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고대 신화로 완성한 놀란의 가장 인간적인 반전(反戰) 영화 [볼 만해?]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7.26 10:29  수정 2026.07.26 10:35

트로이 전쟁 이후 10년에 걸친 오디세우스의 귀향 여정 그려

영화 사상 최초로 전편은 100% 아이맥스 70mm 필름 카메라로 촬영

그리스 절세미인 헬레네 역에 흑인 배우 캐스팅해 논란도

러닝타임 172분 8월 5일 개봉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거대한 비극을 소재로 삼을 때조차 사건 자체보다 그것이 인간에게 남긴 상흔을 들여다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체험의 감각으로 옮긴 '덩케르크', 핵무기 개발자의 죄책감을 응시한 '오펜하이머'에 이어 신작 '오디세이' 역시 가장 오래된 전쟁 신화인 '오디세이아'를 빌려 또 한 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영웅담보다 트로이 전쟁 이후 10년에 걸친 오디세우스의 기나긴 귀향 여정과 그가 사라진 뒤 이어지는 이타카의 혼란, 그리고 그 자리를 둘러싼 권력 다툼에 집중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끝내 돌아오지 않는 왕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 그를 기다리며 왕좌를 지키는 왕비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 그리고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선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가 각자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오디세이' 포스ⓒ유니버설 픽쳐스

왕이 사라진 이타카에는 권력을 노리는 구혼자들이 들끓고, 그 중심에서 안티노오스(로버트 패틴슨 분)는 텔레마코스의 목숨까지 위협하며 긴장을 고조시킨다. 한편 기억을 잃은 채 낯선 해안에 닿은 오디세우스는 그를 보살피는 바다의 여신 칼립소의 곁에서 서서히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며 가족에게 향하는 길을 되찾아간다.


놀란은 원작의 비선형 구조를 자신의 장기로 재해석한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기억, 신화와 인간의 시간이 끊임없이 맞물리면서 오디세우스가 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는지가 조금씩 드러난다. 단순히 괴물과 신들의 시련을 통과하는 모험담이 아니라, 전쟁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던 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깝다.


트로이 전쟁의 승리는 온전한 영광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아킬레우스의 분노, 헥토르의 죽음, 숱한 영웅들의 파멸이 승리와 나란히 놓여 있던 이야기였다. 놀란은 이 비극적 층위를 배경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오디세우스라는 한 인물의 시선 안으로 끌어와 정면으로 응시한다.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축복이 아니라 평생 짊어져야 할 짐으로 그려지고, 트로이를 무너뜨린 승리 역시 누군가에게는 학살이었다는 감각이 영화 내내 오디세우스를 따라다닌다.


고대 서사시의 외피를 입었음에도 이 영화가 지극히 현대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현재진행형인 우리의 비극을 정확히 비추기 때문이다. 전쟁 후에도 계속되는 트라우마, 돌아가지 못하는 병사, 권력의 공백 속에 무너지는 공동체의 모습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는 현실과 닮아 있다. 신화의 시공간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과 윤리는 여전히 지금, 여기의 이야기다.


이 같은 설득력은 실제 공간이 만들어내는 질감에서도 나온다. 영화는 영화 사상 최초로 전편을 100% 아이맥스(IMAX) 70mm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고, 디지털 CG를 최소화하는 대신 실제 로케이션과 인카메라(In-Camera) 기법을 적극 활용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스코틀랜드, 미국 등 세계 곳곳의 자연은 판타지적 배경이라기보다 실제 존재하는 공간처럼 화면에 담긴다. 해변을 비추는 장면에서는 '덩케르크'를 떠올리게 하는 황량한 해안의 이미지가 겹쳐지고, 키클롭스의 동굴과 하데스의 세계 역시 과장된 특수효과보다 현실의 질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신화를 믿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CG보다 실제 공간이 주는 현실감과 규모다.


음악 역시 영화의 정서를 단단히 붙든다. 루드비히 고란손은 청동 징과 리라, 기타, 신시사이저를 결합해 고대와 현대를 잇는 독특한 음향을 만들어냈다.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청동의 사운드는 오디세우스를 상징하는 하나의 음악적 모티브가 되고, 리라의 선율은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와 맞물리며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끌어올린다. 웅장함을 과시하기보다 끝내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죄책감을 따라가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주제와도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맷 데이먼은 정복자에서 끝없이 무너져가는 인물을 포착해 낸 탁월한 선택으로 빛을 발한다. 승리를 위해 도덕적 선을 넘어섰다는 트라우마, 동료들을 잃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생존자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의 깊고 번민에 찬 눈빛은 영웅이라는 껍데기 속에 갇힌 한 인간의 파멸을 밀도 있게 조명한다. 로버트 패틴슨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안티노오스를 위협적인 존재감으로 그려내며 극의 긴장감을 책임진다.


개봉 전에는 캐스팅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절세미인 헬레네 역에 흑인 배우 루피타 뇽이 캐스팅됐고, 성전환(트랜스젠더) 배우 엘리엇 페이지가 남성 캐릭터 시논을 연기하면서 일부에서는 원작의 이미지와 고증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다만 실제 극 중 헬레네의 분량은 논란의 크기에 비해 짧은 편이어서, 이러한 논란이 작품 전체를 좌우할 정도의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오디세이'는 방대한 원작 서사를 충실히 담아낸 만큼 긴 러닝타임과 수많은 등장인물은 관객에게 어느 정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놀란 특유의 몰입감 높은 연출과 몰아치는 템포 덕분에 지루함을 느낄 새는 없다. 촘촘하게 얽힌 교차 편집과 스크린을 압도하는 스펙터클은 긴 상영시간 내내 관객을 화면 속에 묶어둔다.


고대 신화를 빌려 오늘의 전쟁을 이야기하는 놀란의 방식은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그렇게 이 장대한 귀향길이 도달하는 지점 역시 "영웅은 어떻게 승리했는가"가 아닌 "그 승리의 대가는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이다. 러닝타임 172분. 8월 5일 개봉. 쿠키영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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