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혜택 취소" 기업 외면 부른 전환금융 가이드라인

손지연 기자 (nidana@dailian.co.kr)

입력 2026.07.28 08:38  수정 2026.07.28 08:39

영국은 시정계획·모니터링…한국은 혜택 축소·취소 규정

"일반 기업대출과 차이 없어"…기업·은행 모두 참여 유인 부족

전문가 "전환 지원 아닌 제재 중심…가이드라인 전면 손질해야"

정부가 생산적 금융과 기후금융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만들어 놓고도 쓰이지 않는 제도'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전환금융 활성화를 위해서는 가이드라인 전반에 대한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정부가 탄소 다배출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겠다며 도입한 전환금융 제도가 정작 기업의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환 계획을 이행하지 못하면 우대금리를 회수하거나 일반 금융으로 변경토록 설계되면서 전환을 유도하기보다 기업의 부담만 키우는 구조라는 비판이다.


특히 영국이 전환전략 이행이 미흡한 기업에 원인 분석과 시정계획 제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전환을 지원하는 방식인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혜택 축소와 취소 등 사후 제재에 무게를 두고 있어 제도 설계 방향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8일 금융당국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표한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전환금융 취급 이후 자금 사용과 전환전략 이행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전환금융은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금융으로, 정부는 이를 녹색대전환(GX)을 뒷받침할 핵심 정책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기업의 전환전략 이행이 미흡하거나 이행계획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으며,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존 전환금융을 일반 금융으로 전환하거나 금리·보증료 인하 등 우대 혜택을 축소 또는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환 과정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금융 혜택을 잃을 수 있는 위험까지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반면 영국 전환금융위원회(TFC)가 올해 3월 공개한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


영국은 기업의 전환전략을 신뢰성, 이행 진전, 투명성 등을 중심으로 지속 평가하면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에도 즉각적인 제재보다 원인 설명과 시정계획 수립, 연간 모니터링을 통해 전환을 계속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를 채택했다.


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도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가이드라인의 한계를 지적했다.


김재경 연구원은 "한국의 전환금융은 기업의 전환전략 미이행 시 우대 혜택이 축소되거나 취소되는 구조로 기업의 진정성 있는 전환전략 수립과 전환 의지를 저해할 수 있다"며 "일회성 제재는 형식적인 전환전략 수립이나 금융조건 변경에 따른 전환 동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영국은 혜택 취소 대신 원인 설명과 시정조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기업의 전환 이행을 관리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국내 제도가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현장에서는 제도 자체가 기업과 금융회사 모두에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ESG 업계 관계자는 "현재 가이드라인은 기업이 구체적인 전환 로드맵이나 거버넌스를 갖추지 않아도 일정 요건만 맞추면 전환금융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기준은 느슨한 반면, 사후에는 혜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해놓은 모순적인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는 일반 기업금융과 비교해 얻는 실익이 거의 없는데 사후 리스크는 더 크다"며 "은행도 일반 기업대출과 차별성이 없는 상품을 적극적으로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녹색전환연구소가 최근 시중은행과 정부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개최한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참석자들은 전환금융이 일반 기업금융과 실질적인 차별성이 없어 기업들이 굳이 선택할 유인이 부족하며, 금융회사 역시 수익성이 낮아 적극적으로 공급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과 함께 전환금융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만들어 놓고도 쓰이지 않는 제도'라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가이드라인 전반에 대한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전환금융은 고탄소 산업이 실제로 탈탄소 전환에 투자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며 "지금처럼 사후 제재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전환 이행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민간 자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과 자본규제 완화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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