까지 이어지는 다단계 절차는 창작 몰입을 방해한다. 연극 배우 A씨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작성해야 하는 서류와 증빙 자료가 지나치게 방대하다. 창작 시간보다 행정 사무에 쏟는 시간이 더 많아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인 청년 예술가들은 300만원 내외의 지원금을 받을 경우 일시적 소득 증가로 인해 수급 자격이 박탈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지원이 오히려 생계를 위협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역 간 정보 접근성의 격차도 심각하다. 정보 접근성이 낮은 비수도권 예술가 B씨는 “지원 사업 대부분이 수도권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고, 지역 현장까지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복잡한 신청 절차나 매년 달라지는 공고 내용을 일일이 파악하기에 한계가 있어, 지역의 문화재단 같은 창구에서 세밀하게 챙기지 않으면 지원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출발선에서부터 소외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직접 지원 위주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예술인 복지 제도가 예술인들의 경제적·예술적 활동에 미친 영향에 대한 실증 분석(2023)’에 따르면, 복지 제도가 ‘창작 활동 지속(87.1%)’이나 ‘생활 안정(84.5%)’에는 높은 기여도를 보였으나, ‘지속적인 수익 창출 및 경제적 자립’에 기여한다는 응답은 불과 31.8%에 그쳤다.
연구진은 “현행 복지 제도는 예술인의 소득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보다 일시적 보조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오히려 국가 지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술인 복지는 단순히 현금이나 현물 지원 등 1차원적인 지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예술인의 삶과 예술 생태계의 안정화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로 거듭나야 한다”며 “양적 성과를 넘어 예술가의 ‘질적인 홀로서기’를 돕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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