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짐짝’이 아니다”…한예종 광주 이전 법안이 놓친 ‘교육의 본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5.05 11:22  수정 2026.05.05 11:22

선거철마다 선심성 공약...국가적 예술 인재 양성 시스템 볼모

"한예종 이전 효과 의문, 인프라 준비 우선 돼야"

최휘영 "한예종 광주 이전 논의 한 바 없어" 뒤늦은 입장 발표

정치권이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의 숙원인 대학원 설치를 명분 삼아 학교의 광주 이전을 강제하는 법안을 발의하며 문화예술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예술 교육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학교를 단순히 옮길 수 있는 적치물처럼 취급하는 정치 논리가 예술 생태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 예술가들의 미래를 정치적 거래의 볼모로 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골자는 한예종을 올해 7월부터 출범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전면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석·박사 과정인 대학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학교 소재지를 광주광역시로 명시하는 조항을 담은 것이다. 이는 교육적 필요에 의해 논의되어야 할 학제 개편을 특정 지역의 정치적 이익과 결부시킨 전형적인 조건부 입법이라는 평가다. 문화예술인들은 이를 두고 교육 현장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이용하려는 수작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앞서 서울예술단의 광주 이전을 두고도 잡음이 있었지만, 예술계가 이번 법안을 전혀 다른 성격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예술 교육이 가진 생태적 특징 때문이다. 공연 제작 단체인 서울예술단의 이전을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공연 콘텐츠의 공급망을 넓히는 것으로 설득했으나, 교육 기관인 한예종은 예술가 양성을 위한 인적 및 물리적 네트워크가 생명이다. 예술 교육은 강의실 안이 아니라 수도권에 집중된 현장 인프라와 실시간으로 교류하며 완성된다. 학교 건물만 광주로 옮긴다고 해서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예술 생태계가 한순간에 이동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정민갑 문화평론가는 “광주전남의 정치 행정으로는 한예종 아니라 한예종 할아버지가 와도 말아먹을 것”이라며 “차근차근 숙의하고 장기적으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무턱대고 제안부터 하는 방식, 의견이 쏟아지는데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무책임, 건물부터 지으려는 근시안”이라고 문제점들을 꼬집었다. 최여정 공연평론가 역시 “이번 법안의 핵심 동기가 학교 발전을 위한 제안이 아닌 (광주전남)통합시 출범에 맞춘 지역 정치 어젠다가 1차적”이라고 비판했다.


정작 전남·광주 지역에 터를 잡고 있는 예술인들 또한 한예종의 광주 이전에 대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공연 기획자는 “당장 한예종을 이전한다고 그로 인해 지역 예술이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예종의 이전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가장 우선적인 것은 예술대학을 옮겨오기 위해선 주변 인프라가 중요한데 현재로선 시기상조”라고 짚었다.


ⓒ뉴시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번 법안을 두고 “예술을 정치의 놀이터로 만들고 학생들을 볼모로 삼으려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역시 “대학원 설치 문제를 광주 이전과 맞바꾸는 끼워팔기식 일방통보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위해 예술 교육의 백년대계를 훼손하는 무리한 입법을 즉각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최휘영 장관은 논란이 극에 달한 뒤에야 뒤늦게 입장을 밝혔다. 최 장관은 한예종의 광주 이전을 논의한 바 없다면서 “예술 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물리적 이전은 국가 예술 자산의 성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하지만 예술계 내부에서는 부처가 선제적으로 갈등을 조율하기보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뒷북 대응에 그쳤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 주무 부처의 행정력 부재와 방관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현장의 예술가들과 학생들은 이번 이전 추진을 교육의 사형선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술대학 강사는 “현업에서 활동하는 최정상급 강사진이 거리 문제로 이탈할 경우 교육의 질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예종 재학생 역시 “대학원 설립은 정당한 교육권의 문제지 지역 이전의 대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모든 기회가 서울에 집중된 환경에서 광주로의 이전은 예비 예술가들에게 사실상 커리어를 포기하라는 요구와 다름없다”는 호소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선심성 공약에 국가적 예술 인재 양성 시스템이 거론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이 모든 사안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면서 “예술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옮길 수 있는 짐짝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정치권은 무리한 이전 추진을 멈추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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