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도 몰랐다...이재용·최태원·정의선 덮친 '6억 성과급 전쟁'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5.13 13:15  수정 2026.05.13 13:31

AI 호황이 부른 숙제…많이 벌수록 더 요구하는 노조

창업주 세대엔 없던 '분배 갈등'…이제 사회적 담론으로

ⓒAI 생성 이미지

삼성전자 노사가 17시간의 마라톤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사후조정은 결렬됐다. 오는 21일 총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재임 중 두 번째 파업이라는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현대차 노조는 창업주 정주영 시대엔 상상조차 못 했던 ‘순이익 30%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고, SK하이닉스 노조는 이미 ‘영업이익 10%, 상한 없는 성과급’을 쟁취했다. 한국 재계 1·2·3위를 이끄는 총수들이 선대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성과급 전쟁 한가운데 나란히 서 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선대의 노조 공식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신조로 유명하다. 1960년 제일모직 노조 설립 시도를 무력화한 것을 시작으로 1977년 제일제당, 1987년 삼성중공업, 1988년 거제조선소에 이르기까지 구사대와 유령노조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막아냈다. 이건희 회장도 부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50년 무노조 경영을 고수했다. 결정타는 2020년 5월,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노조 와해 의혹을 공개 사과하며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삼성의 82년 무노조 신화가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현대차의 서사는 결이 다르다. 정주영 창업주가 노조에 부정적이었으나 1987년 6월 항쟁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민주화 바람이 불자 현대엔진 노조를 시초로 현대그룹 전체에 노조 결성 움직임이 번졌고, 현대차 노조는 그해 7월 25일 창립 직후부터 21일간 파업을 벌였다. 이후 1994년을 제외하고 매년 파업을 이어가며 한국 최강성 노조의 상징이 됐다. 정주영 창업주가 노조와 씨름하던 시대의 쟁점은 임금 인상과 고용 안정, 즉 ‘생존’이었다.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내일도 출근할 수 있는가’가 투쟁의 핵심이었다.


SK는 또 다른 경로를 걸었다. 최종건 창업주와 최종현 선대회장을 거치며 창업 초기부터 삼성·현대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사 관계를 유지해왔다. 최태원 회장은 2025년 9월 SK하이닉스 노조와 ‘영업이익 10% 상한 없는 성과급 지급’ 룰에 먼저 합의하며 업계의 성과급 기준 자체를 바꿔버렸다. 노사 안정을 택한 선제 대응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삼성전자 노조가 이를 근거로 더 강경한 요구를 고수하는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 그룹의 노사 판도가 근본적으로 바뀐 건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본격화하면서부터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각각 343조4855억원, 251조748억원이다. 두 기업 합산 595조원에 달한다. 역대급 실적이 곧장 역대급 분배 요구를 불러왔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제도화와 상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연간 약 45조원 규모의 성과급 풀이 형성되고 반도체 부문 직원 1인당 평균 약 6억원을 손에 쥐게 된다. ‘영업이익 10% 상한 없는 룰’을 먼저 도입한 SK하이닉스 역시 올해 1인당 평균 7억원 수준의 성과급이 예상된다. 삼성전자 노조가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의식하며 강경 요구를 고수하는 배경이다. 현대차 노조는 전년도 연간 순이익(10조3648억원)의 30%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모두 선대 회장들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규모다.

홀로 선 총수들이 써야 할 '미지의 답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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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기록적 실적은 재계 총수들에게 영광과 동시에 숙제를 던졌다. 이재용·최태원·정의선 3명의 총수는 선대가 겪어보지 못한 세 가지 벽 앞에 서 있다.


첫째는 조직의 거대화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조합원 7만5000명으로 전체 임직원의 62.5%를 차지하는 과반노조다. 선대 시대에 이런 규모의 조직화된 거대 권력은 없었다.


둘째는 요구의 질적 변화다. 과거 노조 투쟁의 핵심은 기본적인 노동권과 임금이었으나 지금은 영업이익의 몇 퍼센트를 나눌 것인가, 상한선을 없앨 것인가라는 ‘이익의 소유권’을 다툰다.


셋째는 복잡해진 사회적 시선이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일부 노동자들의 과도한 요구가 다른 노동자에게 피해를 준다”고 경고할 만큼 여론도 복잡하다. 선대 시대의 노조는 약자의 저항이었지만 지금의 성과급 요구는 다른 평가를 받는다. 인력 확보와 국민적 위화감 사이에서 총수들은 여론의 눈치까지 살펴야 한다.


분배 논쟁은 기업 울타리를 이미 넘어서고 있다. 반도체 실적 호조에 기재부는 올해 추경에서 법인세 수입 전망을 86조5000억원에서 101조3000억원으로 14조8000억원 상향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AI 인프라 기업의 초과 이익을 전 국민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국민배당금’ 구상을 꺼내 든 것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내년 삼성전자가 300조원, SK하이닉스가 200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경우 2027년 두 회사가 부담할 법인세는 합쳐서 약 124조9000억원”이라며 “두 회사의 법인세만으로도 올해 정부의 전체 법인세 목표치 86조5000억원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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