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구교환이 영화 '군체'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칸국제영화제의 한복판에 섰다. 영화 '반도'를 시작으로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 티빙 오리지널 '괴이'에 이어 이번 '군체'까지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 네 번째로 합류했다.
ⓒ쇼박스
영화 '군체'는 의문의 존재들이 나타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폐쇄된 쇼핑몰을 중심으로 인간들의 통제 불능한 욕망과 생존 사투를 그린 재난 스릴러다. 구교환은 이번 작품에서 집단지성으로 좀비를 진화시키는 생물학 박사 서영철 역을 맡아 빌런으로 활약했다. 앞서 '반도'의 서상훈 대위에 이어 연니버스 내 두 번째 빌런 역할이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팔레 데 페스티벌 테라스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난 구교환은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작품이 첫 공개됐을 당시의 소감을 밝혔다.
"굉장히 긴장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관객분들의 호응이 긴장을 싹 풀리게 해주더라고요. 너무 고마웠어요. 쇼박스 로고부터 영화가 시작된 기분이었다고 하시는데 정말 그랬어요. 관객분들이 이미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봐주시는구나, 응원해주시고 반가워해주시는구나 싶었고, 마치 첫 번째 신이 시작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박수 자체도 긴장이 풀리면서 '오늘은 축제구나, 그냥 즐기자' 하는 마음으로 재밌게 봤습니다. '군체'라는 영화와 더 친해진 기분이었어요."
영화 공개 이후 외신에서는 구교환이 연기한 서영철 캐릭터를 두고 "기괴하면서도 강렬하다", "조커를 연상시킨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서영철을 응원하면 안 되는데.(웃음) 악역은 악역으로 남고 싶고, 그게 또 별개의 문제이긴 한데 좋다고 말씀해주신 건 결국 서영철이 그만큼 공포스러웠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될까요? 역할을 잘 수행한 기분이네요. 제 포지션은 관객들에게 공포와 불안, 서스펜스를 만들자, 심플하게 그렇게 들어갔거든요. 그게 작동됐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전작 '반도'에 이어 이번에도 배우 본연의 매력과 강점을 극대화해 준 연상호 감독과의 독특한 연출 호흡에 대해서는 관찰력이라는 키워드를 꼽았다.
"감독님이 아닌 척하면서 배우를 엄청 관찰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평소 모습이라기보다 이 배우의 질감, 분위기 같은 것들을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현빈 씨도 그렇고 자주 밥도 먹고 그러는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오디션 중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오디션을 안 보는데 계속 보고 계시는구나 싶더라고요.(웃음)"
배우의 매력을 발견하는 안목뿐만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 연출자로서 보여주는 디렉션 방식에 대한 두터운 신뢰도 보였다.
"캐스팅이 진행되거나 내가 그 역할에 선발됐을 때는 굉장히 다정하고 사려 깊은 마음이 느껴져요. 그래서 어떤 역할이 들어왔을 때 부담감보다는 '감독님이 보신 게 있구나, 그러면 난 그냥 하면 되지' 이런 마음이 생겨요. 그리고 다음 테이크에서 감독님이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굉장히 정확하게 디렉션을 주세요. 첫 테이크는 그냥 배우들 연기하는 걸 보세요. 두 번째 테이크부터 디렉션을 하시는데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배우의 해석을 먼저 보시고, 그 다음 자유롭게 방향을 잡아주시거든요. 방의 크기를 정해주는 느낌이랄까. 운동장만큼 넓게 만들어주시고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세요. 두려움이 없어요."
ⓒ쇼박스
연상호 감독과의 거듭된 작업이 주는 익숙함과 매너리즘에 대한 우려에는 선을 그었다.
"익숙하다는 건 되게 아이러니한 게, 만약 익숙했다면 감독님도 우리를 캐스팅하지 않으셨을 거고 우리도 이 작업에 대해 어떤 감정을 못 느꼈을 거예요. 매번 다른 인물, 다른 상황, 다른 글로 만나기 때문에 익숙함보다는 매번 새롭죠. '첫키스만 50번째' 같은 기분이랄까요.(웃음)"
이어 연상호 감독과의 작업에서 느끼는 두터운 신뢰의 본질로 '작품에 대한 완벽한 장악력'이라고 밝혔다.
"감독님과 작업할 때 마음의 평화가 생기는 건, 정확한 콘티나 제시간에 끝내는 현장 이런 것도 있지만 가장 큰 건 감독님이 누구보다 시나리오를 장악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콘티 안에서도 굉장히 유연하게 배우의 호흡이나 촬영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세요. 우리 영화처럼요. 그런 변화들을 줄 수 있는 건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새로 솟아나는 거고, 누구보다 전체를 사랑하시고 모든 인물을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극 중 집단지성으로 진화하는 좀비들을 조종하는 만큼, 캐릭터 특유의 기괴한 시그니처 동작을 만들어낸 비하인드도 전했다. 연상호 감독의 구체적인 아이디어에 자신만의 직관적인 비유를 더해, 관객에게 공포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레벨별 액션 디자인 과정을 설명했다.
"감염자들의 감각 같은 걸 생각해봤어요. 첫 번째로는 두통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머리를 흔드는 느낌을 생각했고, 쉐이킹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관객들에게 인상적으로 남아야 다음에 또 그런 표현이 나왔을 때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공포가 들어가기 때문에 시그니처 동작이 필요했거든요. 그건 감독님이 알려주신 거예요. 처음부터 고개를 젖히고 경련을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약간 예전 PC통신 시절 모뎀 접속하는 느낌 있잖아요. 우리 영화도 통신의 개념이 있으니까 일부러 요란하고 아주 느리게 간 거예요. 근데 그 통신도 점점 진화해요. 나중에는 휘파람으로 가능해지잖아요 버전별로 레벨이 점점 올라가는 거죠."
인물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눈이 가려진 상태로 연기해야 했던 조건에 대해서도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시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대사와 신체 표현에 의존해야 하는 제약보다는, 오히려 캐릭터의 불투명성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활용했다.
"서영철한테는 오히려 눈을 가리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사람은 눈으로 판단되는데, 서영철은 눈을 가리니까 관객들이 더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지?' 하는 상상이 생기니까요."
홍보 활동 중 돋보인 전지현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극 중 대립 관계와 상반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전지현 선배와 유머 배틀하는 느낌이었어요. 캐릭터에 들어갈 때 계속 장난스러운 농담들을 했거든요. 전지현 선배도 계속 세정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농담을 하고 저도 서영철에 대한 농담을 하죠. 다 캐릭터에서 출발한 농담이에요. '세정이는 이렇게 할 거야', '서영철은 이렇게 할 거야', '서영철이 넥타이 내릴 수도 있지 않나?' 이런 식으로요. 그런 것들이 연기하는데 다 힌트가 됐죠."
영화 '만약에 우리', JTBC 드라마 '모두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그리고 '군체'까지 연이어 선보이는 작품마다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으며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는 구교환은, 최근 높아진 관심을 실감하고 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주목해주시는 게 너무 신기해요. 여기 와서도 '나를 알아봐?' 이런 느낌이 들고, 어젯밤에도 사람들이 알아봐주시는데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신기하다'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한 것 같아요. 끝까지 신기할 것 같아요. 이 분위기를 잘 즐기고 있냐고요? 기본 베이스는 즐긴다입니다.(웃음)"
미드나잇 스크리닝을 통해 작품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 극장 안 대형 전광판에는 벅찬 감정이 교차하는 구교환의 얼굴이 포착되기도 했다. 상영이 끝난 뒤 관객석의 반응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감사를 표한 그는 현장의 에너지를 온전히 흡수한 모습이었다. 영화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 그가 이번 성취를 발판 삼아 다음에는 또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을 보지만 우리는 관객을 봐요. 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감상을 주고 있는지 보이거든요. 얼굴 하나하나 계속 보고 싶었어요. 참 고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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