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재정 부담만 과도하게 고려한 판결에 제동
공연장 자막·수어통역, 도서관 점자·음성자료 등
단순 예산 부족 주장은 '정당한 사유' 인정 어려워
3일 영화관이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과 자막 등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사진은 서울의 한 영화관 모습.ⓒ연합뉴스
영화관이 장애인에게 제공할 편의 제공 범위를 정하면서 사업자의 재정적 부담만 과도하게 고려한 것은 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공연장·도서관 등 다른 문화·예술시설도 장애인 편의 제공 범위를 정할 때 이번 판단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3일 시청각장애인 4명이 CJ CGV·롯데컬처웍스(롯데시네마)·메가박스중앙을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중 원고 패소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소송이 제기된 지 10년6개월여 만에 나온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화면해설과 자막, 이를 수신할 수 있는 기기와 서버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 판단은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상영 횟수와 상영관의 범위 기준을 중첩 적용해 편의제공 의무 범위를 제한한 부분에 대해서는 "피고들의 재정적 부담만을 과도하게 고려한 것으로서 그 재량의 한계를 벗어났다"며 원고들의 상고 이유를 받아들였다.
이 사건 원고들을 대리한 김재왕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시청각장애인이 보고 싶은 영화를 원하는 시간에 보는 당연한 권리를 인정받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이들의 문화향유권을 하나의 권리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환영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정한 '문화·예술사업자'에는 영화관뿐 아니라 공연장·도서관·미술관 등도 포함된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이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한 사업자의 수익 구조와 비용 감당 능력,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면서도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안적 수단 등은 다른 문화·예술시설의 편의 제공 범위를 판단할 때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기준을 다른 문화시설에 적용하면 쟁점도 구체화된다. 공연장은 자막·수어통역을 몇 회차, 몇 석까지 제공해야 하는지, 도서관은 시각장애인용 점자·음성 자료를 어느 범위까지 갖춰야 하는지가 문제 된다. 사업자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만으로 편의 제공을 제한하기는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앞서 대법원은 2024년 12월 장애인 접근권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으로 인정했고, 2026년 4월에는 온라인 쇼핑몰이 상품 이미지에 대체텍스트를 제공하지 않은 것도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다만 영화관에 적용된 기준이 다른 문화시설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시설 규모와 운영 방식, 이용객 특성, 비용 등이 저마다 다른 만큼 개별 사건마다 장애인의 권리와 사업자의 부담을 구체적으로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 유사한 분쟁이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더라도 법원 판단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
한편 이날 대법원 선고에는 청각장애인 원고들을 위한 수어통역이 배치됐고,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쉬운 문장으로 요지를 풀어낸 '이지리드' 판결문도 마련됐다.
대법원이 영화관에서 시청각 장애인에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해야한다고 판결한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차연)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판결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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