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성 나빠져도 돈 못 빼요"…돌아온 건 '부실' 낙인 [지방은행의 비명①]

정지수 기자 (jsindex@dailian.co.kr)

입력 2026.09.29 07:03  수정 2026.09.2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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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고정이하여신 '역대 최대'

지역 중기 대출 탓…발 못 빼는 구조

"낙인 대신 정책 보완책 시급"

지방은행의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은행의 위기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자금줄을 지키며 버텨왔지만, 돌아온 것은 부실이라는 낙인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각자도생뿐이다. 수도권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지방은행의 벼랑 끝 현실은 단순한 개별 금융사의 위기를 넘어 '지역 경제 붕괴'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방은행이 처한 구조적 딜레마를 짚어보고, 공존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방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자금줄 자처해온 지방은행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역 중소기업을 상대로 유동성 공급 책임을 다해왔음에도 건전성 지표 악화에 따른 부실 우려만 부각되는 실정이다.


치솟는 연체율과 부실채권은 방만 경영의 결과가 아니라, 지역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위험을 떠안은 생산적 금융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BNK부산·BNK경남·광주·전북·제주은행 등 국내 5개 지방은행의 부실채권 잔액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총 1조9145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28.1% 급증한 수치다.


지난 3월 말(1조8601억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지 불과 한 분기 만에 또다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부실채권은 통상 은행이 대출해준 자금 중 3개월 이상 연체돼 정상 회수가 어렵다고 분류한 고정이하여신을 뜻한다.


자산건전성 지표는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5개 지방은행의 평균 부실채권비율은 1.13%로, 4대 시중은행 평균(0.40%)의 2.8배에 달한다.


은행별로는 제주은행이 1.50%로 가장 높았고, 전북은행(1.34%), 광주은행(1.01%) 등이 1%대를 웃돌았다.


경남은행과 부산은행 역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0.18%포인트(p), 0.06%p 상승했다.


총대출 연체율 또한 전북은행이 1.69%에 달했고, 광주은행(1.21%), 경남은행(1.15%), 부산은행(1.02%) 등 주요 은행 모두 1% 선을 넘겼다.


지방은행의 부실을 키운 진원지는 가계가 아닌 기업대출이다.


5개 지방은행의 기업대출 부실채권은 지난해 상반기 1조14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조4988억원으로 31.5% 급증했다.


이 기간 전체 부실채권 증가액(4199억원)의 약 85%가 기업대출 한곳에서 터져 나왔다.


상반기 기업여신 고정이하여신비율을 보면 전북은행이 1.6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제주은행(1.58%), 경남은행(1.35%), 부산은행(1.32%), iM뱅크(1.29%), 광주은행(1.09%) 순으로 일제히 높은 부실률을 기록했다.


통상 경제가 성장 궤도에 오르면 차주의 채무 상환 능력이 개선돼 대출 부실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지방 경기 침체로 대기업·고소득층은 회복세를 보이는 반면, 중소기업·취약계층은 침체의 늪에 빠지는 K자형 양극화가 심화했다.


여기에 위기 때마다 취약 차주 유동성 지원이라는 정책적 요구에 적극 부응해 대출을 늘려온 점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더 큰 문제는 지방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여 발을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구조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23년 7월부터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 규제가 60%에서 50%로 완화됐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 완화가 현실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한때 신규 원화대출의 대다수를 중소기업에 공급해야 했던 규제 속에서 이미 수십 년간 주거래 고객으로 자리 잡은 지역 기업들과의 금융 거래를 일방적으로 축소하기 어려운 탓이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규제가 완화됐다고 해도 자금 운용에 아주 약간의 융통성이 생겼을 뿐"이라며 "수십 년간 관계를 맺어온 주고객의 만기 연장을 거절하거나 신규 대출을 갑자기 틀어막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수도권 시중은행들이 가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몸집과 이익을 불려온 것과 달리, 지방은행의 주담대 비중은 전체 포트폴리오의 30% 안팎에 불과하다.


안전자산 대신 부실 위험이 높은 지역 중소기업 대출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는 셈이다.


금융권 전문가는 "지방 소재 사업체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탓에 지방 경기가 꺾이면 지방은행 건전성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며 "일률적인 부실 낙인을 찍기보다 지역 금융의 공적 역할을 감안한 차등적 건전성 규제와 정책적 보완책이 시급하다"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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