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는 글로벌 AI 경쟁
빅테크社 자본·기술력으로 시장 장악
후발주자 시장 진입 장벽 높아져
국내 기업 해외 플랫폼에 귀속될 수도
해당 이미지는 자체 AI로 제작함. ⓒ
인공지능(AI) 산업 경쟁력 수준은 이제 알고리즘이나 인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서비스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와 클라우드, 데이터 등 핵심 인프라를 누가 확보하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문제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보유한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모델뿐 아니라 클라우드와 플랫폼까지 장악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는 토종 AI 육성에 적지 않은 정책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반면 AI 생태계 기반과 플랫폼 시장에서 경쟁 조건이 공정하게 유지되는지는 더욱 촘촘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거대 AI 모델의 개발과 운영에는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다.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비롯한 AI 반도체는 물론 이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환경도 필수적이다.
특히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한 AI 인프라 시장에서는 자본력을 갖춘 소수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쉽다.
이 과정에서 클라우드와 AI 모델, 응용 서비스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면 후발주자의 시장 진입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기업이 특정 클라우드에 서비스를 구축한 뒤 다른 환경으로 이전하려면 비용과 기술적 부담이 발생하는 이른바 ‘락인(lock in)’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데이터와 서비스가 특정 플랫폼에 쌓이는 네트워크 효과까지 발생하면 시장의 선두 기업과 후발 기업 사이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자체적으로 거대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 연구 인력을 모두 확보하기 어렵다. 때문에 글로벌 플랫폼이 제공하는 클라우드나 API를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는 AI 서비스 개발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핵심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국내 기업 협상력과 수익성이 약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런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공정위는 2024년 ‘생성형 AI와 경쟁’ 정책보고서를 내고 빠르게 변화하는 AI 시장의 경쟁 상황과 경쟁·소비자 이슈를 분석했다. AI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쟁 제한 행위에 대해 선제적으로 살펴보고 시장 참여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특히 AI 시장에서는 기존 산업과 다른 형태의 경쟁 문제가 등장할 수 있다. 플랫폼 사업자가 자신의 AI 서비스를 경쟁 서비스보다 유리하게 노출하는 자사우대, 특정 서비스 이용을 조건으로 다른 서비스를 묶는 행위, 경쟁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는 배타적 계약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이미지는 자체 AI로 제작함. ⓒ
클라우드·플랫폼 선택 폭 넓혀야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실제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했는지를 입증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AI와 클라우드 시장은 기술 변화가 빠르고 상품의 범위도 계속 바뀌고 있어 단순한 시장점유율만으로 경쟁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다.
알고리즘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특정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으면 실제로 어느 정도의 비용 부담이 발생하는지 등 기술적·경제적 요소를 함께 따져야 한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시장법(DMA)을 통해 거대 플랫폼의 시장지배력과 경쟁 제한 가능성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2026년 들어서는 클라우드와 AI를 디지털 시장의 공정성과 경쟁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분야로 지목하고 관련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를 DMA상 게이트키퍼로 지정하는 방안을 예비적으로 판단했다. 클라우드 시장의 전환 비용과 상호운용성, 계약·상업적 관행 등을 조사하고 있다.
AI 분야에서는 자사우대와 데이터 접근, 클라우드 의존성, 운영체제와의 상호운용성 등이 주요 경쟁 이슈로 제시됐다. EU 집행위는 구글의 AI 서비스가 경쟁 서비스와 동등하게 운영체제 기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도 DMA를 통해 다루고 있다.
이는 국내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AI 산업을 육성하면서 단순히 GPU와 데이터센터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
국내 기업이 다양한 클라우드와 플랫폼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필요할 경우 다른 사업자로 옮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산업 경쟁력의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이 해법이 될 수도 없다. AI 시장은 아직 빠르게 형성되는 단계이고 기술 변화 역시 매우 빠르다. 과도한 사전 규제가 혁신과 투자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는 만큼, 실제 경쟁 제한 행위와 단순한 규모의 경제를 구분하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
결국 핵심은 ‘빅테크를 규제할 것인가’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국내 AI 기업들이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기술과 서비스로 경쟁할 수 있는 시장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관건이다. 클라우드 전환 비용을 낮추고 상호운용성을 높이는 한편 데이터 접근과 활용 과정에서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정부가 AI 3대 강국을 목표로 산업 육성에 나선다면 이제는 ‘얼마나 많은 AI 기업을 키울 것인가’와 함께 ‘이 기업들이 어떤 인프라 위에서 경쟁하게 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핵심 인프라와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다면 국내 기업이 AI 서비스를 개발하더라도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이 해외 플랫폼 생태계에 귀속될 수 있다.
김덕진 세종사이버대 컴퓨터·AI 공학과 교수는 “유럽 국가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미국의 빅테크의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자국의 데이터를 보호하면서 미국에 있는 기업에 여러 가지 족쇄나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다양한 규제나 법안들이 가장 활발하게 논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멈춰 선 송전망, AI 먹어치우는 데이터센터 ‘전력 블랙홀’ [전환의 그늘③]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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