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에 '김현지' 족쇄 채운 민주당은 자성해야 [기자수첩-정치]

김주훈 기자 (jhkim@dailian.co.kr)

입력 2025.10.23 07:00  수정 2025.10.23 08:01

'김현지'로 얼룩진 李정부 첫 국감

정쟁 불붙인 與, 야당 탓은 적반하장

'민생 국감' 실종…李 출석 결단해야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배석해 있다. ⓒ뉴시스

"김현지가 누구길래"라는 말, 이제는 옛말이 됐다. 정치 고관여층만 알던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이름이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일을 잘해서 주목받은 게 아니라,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각종 유언비어와 추측성 루머 때문이라면 웃을 일이 아니다. 대통령실의 품격을 깎아내린 건 누구인가. 냉정히 말해, 이번 사태는 더불어민주당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김 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측근, 이른바 '성남라인'의 핵심 인물이다. 사실상 이 대통령 정치 여정을 처음부터 함께해 온 참모다. 워낙 조용하고 신중한 스타일이라,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처럼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았다.


그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으로 임명됐을 때 정치권 반응은 담담했다. '곳간지기' 역할을 맡겼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인사였고, 오랫동안 잡음 없이 실무에만 집중해 온 인물이었기에 대통령 메시지를 왜곡하거나 권한을 휘두를 거라는 우려도 크지 않았다. 다른 말로 매우 충성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치권에서 김 실장을 두고 하는 평가는 대체로 비슷하다. "충성스러운 참모" "성남라인이라는 이름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


김 실장과 몇 번 소통했다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근사근한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특이했던 점은 이 대통령 의원실에 가면 보통 보좌관 자리는 맨 안쪽에 있지만 김 실장 자리는 중앙에 있었다"며 "의원이 나오면 김 실장을 볼 수 있는 구조인데, 그만큼 책임과 업무가 많다는 의미 아니겠느냐"라고 회상했다.


이 대통령 핵심 참모들이 '성남 라인'이란 꼬리표를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에서 성남라인이라는 표현하는데, 본인들은 부담스러워한다"며 "사람을 오래 믿고 쓰는 것은 좋은 것인데, 능력이 아닌 타이틀로 묶어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김 실장은 그동안 크게 주목받은 적이 없다.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사퇴 종용' 논란 때 이름이 잠깐 오르내렸을 뿐, 곧 조용히 잊혔다. 그런 그가 이번 국감 시즌, 느닷없이 전국적 인물이 된 건 지난달 24일 국회 운영위원회 때문이다. 민주당이 '정쟁화'를 우려한다는 이유로 전례 없는 '총무비서관 불출석'을 주장하면서다.


당시 운영위 여당 간사 문진석 의원은 "관례대로 총무비서관을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일견 동의는 하지만 이를 정쟁으로 삼으려는 국민의힘 의도에 우린 동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쟁을 피하고 싶었을 민주당의 속내는 이해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악수였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키워버린 셈이다.


야당은 김건희 여사를 두고 "암막 뒤 실세"라며 공세를 퍼부었던 민주당의 과거를 그대로 되갚아주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번엔 "스토킹"이라며 반발한다. 스스로 불을 붙여놓고 이제 와서 불타는 걸 탓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의 보직 변경이 논란에 기름을 부은 건 맞지만, 우상호 정무수석이 100% 국정감사에 출석한다고 호언장담했으니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민주당이 김 실장을 출석시켜 담담하게 대응했다면 지금처럼 '실세설'이 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이 처음엔 출석을 주장하다가 "국민의힘 음해에 따라가 주면 난장판이 된다"(박지원 의원)며 입장을 뒤집은 건, 솔직히 비겁하다. 그리고 그 비겁함이 김 실장을 더 '특별한 인물'로 만들어버렸다.


최근 김 실장에 대한 일련의 보도를 보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여당이 스스로 가치를 낮추고 있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김 실장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록이 돌아다니고, 예전 CCTV 영상이 '대통령과의 관계 증거'랍시고 퍼진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보면 위법성은커녕 근거도 없다. 그저 가십일 뿐이다. 유튜브엔 혼외자·불륜설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이 난무한다. 이게 과연 정상적인 공론장인가. 대통령을 이런 구설의 한복판에 세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민의힘 탓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한 여당의 책임도 분명하다.


결국 오는 29일 국회 운영위에서 김 실장의 증인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를 보면 불출석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안방마님'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억측과 유언비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이젠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김현지 국감'을 피하려다 '김현지 국감'을 만들어버린 이 촌극의 해법은 단순하다. 김 실장을 국감에 내보내면 된다. 국감이 끝난 뒤 국민은 "별일 아니었네"라고 할 것이다. 결국 국민이 궁금한 건 '김현지'가 아니라, 내 삶이 나아질 방법이다. 정치가 그 본질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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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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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운여행자
    모르긴 해도 뭔가가 있으니까 민주당이 저렇게 입에 거품을 무는 거 아니겠어? 점점 더 궁금해 지네.
    2025.10.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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