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님, 잠실 올림픽공원에는 '음모론자'가 없었습니다 [기자수첩-사회]

어윤수 기자 (taco@dailian.co.kr)

입력 2026.06.07 17:48  수정 2026.06.08 17:18

"망상·혐오" 경고한 법무장관…잠실의 청년들은 달랐다

소셜미디어 낙인과 잠실의 밤…누가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나

시민을 시위대로, 유권자를 음모론자로…광장을 검열한 권력의 언어

정성호 법무부 장관.ⓒ데일리안DB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황당한 참사를 두고 법무부 장관이 내놓은 메시지는 지독하리만큼 모순적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6일 페이스북을 통해 선관위의 책임 있는 반성과 신속하고 투명한 진상규명을 강력히 촉구했다. 특검과 국정조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 장관은 "사태의 혼란을 틈타 일각에서 또다시 준동하고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극단세력의 불법적인 폭력·위협 행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국민과 민주주의의 공간에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 극단세력은 얼씬도 하지 않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말은 화려하지만 결국 광장에 모인 유권자들의 항의를 극단 세력의 선동으로 뭉뚱그려 싸잡는 기성 정치권의 전형적인 프레임 전환이다. 현장을 직접 밟지 않은 채 내린 진단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 장관이 망상이라 치부한 그 현장, 현충일 저녁 잠실 올림픽공원 개표소 일대를 가득 메운 수만명의 청년들은 허상을 쫓는 음모론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참정권이 현장에서 짓밟히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겪어낸 피해자들이었다.


현충일인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모인 청년들이 바닥에 엎드려 손수 피켓을 제작하고 있다.ⓒ어윤수 기자

현장의 분위기는 정 장관의 우려와 달리 기성 정치권의 세력 싸움과 철저히 단절돼 있었다. 진영을 상징하는 색깔 피켓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청와대로 가자"며 판을 키우려던 기성 정치인들을 향해 "우리는 잠실을 지킬 것"이라고 문전박대한 것도 청년들 자신이었다.


그들이 바닥에 엎드려 스케치북에 마카로 꾹꾹 눌러쓴 "재선거"라는 요구는 시스템을 부정하는 음모론이 아니다. 부서진 민주주의의 기본권을 정상적인 법적 절차로 바로잡아 달라는 가장 상식적이고 법치주의적인 외침이다.


그럼에도 법무부 장관마저 이들을 음모론자라는 단어로 엮어 광장의 목소리를 검열하려 든다. 개표소 유리창에는 "언론은 시민을 시위대로 봅니다"라는 손글씨 피켓이 붙어 있었다. 유권자를 시위대로, 시민을 음모론자로 규정하는 언어가 반복될수록 청년들의 분노는 광장 밖으로 번졌다.


카메라가 드문 광장에서 청년들은 스스로 휴대폰을 켜고 라이브 방송을 하며 서로의 언론이 됐다. 권력과 기성 언론이 자신들을 어떻게 왜곡하고 낙인찍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망상이 아니라 법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실재하는 참사다. '음모론자'라 불린 청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개표소인 핸드볼경기장 유리창에 손글씨 피켓이 붙어 있다.ⓒ어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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