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간 공시 수주 물량만 8000억 이상
브릿지바이오 등과도 대규모 API 계약 타진
유한화학 화성공장 HB동 ⓒ유한화학
유한양행의 자회사 유한화학이 미국 대형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핵심 원료 공급처'로 자리 잡았다. 장기간 쌓은 신뢰가 대형 수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여기에 미국의 생물보안법 등 대중(對中) 규제가 맞물리면서 길리어드를 넘어 다른 글로벌 제약사와의 거래도 확장되는 추세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이 최근 5년간 길리어드로부터 수주한 원료 물량은 공시 기준 5759억원에 달한다. 코스피에서는 연 매출의 5% 이상인 대형 계약을 의무공시하도록 한다. 실제 거래 규모가 공시 물량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길리어드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미국 대형 제약사다. 대표 제품이 메가 블록버스터 '빅타비'다. 지난해 연 매출 약 40조원(289억 달러)의 상당 부분도 HIV 치료제에서 나왔다. 유한양행은 자회사 유한화학을 통해 길리어드에 HIV 치료제 원료인 항바이러스 원료의약품(API)을 공급해왔다.
두 회사의 인연은 최소 2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확인된 공시 기준 누적 수주 물량은 8230억원에 이른다. 오랜 기간 거래가 반복되면서 수주 물량도 점차 늘고 있다. 지난 5월 길리어드와 체결한 API 공급계약은 2102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길리어드와의 오랜 거래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고객군도 넓어지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 5월 미국 브릿지바이오파마와 560억원 규모의 심근병증 치료제 원료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업계는 이번 계약이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 치료제 '아코라미디스' 물량으로 예상한다. ATTR-CM 시장은 한 시장조사기관 전망 기준 오는 2029년 약 50조원(359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고성장 분야다.
늘어난 수주는 실적에 반영되고 있다. 유한화학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9% 늘어난 830억원이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34억원에서 68억원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유한화학이 유한양행의 100% 자회사인 만큼 성과는 곧바로 유한양행 해외사업부 실적으로 이어진다. 원료 공급계약은 통상 1~2년에 걸쳐 물량이 나눠 납품되는 만큼 당분간 안정적인 실적이 기대된다.
앞으로의 수주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12월 발효된 미국의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덕분이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기관이 우시앱텍 등 '우려 기업'으로 지정된 중국계 바이오기업의 장비나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내용이다. 이에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중국 위탁개발생산(CDMO)을 대체할 공급처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한화학이 서둘러 생산능력(CAPA) 확대에 나서는 이유다. 투자 흐름은 장부에도 드러난다. 지난해 말 유한화학의 건설중인자산은 1년 전보다 여덟 배 넘게 늘었다. 실제로 유한화학은 지난해 4월 연면적 9700㎡ 규모의 화성공장 HB동 증설을 마쳤다. 여기에 29만2000리터 규모의 HC동도 새로 짓고 있다. 가동 목표는 오는 2028년 상반기다. 증설이 끝나면 안산과 화성 공장을 합친 생산능력은 약 128만리터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길리어드 외에도 글로벌 파트너사들의 문의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며 "원래 계약 내용은 대외비가 원칙이지만, 최근 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공시 의무가 생기는 만큼 파트너사 양해를 구한 뒤 관련 내용을 최소한으로 공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확보된 계약 물량을 기반으로 중장기 생산 계획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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