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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영화 뷰] '겟아웃'·'어스'·'안테벨룸', 작품 속 '인종차별'


입력 2022.02.21 13:37 수정 2022.02.21 13:36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안테벨룸' 23일 개봉

할리우드에서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노예 12년', '문 라이트', '그린 북', '헬프'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블랙클랜스맨' 등 영화를 통해 인종차별, 갈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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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2018년 '겟 아웃'의 등장은 각종 상징과 은유, 신선한 스토리로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평을 받으며 인종차별 문제에 다시 경종을 알렸다.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흑인 남성 주인공이 백인 여자친구의 집에 초대받으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흑인을 비하하거나 학대하는 것만이 차별이 아니라 피부색만으로 인간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고 이야기했다.


백인이 운전해 벌어진 교통사고지만, 경찰은 조수석에 앉아있던 흑인에게 신분증을 요구한다. 백인들이 가득한 가든파티 장면에서는 백인 여성이 흑인의 몸을 만지며 흑인의 여자친구를 부러워하고 다른 백인 남자는 흑인 골퍼 타이거 우즈를 언급하며 운동신경을 칭찬한다. 이는 칭찬이 흑인들을 한정된 영역에 가두는 배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백인 여자친구 가족이 흑인 남성에게 가하려고 했던 행위를 통해 상상을 뛰어넘는 백인들의 우월주의를 기발하게 표현했다.


조던 필 감독과 제작진은 '겟 아웃'에 이어 '어스'로 조금 더 넓게 미국 사회에 행해지는 각종 차별을 겨냥했다. '어스'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상대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타자에 대한 적대적인 시선과 외부 침입에 대한 거부감을 밑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이 타자를 도플갱어에 투영시키며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나인지, 상대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에서 인종 문제에 집중 포커스를 하지 않았지만 이민자, 계층, 인종,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문제 등 미국 사회의 민낯을 꺼내놓는다. 특히 제목 '어스'(US)가 '우리'와 '미국'(United States)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영화의 제목은 더 명확해진다. '겟 아웃'처럼 '어스'의 주인공도 흑인, 이야기의 끝을 내는 것도 흑인인 동시에 우스꽝스러움을 책임지는 건 백인으로 설정하며 그동안 기존 영화의 클리셰를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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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벨룸'은 '겟 아웃', '어스'의 제작자 레이먼드 맨스필드와 숀 매키트릭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영화 팬들의 기대를 받기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안테벨룸'은 이미 해외 공개 이후 전 세계 17개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으며 프랑스, 핀란드 등 다수의 국가에서 역주행 현상까지 만들어냈다.


'겟 아웃', '어스'의 제작진답게, '안테벨룸'은 전작들과 많이 닮아 있다. 최소한의 정보 공개와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라는 장르를 주무르며 백인 우월주의에서 비롯해 인종차별이 만연한 배타적인 사회를 꼬집는다. 이번에는 전작들보다 무차별적이고 적나라하게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고들었다.


'안테벨룸'은 미국 남북전쟁 직전의 상태를 뜻하며, 처음 시작부터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흑인과 이들을 노동력을 착취하고 학대를 일삼는 백인들의 모습을 비춘다. 흑인 이든(자넬 모네)은 이름을 묻는 백인에게 맞은 후에야 가까스로 이름을 토해내는가 하면, 소리를 내지 말라는 백인들의 명령에 묶고 있는 집의 바닥의 삐걱임조차 피하기 위해 기이한 움직임을 보인다. 목화밭에서 일하는 흑인들은 백인의 눈밖에 나지 않도록 바짝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신변을 비관해 목숨을 끊는 인물도 등장한다.


이후 이든은 아이폰의 알람을 들으며 눈을 뜨고 옆에는 남편이 자고 있다. 현재의 미국에서 이든은 베로니카란 이름으로 흑인 인권가로서 흑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만큼 백인들의 위협도 겪지만, 이런 상황은 베로니카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닌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백인 호텔리어의 무시, 백인 웨이트리스의 자리 차별, 엘리베이터에 탄 어린 백인 소녀가 베로니카에게 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포즈 등은 지금도 흑인들이 겪는 일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연출 방법을 택해 관객들을 환생이라는 장치로 이끈다. 후반부는 이 장치를 비틀며 인종차별의 정점을 보여준다.


할리우드가 인종차별을 각성하는 영화를 계속 내놓는 것에는 다른 형태로 변주돼 이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일어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 Matter) 운동과 '화이트 워싱'(미국 영화 산업 용어 중 하나로, 백인이 아닌 캐릭터인데도 백색 인종 배우로 캐스팅하는 행태), 백인들의 잔치로 불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보이콧' 등이 지금의 미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안테벨룸'에서 이든을 폭행하던 백인 우월주의 재스퍼 대위는 죽음을 앞두고 "우리는 어디에도 있다"라고 경고하듯 말한다.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인종차별 영화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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