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거리로…퇴사의 해방감을 한 편의 이야기로
브라운관 모니터·밴드 사운드, 2000년대 감성으로 풀어낸 해방감
백발의 소연이 건넨 미소…후회할 순간까지 낭만으로 기억하기
쇼츠, 릴스 등 짧은 길이의 영상물들만 소비되는 현재 가수가 곡 안에 담아낸 상징과 그들의 세계관, 서사를 곱씹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아티스트가 담아낸 ‘작은 영화’인 뮤직비디오를 충분히 음미해보려 합니다. 뮤직비디오 속 이야기의 연출, 상징과 메시지를 논하는 이 코너를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하고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퇴사를 선포하며 소금까지 뿌린 소연은 사무실을 벗어나 스쿠터를 타고 거리를 누빈다. ‘퇴사할게여’ 뮤직비디오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과장된 이야기로 펼친 뒤, 훗날 이 하루를 어떻게 기억할지 묻는다.
아이들(i-dle) 소연은 지난 7일 첫 솔로 정규앨범 ‘끝내주는 인생’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퇴사할게여’는 방송인 기안84가 내레이션에 참여한 밴드 사운드의 곡이다. 뮤직비디오는 퇴사를 선언한 인물의 해방감을 2000년대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화면과 익살스러운 연기로 옮겼다.
ⓒ소연 ‘퇴사할게여’ 뮤직비디오
줄거리
소연은 서류와 브라운관 모니터가 빼곡한 사무실에 있다. 흰 원피스에 사원증을 건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복사기에 몸을 기대고, 동료들이 일하는 책상 위에 드러눕기도 한다. 업무를 위한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이 이어진다.
‘퇴사할게여’라며 자리를 박찬 소연은 사무실에 소금을 뿌린다. 짐을 정리하고 회사를 벗어나자 배경은 거리로 바뀐다. 소연은 두 팔을 펼치고, 스쿠터를 타고 도심을 달린다.
영상에는 이성과 마주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부터 거리에서 춤추는 장면까지 자유로운 모습이 이어진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군무는 퇴사라는 이벤트를 즐겁고 커다란 축제처럼 만든다.
마지막에는 흰옷을 입은 백발의 소연이 등장하는데,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이 퇴사 후의 소란스러운 하루에 여운을 남긴다.
ⓒ소연 ‘퇴사할게여’ 뮤직비디오
해석
‘퇴사할게여’에서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소연과 사무실의 관계다. 복사기는 업무를 처리하는 기계지만 그는 그 위에 몸을 기댄다. 책상도 서류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누워 있는 자리로 바뀐다. 일하는 사람에게 정해진 자세와 행동을 어기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질서가 흔들린다. 속으로 삼켰을 불만을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터뜨리면서 퇴사 장면은 직장인의 상상을 대신 실행하는 코미디가 된다.
회사를 나온 뒤에는 움직임의 범위가 넓어진다. 책상과 사무기기 사이에 있던 소연이 스쿠터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고, 거리에서는 여러 사람과 춤을 춘다. 사무실에서 자꾸 늘어지던 몸이 바깥에서는 활기를 얻는다. 공간의 변화가 곧 인물의 감정 변화가 되는 연출이다.
가사에서 퇴사 뒤 되찾고 싶어 하는 것들도 이와 연결된다. 누군가와 여유롭게 식사하고, 미뤄둔 여행을 떠나고, 다른 꿈을 시도하는 시간이다. 일이 우선이어서 뒤로 밀렸던 생활이 앞으로 나온다.
그렇다고 노래가 퇴사 뒤의 삶에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는 않는다. 가사에는 자신의 선택을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도 담겨 있다. 다만 그 순간까지 삶의 낭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백발의 소연이 짓는 미소 역시 모든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보다는 흔들렸던 시간까지 자기 인생으로 받아들이는 표정처럼 읽힌다.
ⓒ소연 ‘퇴사할게여’ 뮤직비디오
총평
소연의 익살스러운 연기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에 장난기를 더한다. 할리우드 배우 니콜 키드먼이 이혼 절차를 마친 뒤 두 팔을 벌려 해방감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밈을 재치 있게 오마주하는가 하면, 브라운관 모니터와 빼곡한 서류철, 예스러운 화면 질감으로 레트로한 질감을 완성한다. 90년대 외국 시트콤을 연상시키는 연출 속에서 주인공의 돌발 행동은 한층 친숙하게 다가오고 촌스럽고 과장된 순간을 숨기지 않는 프레임은 퇴사를 꿈꾸는 솔직한 내면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경쾌한 밴드 사운드는 영상의 복고적인 분위기를 받친다. 친숙한 밴드 음악의 문법에 퇴사라는 소재를 얹으면서 큰 소리로 따라 부를 수 있는 해방감을 만든다. 당장의 선택을 무조건 낙관하기보다 훗날 돌아봤을 때 웃을 수 있는 하루를 상상하게 하기에 마지막에 소연이 짓는 미소에는 현실의 무게마저 품어낸 솔직하고 건강한 낭만이 얹힌다.
한줄평
현실을 감당하는 어른의 솔직한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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