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두 팀의 아이돌에 빠져 있습니다. 코르티스와 리센느. 그런데 이 둘을 좋아하게 된 길이 정반대라는 게, 자꾸 곱씹게 됩니다.
ⓒ코르티스 공식유튜브
코르티스는 노래가 먼저였습니다. 그게 코르티스인 줄도 모르고 흥얼거리다, '레드레드'의 댄스 뮤직비디오를 봤지요. 동묘에서 대충 집어 입힌 듯한 착장인데도 아이들은 하나같이 훤칠하고, 춤은 또 얼마나 잘 추는지. 각 잡힌 한국식 칼군무가 아니라, 친구네 주차장에 모여 놀듯 흐트러지는 몸짓. 그 RAW한 에너지가 좋았습니다. 알고 보니 대부분 아직 십 대, 고등학생 또래더군요. 풋풋하고 역동적인, 겁 없는 날것의 얼굴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업계인의 눈이 자꾸 깨어났습니다. 뮤직비디오의 다양성과 때깔, BTS 지민과 나란히 선 파리 패션위크, 화면 곳곳에서 풍기는 돈의 냄새. 문득 궁금해졌어요. 이 날것을 지키려 회사는 얼마나 촘촘한 장치를 심어 두었을까, 이 자유분방함마저 계산된 A&R의 산물은 아닐까. 다섯 멤버 모두 영어가 유창해, 한국인 셋이 섞여 있는데도 자기들끼리 영어로 대화할 정도라는 데엔 놀랐습니다. 요즘 아이돌의 덕목은 언어인가, 이 세대엔 그저 디폴트인가 싶었지요. 망나니 초등학생처럼 까불던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선 영어로 인터뷰를 이어 가는 그 반전마저, 어쩌면 설계된 매력이겠지요.
ⓒ코르티스 공식유튜브
그럼에도 흠은 아닙니다. 모든 브랜드가 그러하듯, 결국은 서사를 지어 가는 일이니까요. 팬들 사이에 회자되는 짧은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멤버 제임스가 '레드레드'를 들으며 홀로 골똘히 고민하다 스텝 하나를 즉석에서 만들고, 나머지 멤버들이 그 자리에서 받아 추며 근사한 군무가 완성되는 장면. 댓글은 하나같이 감탄합니다. "너희 정말 천재구나, 이 안무를 안무가도 아닌 제임스가 짰구나!" 이 릴스마저 회사의 기획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건, 팬이 무엇에 반하는지를 소름 끼치도록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고백하자면 저 역시 그 영상을 수백 번은 돌려 봤으니까요.
ⓒ리센느 공식유투브
리센느는 달랐습니다. 시작은 순전히 원이의 짧은 영상 한 편이었어요. 다들 그러하듯, 저 역시 아이돌인 줄도 몰랐던 예쁜 여자아이가 진한 경남 사투리로 걸걸하고 털털하게 구는 모습에 무너졌습니다. 거제 소녀와 경주 소녀의 사투리 티키타카, 거기에 미나미의 갸루 매력까지.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이야기들. 이름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중소 기획사 걸그룹으로 2년을 버텨 온 시간, 스스로를 증명하려 쌓은 무수한 콘텐츠들. 파고들수록 미담이 넘쳤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고향에서 태어나겠다는 리더의 말 한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것도, 오래 눌러 담은 진심 없이는 나오지 않았을 장면이지요. 요즘의 영상들엔 연출의 미감과 미장센이 조금씩 더 입혀집니다. 날것에서 출발한 팀에도, 이제 공들인 '때깔'이 내려앉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반대의 두 문 입니다. 코르티스가 위에서부터 정교하게 설계되어 처음부터 세계를 겨냥한 날것이라면 — 자체 프로듀싱을 앞세운 이 팀은 데뷔 아홉 달 만에 빌보드 200 3위에 올랐지요 — 리센느는 가장 로컬한 것에서 출발해 천천히 바깥으로 번져 가는 날것입니다. 거제 사투리가 밈이 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중소기획사 해외 진출 지원 대상에 이름을 올렸으니까요. 톱다운과 보텀업, K컬처가 세계로 나아가는 두 개의 경로가 나란히 놓여 있는 셈입니다. 흥미로운 건, 두 길이 결국 같은 목적지에서 만난다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매끈한 무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습니다. 완성된 아이돌보다, 그 뒤에 있는 사람의 체온과 서투름을 보고 싶은 마음이지요. 세계는 지금 '잘 빚어낸 진짜 같음'에 목말라 있고, 두 팀은 각자의 방향에서 그 갈증에 응답하는 중입니다.
ⓒ리센느 공식유투브
두 팀을 바라보는 제 마음의 온도도 서로 다릅니다. 리센느를 볼 때 저는 자꾸 딸을 보는 눈이 됩니다. 대견하고, 애썼고, 고생 많았다고, 예쁜 내 딸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 반면 코르티스는 남의 집 잘 키운 아들 같습니다. 훤칠하고 어리고 잘생기고, 잘 놀고 까불어도 밉지 않고, 천재성에 영어까지 유창한 그 아들 말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함께 키운' 서사라 애틋하고, 하나는 '완성되어 도착한' 서사라 감탄스럽습니다. 어느 쪽의 날것이 더 진짜냐 묻는 건, 어쩌면 번지수가 틀린 질문입니다. 중요한 건 그 서사가 우리를 움직이는가일 테니까요.
그러니 저는 오늘도 두 팀을 나란히 열어 둡니다. 세계가 무언가를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는 지금, 한국은 매끈함만이 아니라 '진짜 같음'까지 —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경을 팬의 얼굴로, 동시에 판의 설계를 아는 눈으로 지켜보는 일이 저는 즐겁습니다. 알면서도 빠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애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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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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