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WTO 체제…80년만에 부활한 ‘힘의 논리’ [新 통상질서 ①]

김성웅 기자 (woong@dailian.co.kr)

입력 2026.05.13 07:00  수정 2026.05.13 07:01

WTO 다자체제 약화

통상질서 패러다임 재편

안보 결합한 전방위 통상 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1년여 만에 미국 관세수입을 전년 대비 192% 늘리고 실효관세율을 8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다자 통상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KCIF)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 관세수입은 2025년 한 해 2871억 달러로 전년 대비 1888억 달러 늘었다. 월평균 관세수입은 2024년 82억 달러에서 2025년 239억 달러로 증가했고, 2026년 1월에는 월간 300억 달러를 넘었다.


같은 기간 미국 실효관세율은 8.3%로 194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결 이전 수준이다.


수치 변화는 단순한 관세율 인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선 캠페인 단계부터 강조해 온 관세정책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 다양한 법적 권한을 동원해 시행 중이다.


‘규범 중심’에서 ‘힘 중심’으로


트럼프 대통령 영향으로 국제 관세 질서는 규범 중심에서 힘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무역기구(WTO)가 주도하던 다자무역체제는 약화했다. 대신 관세가 단순 무역 보호 수단을 넘어 ▲마약관리 ▲국제수지 개선 ▲외국인투자 유치 ▲산업육성 재원 마련의 도구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우선주의 통상 정책을 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건국 직후부터 보호관세와 국내 산업육성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한 바 있다. 건국 후 약 50년이 지난 1823년에는 먼로독트린을 선포하고 고립주의 외교 원칙을 확립했다.


미국은 과거 경제위기 때 마다 이를 타개할 수단으로 통상 카드를 테이블에 올렸다.


1929년 경제대공황 당시 미국은 관세를 높여 자국 무역을 보호하기 위한 ‘스무트 홀리 관세법(1930)’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주요국은 보복관세와 경제 블록화로 대응했다. 영국 파운드블록, 프랑스 금블록, 독일 동유럽 경제권, 일본 대동아 공영권이 형성되면서 1929년부터 1934년 사이 세계 무역량은 66% 급감했다. 이 조치는 1939년 발발한 2차세계대전의 주요 원인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1985년에도 ‘플라자 합의’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킨 바 있다. 이 협약으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일본은 경기 부양책을 위해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책을 냈다. 그 결과 부동산·주식 시장에 상당한 버블이 생겼다. 버블이 꺼지면서 발생한 충격으로 일본 경제는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우선주의 통상 정책은 이같은 역사적 패턴을 따르면서도 차별성을 보인다. 미국의 WTO 체제로부터의 명시적 이탈, 안보·무역·국경정책의 통합, 관세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 수단화 등이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전방위적인 관세 인상보다는 철강·알루미늄 등 특정 분야에 국한된 관세 인상이었고, 무역법 301조 관세도 전 세계가 아닌 중국에 한정된 조치였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 인상이라는 점에서 기존 행정부와는 차원이 다른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IEEPA 위헌 판결에도 멈추지 않는 관세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월 20일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로 IEEPA 근거 상호관세는 법적 근거를 상실했다.


판결은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통상정책을 멈춰세우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24일부터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10% 글로벌 관세를 발동했다. 이어 3월 11일과 12일에는 한국·중국·EU 등 16개 경제권의 제조업 과잉생산능력과 60개 경제권의 강제노동 결부 상품 수입 규제 미이행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를 동시에 개시했다.


힘의 논리로 고율 관세를 밀어 부쳤으나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고율 관세에도 미국의 지난해 상품 무역적자는 1조220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미국 기업이 관세 인상에 앞서 선제적으로 수입을 늘린 영향이다.


다만 국가별 관세율 차별화로 미국 수입시장에서 중국산 비중은 2017년 약 25%에서 2025년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멕시코·베트남산 수입은 늘어 공급망 재편 징후가 관측됐다.


김 부연구위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필요때마다 관세를 올리는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며 “과거 통상 규범과는 다른 양상으로, 기존 체제에서 구조적 전환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입장에서도 관세 인상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그동안은 국가 안보와 통상을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이를 묶어서 인식하는 상황이 시시각각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발 ‘거래 외교’ 맞선 3가지 방식…주요국 통상 셈법은[新 통상질서②]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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