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1993년 32차례 핵협상 3836쪽 공개
北 "동족 약속이 중요한가, 외세 일이 중요한가"
팀스피릿 재개에 北 NPT 탈퇴…1차 북핵위기로
통일부가 30일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서른 두 차례의 남북간 핵문제 협상과정을 기록한 문서(3836쪽)를 공개했다. ⓒ뉴시스
남북이 상호 핵사찰 검증기구인 '핵통제공동위원회' 설치를 놓고 협상하다 끝내 결렬됐던 1990년대 초반 회담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남북 당사자가 직접 북핵 문제를 논의했던 시기의 기록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일부는 30일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진행된 32차례의 남북 핵문제 협상 과정을 담은 문서 3836쪽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핵문제 협의를 위한 1~3차 대표접촉,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운영을 위한 1~7차 대표접촉,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접촉회의 등이 담겼다. 통일부가 2022년 처음으로 남북회담 문서를 일반에 공개한 이후 여덟 번째다.
남북은 1991년 12월 세 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고, 이후 비핵화 검증을 위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관련 회의를 이어갔다. 그러나 '조건 없는 상호 핵사찰'을 제안한 남측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팀스피릿' 중지를 요구한 북측이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협상은 표류했다.
노태우 정부는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직후인 1992년 1월 팀스피릿 훈련 중단을 발표했다. 북한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시설 사찰 수용과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으로 호응하는 듯했으나, 사찰에 진전이 없자 한미는 1993년부터 팀스피릿 재개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북측의 거센 반발도 문서에 고스란히 담겼다. 최우진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는 1992년 10월 22일 핵통제공동위 9차 회의에서 "동족과 한 약속이 중요한가 아니면 외세인 미국과 한 일이 중요한가"라고 반발하며 줄곧 팀스피릿 중단을 요구했다. 결국 핵통제공동위가 결렬된 가운데 한미는 1993년 3월 팀스피릿을 재개했고, 북한은 NPT 탈퇴와 IAEA 안전조치협정 파기를 선언하며 이른바 '1차 북핵위기'가 촉발됐다.
이번 공개 대상에는 2022년 당시 비공개로 분류됐다가 재심의를 거쳐 공개가 결정된 일부 문서도 포함됐다. 특히 소수의 공동취재진(풀 기자단)이 남북 통신선을 통해 보냈던 기사 원문이 새롭게 공개됐다. 1970년대 평양에서 열린 남북적십자 분야 회담 당시 풀 기자단이 취재한 내용들이다.
공개된 남북회담 문서 원문은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와 북한자료센터, 국립평화통일민주교육원을 비롯해 국회도서관, 국회부산도서관, 호남권 통일+센터에서 열람할 수 있다. 공개 목록과 열람 절차 등은 남북회담본부 누리집과 유관기관에 배포한 리플릿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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