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데 나 좀 쉴게"…'조용한 혼자' JOMO 택한 청춘들 [Now 2.30]

정지수 기자 (jsindex@dailian.co.kr)

입력 2026.05.20 17:35  수정 2026.05.20 17:35

과잉 연결 사회 속 '선택적 고립'…나홀로 취미에 재충전 택해

스마트폰 끄고 아날로그 카메라 켜고…연초 술자리도 피한다

타인과의 무의미한 연결 보다 내면의 충전 우선하는 주도적 삶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 직장인 김희원(30) 씨의 가방 속에는 최신형 플래그십 스마트폰 대신 오래된 카메라들이 가득하다. 제니 카메라로 유명한 고가의 필름카메라 '콘탁스 T2'부터 시원한 색감의 '니콘 쿨픽스 P3', 그리고 불과 일주일 전 지역 생활 커뮤니티 당근마켓에서 디자인에 반해 충동구매한 '캐논 익서스 70'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매주 금요일 퇴근길, 주말 약속을 잡느라 바쁜 동료들과 달리 김 씨는 스마트폰 전원을 완전히 끈다. 대신 주말 동안 그가 손에 쥐는 것은 2000년대 초반 저화질 빈티지 디지털카메라다. 김 씨는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여러 장을 쉽게 남길 수 있지만, 막상 찍어놓고 잘 안 들여다보게 된다"며 "무겁고 귀찮더라도 그날의 무드에 따라 카메라를 챙겨 나가 그만의 감성으로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찍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일상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이른바 'JOMO(Joy of Missing Out·자발적 소외를 즐기는 것)'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트렌드에 뒤처지는 것에 공포를 느끼던 'FOMO(Fear of Missing Out)' 시대가 가고, 과잉 연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플러그를 뽑는 전략적 고립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었다.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아날로그 제품군 거래가 유의미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클립아트코리아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심리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소비 데이터로 뚜렷하게 입증된다.


지역 생활 커뮤니티 당근마켓의 최근 거래 데이터에 따르면 2030세대를 중심으로 아날로그 제품군 거래가 유의미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시기였던 지난 2022년 1분기와 올해 1분기를 대조한 결과, 당근마켓 내 빈티지 디지털카메라의 거래 완료량은 822% 폭증했다.


스마트폰에 밀려 유물이 됐던 MP3 플레이어는 399%, 캠코더는 67% 각각 증가했고 아날로그 음악의 상징인 턴테이블 거래량 역시 98% 늘어났다.


2022년 전체와 2025년 전체 데이터를 비교해 봐도 디지털카메라는 302%, MP3 플레이어는 157% 증가했다.


직장인 김희원(30)씨가 당근마켓에서 구입한 '캐논 익서스 70'으로 찍은 사진. 독자 제공
"스마트폰 대신 디카·MP3"…불편한 낭만에 빠진 청년들


아날로그 품목의 역주행이 빨라진 것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방증이다.


흥미로운 점은 2030의 이러한 느린 소비가 과도한 인간관계와 유흥에 쓰던 에너지를 의도적으로 통제하는 경향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분석한 결과, 39세 이하 청년층 가구의 주류·담배 지출은 매년 연말에 정점을 찍었다가 새해 초가 되면 기록적으로 급감하는 패턴을 보였다.


실제 지난해 1분기 39세 이하 청년층 가구의 주류·담배 지출 감소율은 11.1%로 전체 연령 평균(-4.6%)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이는 앞선 2023년(-8.4%)과 2024년(-7.8%) 1분기 수치에서 드러나듯 연초에는 전년도 연말의 술자리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과 충전에 집중하려는 청년층의 라이프스타일이 통계로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포르투갈 포르투의 전경을 필름카메라 '콘탁스 T2'로 담았다. 독자 제공

밤새워 술을 마시며 양적인 인맥을 넓히는 대신, 그 비용과 에너지를 나 홀로 즐기는 아날로그 취미나 정서적 재충전에 투입하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결과물을 확인하지 못하고 현상소를 찾아 헤매야 하는 아날로그의 불편함은 청년들에게 오히려 해방감으로 다가온다.


김 씨는 "필름을 여러 롤 모아놓았다가 몇 달 뒤 현상하면 잊고 있던 사진 속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미화된 추억으로 남는다"며 "마치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모르는 서프라이즈 선물을 개봉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밤새우는 술자리 대신 나 홀로 충전…지출 패턴도 바뀌었다
과잉 연결이 부른 피로감…'과거로의 회귀'는 적극적 생존 전략


전문가들은 이를 치열한 경쟁 구조와 고물가·취업난이라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찾아낸 심리적 생존 전략이라고 진단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2030은 지나친 경쟁 사회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일상화되면서 타인과의 비교 심리로 인한 사회적 박탈감을 만성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단심히 취업이 안 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과잉 연결된 관계에서 빚어지는 스트레스가 임계치를 넘어선 것"이라며 "결국 사람들로부터 잠시 잊힘으로써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려는 방안이 JOMO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니콘 쿨픽스 P3'로 찍은 사진은 시원한 색감이 매력이다. 독자 제공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십 년 전의 아날로그 기기를 찾는 심리 역시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초고화질 스마트폰 카메라는 찍는 순간 '좋아요' 등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게 만들지만, 저화질 디카는 오롯이 찍는 행위 자체와 그 순간의 공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곽 교수는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사람의 관계조차 이득이나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삭막한 현실에서, 청년들의 피폐해진 심리가 푸근함과 안정감을 주는 대상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과거의 물품이 주는 특유의 풍요로움과 편안함 속으로 물러서는 '과거로의 회귀'는 현실의 피로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매우 적극적인 힐링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캐논 익서스 70'로 동서울종합터미널의 전경을 담았다. 독자제공

2030세대가 조용한 혼자를 택하는 건 인간관계의 포기나 고립이 아니다. 타인과의 무의미한 연결보다 내면의 충전을 우선시하겠다는 주도적인 삶의 태도다.


김 씨는 "개성 시대인 만큼 남의 시선이나 다른 사람들을 무작정 따라 하려다 보면 쉽게 지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며 "그럴 땐 아날로그 시대처럼 조금 느려도, 혹은 다소 비효율적이어도 일상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게 진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무한 경쟁에서 잠시 벗어나 아날로그를 선택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연결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감정 노동의 비용이 얼마나 과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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