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만 지방 이전…길바닥에 버리는 혈세 122억 [반쪽짜리, 지역 문화 이식②]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5.30 14:01  수정 2026.05.30 14:01

조직 파편화로 행정 효율 바닥, '출장비 폭탄' 부작용

혁신도시 10년의 역설, 정주 만족도 낮고 인구만 유출

"정책적 실패 사례 외면, 또 다른 상흔 반복할 것"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추진되는 문화예술 및 산업 기관의 지방 이전 정책은 늘 ‘현장성 훼손’과 ‘정치 논리’라는 비판을 마주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통행식 공간 분리가 초래하는 부작용은 비단 미래의 우려나 교육 경쟁력 하락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나주 본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미 10년 전, 같은 명분으로 지방 혁신도시로 청사를 옮긴 문화예술 및 콘텐츠 관련 공공기관들의 현재는 행정 편의주의적 강제 이식이 가져온 기형적 실태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다. 산업 생태계의 생활권과 업무 네트워크를 고려하지 않은 인위적 이전의 결과는 결국 심각한 행정 효율 저하와 천문학적인 혈세 낭비라는 역설로 돌아왔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의 이 같은 구조적 파행은 비단 문화예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권영진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차 혁신도시 이전을 완료한 전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도권에 여전히 잔류 중인 인력은 총 1974명에 달했다.


이 중 지방시대위원회의 공식 승인을 받지 않은 ‘미승인 인력’만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에너지공단 등을 포함해 총 16개 기관, 493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16개 미승인 기관이 보유한 수도권 건물의 가액은 약 557억원이며, 여기에 연간 임차료 77억원과 관리비 45억원을 합쳐 매년 122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서울 사무소 유지비로 고스란히 지출되고 있었다. 지역 분산을 강제한 정책 취지가 무색하게, 본사 외에 별도의 사무소를 서울에 역으로 운영하는 구조가 공공기관 전반에 고착화된 셈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부실 실태 속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기관의 잔류 현황은 한층 더 기형적인 모습을 띤다. 문화예술 비즈니스의 수도권 집중성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18명, 한국콘텐츠진흥원은 55명의 인력이 본사를 떠나 여전히 수도권에 잔류하고 있다.


이는 인력 분산과 행정 효율 저하가 가져온 구조적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서울 강남 논현로에 190억원 상당의 자가 건물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대학로, 홍릉, 상암, 역삼, 판교 등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총 8개의 분원을 문어발식으로 쪼개 별도 운영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강남 자가 사옥 외에 중구(연 50억원)와 역삼로(연 9억원) 등의 외부 사무실을 추가로 빌려 쓰며 지출하는 연간 임차료만 매년 59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진짜 본질은 단순한 임차료 낭비를 넘어선 ‘조직의 파편화’와 ‘만성적인 출장비 폭탄’에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예술 공공기관 관계자는 “업무 연계성을 핑계로 서울 전역에 분원을 허용하다 보니 본사와 분원, 분원과 분원 간에 인력이 극심하게 분산되어 조직 운영의 효율성이 바닥을 친다”라며 “실무진이 나주 본사와 서울의 여러 분원들을 상시 오가며 길바닥에 버리는 교통비와 출장비, 그리고 이로 인한 업무 공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회비용 낭비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형식적인 청사 이전이 실질적인 행정 효율을 전방위로 갉아먹고 있음을 방증한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10년의 결과를 분석한 정책 자료를 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동안 총 이전 비용으로 9조 1549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으나, 혁신도시 이주 직원들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목표치인 75%에 미치지 못하는 71%에 그쳤다. 정주 환경 만족도 역시 목표치인 70점에 미달한 69.4점을 기록했다. 특히 대중교통 및 수도권 접근성을 포함한 교통환경 만족도는 62.3점으로 조사돼 정주 여건 중 가장 저조한 수치를 보였다. 이로 인해 10개 혁신도시 중 정주 여건 만족도 목표를 달성한 곳은 4곳에 불과했으며, 일부 혁신도시는 이전 완료 후 오히려 인근 구도심의 인구를 흡수해 주변 지역의 인구 감소를 유발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추가적인 재정 손실도 확인됐다. 공공기관들의 평균 청사 이전 지연 기간은 28.6개월에 달했으며, 청사 건립 지연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발생한 추가 비용만 6456억원이 소모된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일반 행정·기능형 공공기관조차 10년이 넘도록 지역 안착에 이토록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인적 네트워크와 현장 인프라가 생명인 문화예술 단체나 교육기관의 강제 이전을 또다시 추진하는 것은 더 큰 파행을 예고한다는 점이다.


한 문화예술 관계자는“이미 검증된 정책적 실패 사례를 외면한 채 ‘지역균형’이라는 정치적 명분만으로 밀어붙이는 하향식 문화 이식은 결국 또 다른 정착 실패와 천문학적인 혈세 낭비의 상흔만을 반복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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