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7월 18일 인텔 창립 58주년
D램 포기하고 CPU 택한 인텔
메모리 패권, 일본 거쳐 한국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인텔 본사.ⓒ인텔
58년 전 오늘,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반도체 역사를 바꿀 회사 하나가 출발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떠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세운 회사다. 처음 이름은 'NM 일렉트로닉스'였다. 두 창업자 이름의 첫 글자를 딴 것이었는데, 곧 인텔(Intel)로 바꿨다. 집적 전자(Integrated Electronics)의 줄임말이었다. 회사 이름을 정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당시 미국 중서부의 호텔 체인 'Intelco'가 이미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 이름을 쓸 권리까지 사들여야 했다.
인텔은 메모리를 버려 PC 시대의 왕이 됐고 한국 기업들은 그 메모리로 AI 시대의 주도권을 잡았다.
메모리 기업으로 출발한 인텔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 회사로 출발했다. 1970년 출시한 1103은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D램 제품으로 평가된다. 이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으며 인텔의 성장을 이끌었다. 앤디 그로브는 훗날 당시 인텔의 정체성이 곧 메모리 사업과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이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후지쓰와 도시바, NEC, 히타치가 밀려오자 인텔은 D램 시장에서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1986년 인텔은 1억73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앤디 그로브는 훗날 고든 무어에게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온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물었고, 두 사람은 메모리 사업 철수가 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회고했다. 1985년 인텔은 D램 사업을 접고 마이크로프로세서(CPU·중앙처리장치)에 올인했다. 실적 악화 속에 대규모 감원과 공장 폐쇄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도 뒤따랐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시장에서 스스로 철수한 것이다.
CPU 승부수로 PC 시대 왕으로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IBM PC에 인텔 CPU가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인텔은 PC 시대의 지배자로 올라섰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인텔 CPU가 묶이는 이른바 '윈텔(Wintel)' 동맹이 1990년대 PC 시장을 장악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인텔은 전 세계 PC용 프로세서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됐다. 모바일 시대가 오자 인텔은 ARM 기반 칩에 밀렸다. AI 시대가 열리자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앞세운 엔비디아에 시장을 내줬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TSMC와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메모리를 버려 PC 왕좌를 얻었던 인텔은 지금 다시 파운드리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 인근에 위치한 레이슬립 반도체 생산기지 전경.ⓒ인텔
메모리 패권, 일본 거쳐 한국으로
인텔이 D램 시장에서 철수한 자리는 처음엔 일본이 채웠다. 이후 한국이 추격했다. 삼성전자는 1983년 반도체 사업에 본격 진출해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b D램을 개발했고, 같은 해 D램 시장 세계 1위에 올랐다. 이듬해인 1993년에는 전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약 10조원 규모로 인텔의 낸드·SSD 사업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D램에서 철수했던 인텔은 수십년 뒤 남아 있던 낸드 사업까지 한국 기업에 넘겼다.
AI 시대가 열리자 메모리의 가치는 다시 폭발했다.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47조2063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58년 뒤, AI 시대에 다시 만나다
인텔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AI 시대에 다시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을 앞세워 삼성전자·TSMC와 첨단 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텔과 SK하이닉스의 인연도 다시 이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을 앞세워 AI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기업으로 부상했고, 최근에는 인텔의 첨단 패키징 기술인 EMIB를 활용해 HBM과 로직 반도체를 통합하는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8일 전인 지난 10일 SK하이닉스는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나스닥에 상장하며 글로벌 자본시장으로 무대를 넓혔다. 인텔이 D램 시장 철수를 결정한 지 41년 만에, 메모리 반도체를 앞세운 한국 기업이 AI 시대의 주역으로 나스닥에 입성한 셈이다.
58년 전 오늘, 메모리 반도체 회사로 태어난 인텔. 인텔은 메모리를 버려 PC 시대를 지배했고, 한국 기업들은 메모리를 고도화해 AI 시대의 중심에 섰다.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은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메모리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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