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도 각자 즐겨요”…2030이 혼자 취미를 즐기는 방법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서울 성수동의 예약제 책방 어바웃더챕터. 문을 열고 들어서자 LP 음악이 잔잔하게 공간을 채웠다. 책방 한쪽에는 에세이, 소설 등 카테고리별로 큐레이션된 책이 놓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메모지와 편지지, 만년필과 필사 노트, 오일파스텔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방문객은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문장을 필사하고, 방명록에 감상을 남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공간 곳곳에는 앞서 다녀간 이들이 적어둔 메모와 고민, 짧은 문장들이 남아 있었다.
어바웃더챕터는 최대 12명 이하만 입장할 수 있는 예약제 공간이다. 일반 카페처럼 대화 소리나 휴대전화 알림음이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는다. 대신 LP 음악과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책방의 직원은 “손편지, 드로잉, 필사처럼 아날로그적인 활동을 즐기러 오는 분들이 많다”며 “SNS나 시선, 소음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바웃터챕터에서는 (왼쪽부터) LP 감상, 독서, 고민 상담,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아날로그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연남동의 1인 예약제 책방 북눅 연남은 한 팀만 이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 공간이다. 예약 후 전달받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면 푹신한 소파와 담요, 책장과 노트,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여 있다. 원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거나, 노트에 생각을 적고 필사를 할 수 있는 구조다. 방명록에는 앞서 이 공간을 이용한 사람들이 남긴 고민과 응원의 문장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북눅 연남을 운영하는 정다영 대표는 “북카페와 공유서재를 운영하면서 손님들이 프라이빗한 공간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보고 지금의 형태를 만들게 됐다”며 “책과 함께하는 공간인 만큼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고 몰입할 수 있도록 무인 예약제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 오거나 친구, 연인과 함께 오는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며 “단순히 한 세대의 유행이라기보다 현대 사회 특성에서 비롯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도와 지나치게 연결된 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일상과 단절된 시간을 원하고 있다”며 “현실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나 서로에게 더욱 몰입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진 것 같다”고 전했다.
북눅 연남은 프라이빗한 예약제 책방으로 결제한 시간동안 온전히 공간을 즐길 수 있다.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책방을 이용해 본 A(28) 씨는 기존 서점과 다른 분위기에 끌렸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서점은 인문·경제처럼 장르별로 나뉘어 있는데, 여기는 산업재해나 법률, 에세이 등 서로 다른 분야 책들이 하나의 주제로 큐레이션돼 있어 흥미로웠다”며 “평소라면 지나쳤을 책도 오래 구경하게 되고 결국 한 권씩 구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체적으로 책을 ‘구경하는 경험’ 자체가 좋았다”며 “또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이 같은 흐름은 책방에만 머물지 않았다. 최근 2030 사이에서는 디지털카메라와 필름카메라처럼 혼자 기록하는 취미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카메라 수리점 세계카메라수리센터에서는 주인이 손님이 들어온 줄도 모를 만큼 수리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도 문의 전화가 계속 이어졌다. 가게의 직원은 “요즘 수리가 밀려 한 번 맡기면 2주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오래된 카메라를 고쳐서라도 계속 쓰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직장인 여성 B(27) 씨는 이모에게 받은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휴대전화 사진과는 다른 부드러운 빛 느낌이 있다”며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보다는 자기만족으로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친구들과 무조건 같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느낌이 있었다면, 요즘은 같이 공방에 가더라도 각자 따로 즐기는 취미에 더 관심이 간다”며 “오히려 또래들은 혼자 여행 간다고 하면 ‘좋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디지털카메라(왼쪽)와 휴대폰으로 찍은 같은 풍경.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레트로한 감성을 좋아한다는 C(27) 씨는 최근 경주 여행에 아이폰6와 디지털카메라, 필름카메라, 폴라로이드를 함께 챙겨갔다고 했다. 그는 “밤에는 디카로 찍고 햇빛이 강할 때는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식으로 번갈아 기록했다”며 “폴라로이드 사진은 바로 출력해 유성마카로 꾸미는 ‘폴꾸’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진을 찍는 것뿐 아니라 꾸미고 간직하는 과정까지 즐긴다”고 설명했다.
과거 혼밥과 혼술이 혼자서도 가능한 생활 방식을 익히는 과정이었다면, 최근 2030은 혼자 시간을 채우는 취미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었다. 예약제 책방에서 책을 읽고, 방명록에 고민을 남기고,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로 여행지의 빛을 기록하는 취미는 모두 혼자만의 속도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었다.
혼자는 더 이상 어색하거나 견뎌야 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조용한 책방에서 문장을 필사하고, 낡은 카메라로 풍경을 기록하는 시간은 이제 2030에게 하나의 취향이자 휴식의 방식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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