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느리지만 꾸준히 채워나가는 ‘영시’의 세계 [공간을 기억하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6.05.29 14:00  수정 2026.05.29 14:00

[책방지기의 이야기㊴] 서울 종로구 영시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영시

◆ 영화감독 최시형의 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


영시는 배우 겸 영화감독 최시형이 운영하는 예술 전문 서점이다. 서울 종로구 필운동의 한 골목 안에, 간판도 없이 자리 잡고 있지만, 영화 또는 사진, 예술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진다.


2018년 우연히 이 공간을 만난 최 감독이 오랜 꿈을 떠올리며 시작됐다. 책이 좋아 서점 운영을 꿈꿨다는 최 감독은 이 공간에서 작업도 하고, 책도 판매하고, 모임도 열며 예술인이 주축인 만남의 장을 열고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최 감독은 영시만의 분위기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느려도 괜찮다’는 최 감독 특유의 여유를 바탕 삼아 ‘꾸준히’ 이어나가는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손님들로 붐비지는 않아도, 조용히 책을 읽으며 영시의 개성을 즐기는 독자들과 함께 수 년 째 서점을 꾸려나가고 있다.


ⓒ영시

최 감독과 함께 영시에서 활동 중인 정영애 프로듀서는 “처음엔 가볍게 이 공간을 구했다. 오래전부터 책을 좋아했고, 그래서 서점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공간이 생겨 시도한 것이다. 물론, 그 직후 코로나19 시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는 많은 사업자들이 망하고, 또 없어지곤 했었다. 그러나 감독님은 무겁지 않게, 느린 운영을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 예술인들에게 입소문…자연스럽게 확대되는 소통의 의미


영화인들이 함께 꾸려나가는 서점인 만큼, ‘특별한’ 영화 관련 책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홍콩 영화감독 왕가위 등 거장들에 대한 책을 비롯해 영화인들이 직접 쓴 책이 서가에 꽂혀있다. 시나리오와 연기, 연출론 등 영화를 공부하는 이들이 볼 법한 전문적인 책도 있다.해외의 도서를 그대로 들여 온 원서는 물론, 구하기 어려운 영화책은 중고로 들여오기도 한다.


정 프로듀서는 “원서는 아무래도 개인이 구하기엔 어렵거나 번거로울 수 있다. 책 ‘왕빙’ 같은 경우엔 서울 서촌의 서점 중에선 우리만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을 겨냥하는 만큼,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책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마니아층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언급했다.


운영자가 영화인이라 운영 가능한 프로그램도 영시만의 장점이 되고 있다. 여느 서점들처럼 작가와 독자들이 함께하는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최 감독이 직접 운영하는 연기 워크숍도 이곳에서 진행된다. 영시에서 시나리오를 함께 공부하고, 이 과정에서 촬영한 영화 상영회를 열기도 한다. 책과 예술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영시만의 재미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영시

자연스럽게 예술에 종사하거나, 예술을 사랑하는 예술인들의 교류 장이 되고 있다. 우연히 영시를 찾은 일본의 사진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담긴 엽서를 영시 독자들에게 무료 제공하는가 하면, 영시는 그의 작품이 담긴 책을 입고해 독자들에게 선보여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정 프로듀서는 이 과정에 대해 “의도하지 않았는데, 영화, 예술 관련 서점으로 알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손님과 가까운 곳에서 직접 소통하는 것이 영시의 매력이다. 최 감독은 표지(포스터)를 보고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해,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 세계관에 푹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책과 영화가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최 감독과 정 프로듀서 모두 영화로, 또 책으로 소통하며 예술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정 프로듀서는 “영화를 하던 내게는 이 서점에서 구경하는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게 새롭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구나, 어떤 책에 관심이 있구나. 요즘엔 이런 게 잘 팔리고, 이런 걸 좋아하시는구나를 관찰하며 직접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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