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로 포장된 고환율의 그늘 [기자수첩-유통]

남가희 기자 (hnamee@dailian.co.kr)

입력 2026.06.30 07:00  수정 2026.06.30 07:00

원·달러 환율 1500원대 장기화

폐업률도 늘어…중소기업 등 부담 가중

'1500원 시대', '뉴노멀'로 당연시하면 안 돼

환율 안정에 힘을 쏟아야

코스피가 하락 출발한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코스닥,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스타트업을 다니던 한 지인이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 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사실상 휴직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그는 "그 일을 겪고 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늘 오가던 출근길에는 폐업 안내문이 붙은 가게들이 하나둘 늘었고, 익숙했던 빌딩에서는 입주해 있던 회사들이 조용히 짐을 빼고 있었다고 말했다.


문득 생각해 보니 기자 역시 비슷한 장면을 취재 현장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최근 몇 달간 취재한 기사만 돌아봐도 경영난을 버티지 못해 사업에 차질을 겪거나 문을 닫는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해외직구 배송대행업체 투패스츠는 지난 3월부터 출고 지연과 고객센터 응답 지연이 이어지며 소비자 불만이 확산됐다.


회사는 운영상 어려움과 자금난을 이유로 물류 차질을 인정했고, 피해자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에는 약 700명이 참여하는 등 논란이 커졌다. 최근 미출고 물량의 배송을 재개하며 정상화 수순에 들어갔지만, 이번 사태는 고환율이 중소 업체들의 경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신혼여행 전문 여행사인 허니문여행사도 고환율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허니문여행사는 지난 4월 경영난으로 영업을 중단하고 폐업 절차에 돌입했다. 해당 업체의 폐업에는 환율 급등에 따른 여행 수요 감소와 이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 같은 어려움은 일부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총 106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96% 증가했다. 아직 5월임에도 역대 최대 파산 신청이 기록된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육박한다.


이처럼 모두의 시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코스피 호황에 쏠린 사이, 한편에서는 고환율의 그늘이 우리 경제 곳곳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특히 그 부담은 우리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집중되고 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를 웃돌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4월 1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 원·달러 환율 평균은 1500.1원으로 집계됐다. 시중 은행의 공항 환전소 환율은 이미 1600원대를 넘어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제 '1500원 시대'가 새로운 일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하지만 시장이 이를 '뉴노멀'이라고 부르는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고환율은 숫자가 아니라 생계와 직결된 현실이다. 누군가는 사업을 접고,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으며, 그 부담은 결국 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다.


특히 양극화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정부라면 이러한 신호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1500원 시대'를 뉴노멀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고환율이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부터 무너뜨리지 않도록 환율 안정과 취약 업종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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