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등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뉴시스
교육부로부터 직무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았던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최근 업무에 복귀했다. 박 이사장이 교육부의 처분에 대해 취소 가처분 신청을 했고 서울행정법원에서 이를 인용한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에 맞서 관련된 연구와 홍보 업무를 하기 위해 설립된 교육부 산하단체다. 평소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던 동 재단이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이 대통령과 박 이사장 사이에 오간 ‘환단고기’ 문답 때문이었다.
두루 알다시피 ‘환단고기’는 우리의 상고사를 다룬 책으로 ‘한민족이 과거 아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주류 학계에서는 이 책에 대해 ‘20세기에 작성된 위서(僞書)’라고 보는 입장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해 12월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박 이사장에게 “환단고기는 왜 연구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이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취지로 답하자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대통령도 환빠(‘환단고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였나”, “‘반지의 제왕’도 역사라는 건가”라는 등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한국고대사학회 등 48개 학술 단체에서도 대통령 발언에 대한 비판 성명을 냈다. 급기야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관련 주장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흘 뒤부터 교육부가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 감사에 나섰다. 무려 약 6개월에 걸쳐 세 차례 조사를 벌인 뒤 지난 달 박 이사장에게 직무정지를 통보했고 관련 직원 23명에 대해서도 징계 처분을 내렸다. 그 사유는 ‘예산 남용’이었다.
예산은 사업을 추진하는데 소요되는 자금이다. 따라서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사업계획서 대로 집행되지 않을 수 있다. 사정이 변경되면 그에 맞게 예산을 전용하기도 한다. 이는 교육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만약 박 이사장이 예산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든지 횡령했다면 징계를 받아 마땅하지만, 보도된 바에 의하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재단 측에 따르면 교육부에서 지적한 사항들은 규정상 상호 전용이 가능한 같은 항 내의 예산을 전용하거나, 사업계획서에 이미 명시된 예산집행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남용했다고, 그것도 임기가 불과 4~5개월 밖에 남지 않은 이사장에게 직무집행 정지라는 중징계 처분을 했다면, 예산 남용은 구실일 것이다. ‘대통령 말씀에 감히 대꾸를 했느냐’는 이른 바 ‘불경죄’를 적용한, 교육부의 과잉충성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교육부에서는 “표적 감사는 아니다”라고 했다지만 지난 10년간 소관 기관장에게 징계를 내린 적이 없었다고 하니 달리 이해되지 않는다. 박 이사장도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내가 보기엔 ‘환단고기’ 발언 이후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해지니 교육부가 과잉 충성 차원에서 하는 일 같다”고 했다고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말했다고 불이익을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가 대통령께 진실을 말할 수 있겠는가. 결국에는 대통령 말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분위기만 만들어질 뿐인데,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박 이사장에 대한 직무집행 정지 처분이 교육부의 자체 판단이었는지, 청와대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런 식의 충성은 충성이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을 욕보이는 일이다.
그렇잖아도 최근 들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속절 없이 추락하고 있다. 부동산, 세제 개편, 공소취소, 보완수사권, 개헌 등 민심에 반하는 여러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이번 교육부의 과잉충성 논란도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실망하고 등을 돌리는 하나의 계기가 됐을 것이다.
정권 관계자들과 추종자들은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지지가 종국에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기 바란다.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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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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