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는 과학이다’…한우연구센터가 바꾸는 농가의 내일 [新농사직썰-혁신의 씨앗⑤]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5.08.04 07:00  수정 2025.08.04 12:05

데이터로 키우는 한우…현장에서 미래 설계

한 마리 송아지에서 시작하는 유전자 혁신

똑똑한 사료, 달라진 품질…농가가 느끼는 변화

강원도 평창 한우연구센터는 900여 마리의 한우를 직접 기르며 산학 현장을 넘나드는 실용적 연구가 한창이다. 센터에서 키우는 소들이 방목장에서 이동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미래 농업의 희망을 싹 틔우는 현장. 농촌진흥청 연구소의 혁신적인 발자취를 따라간다. 농촌진흥청 연구소 곳곳에 숨겨진 혁신의 씨앗들을 찾아, 대한민국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기획 시리즈 ‘혁신의 씨앗’을 시작한다. 신농사직썰 시즌4인 혁신의 씨앗은 기초 연구부터 실용화 단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농업 발전을 위한 주요 사업들을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데일리안에서는 ‘혁신의 씨앗’ 시리즈를 통해 우리 농업의 밝은 미래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우는 더 이상 명절에만 찾는 귀한 고기가 아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농가에겐 점점 부담스러운 축종이 돼 가고 있다. 사료값은 치솟고 송아지 폐사율도 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비 부진과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서, 한우 산업 전반이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의 지속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이유다.


이 위기의 한복판에서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이 있다. 강원도 평창에 자리한 국립축산과학원 한우연구센터. 국내 유일의 한우 전문 연구기관인 이곳은 연구소답지 않게 축사 16동에서 900여 마리의 한우를 직접 기르며 산학 현장을 넘나드는 실용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의 연구는 단순히 ‘좋은 고기’를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료비는 낮추고 품질은 높이며, 유전 다양성과 환경 대응력까지 갖춘 한우 산업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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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연구센터는 최고의 한우를 육성하기 위한 과학적인 시스템을 갖췄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한우, 연구로 생존의 길을 찾다


한우연구센터의 가장 눈에 띄는 성과 중 하나는 자가 섬유질배합사료(TMR, Total Mixed Ration) 기술이다. 이 기술은 2010년부터 개발됐다. 모두 22종의 농식품 부산물에 대한 소화율과 에너지 가치를 분석한 뒤, 한우 맞춤형 사료 배합비 소프트웨어로 완성됐다. 쉽게 말하면, 버려지던 부산물을 영양 넘치는 ‘맞춤 사료’로 만들어 주는 기술이다.


기술 도입 이후 달라진 수치가 증명한다. 등급 1+ 이상 출현율이 기존 70%에서 80%로 상승했다. 개발된 배합비 프로그램은 누적 6만 건 이상 다운로드되며 농가의 호응을 받고 있다.


실제 제주 지역 시범 농가에선 비육 기간이 6개월 이상 단축되고, 마리당 사료비도 약 17% 절감됐다. 고기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시간과 돈은 줄였다. 누가 봐도 ‘이기는 장사’다.


이 기술의 핵심은 한우의 먹는 양과 시기를 정밀하게 기록해 사료를 가장 효율적으로 제공한다는 데 있다.


국산 사료자원인 알팔파와 트리티케일을 언제, 얼마나 주는 것이 생산성과 품질에 효과적인지도 반드시 확인한다. 탄탄한 데이터 기반 없이 ‘감’으로 운영되던 사양관리를 벗어나, 스마트팜 수준의 정밀 사양 기술로 진화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고온 스트레스 시기(여름철)에는 비타민 C와 E, 아미노산 등을 포함한 맞춤형 사료첨가제로 성장률 저하를 막고 품질을 유지하는 연구도 병행한다. 실제 2025년 상반기 실험 결과, 비육우의 성장과 도체 특성이 강화되는 등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센터에서 한우의 최적화된 유전자를 찾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유전자부터 정비한다’는 말이 허투루가 아닌 이유


고기가 좋아지려면 뿌리부터 달라져야 한다. 한우연구센터가 ‘씨수소’를 직접 선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씨수소는 말 그대로 한우 산업의 유전적 기준이 되는 존재다.


센터는 전국 단일 보증씨수소(KPN, Korean Proven Bulls)의 정액을 쓰지 않는 ‘계통축군’을 따로 조성, 다양한 유전자를 보존하고 새로운 형질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2025년 상반기에는 자체 씨수소 4두를 선발했다. 계통축을 활용한 거세우 비육 실험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기존 한우 산업에서 소실될 수 있는 유전자원의 보존뿐 아니라, 향후 우량 한우 개량의 대체 후보군을 만드는 중요한 작업이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을 통해 계통축 특유 유전자 영역도 발굴하고 있다. 이는 농가 수준의 개량을 넘어선 국책 차원의 유전체 기반 개량 프로젝트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맞춤형 유전자 설계’의 결과는 점점 눈에 띄는 수치로 나오고 있다. 예컨대 사료효율, 근내지방 섬세도, 부분육 수율 등 신규 경제형질에 대한 평가 데이터를 연말까지 2000마리 수준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지금은 한우의 고기 부위를 나눠 ‘이 부위는 얼마나 부드럽고 지방이 어떻게 분포되는가’까지 유전자 수준에서 분석하는 시대다.


센터는 이 분석 자료를 전국 8개 도 축산연구기관과 함께 수집해 잉여사료섭취량(RFI) 지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향후 ‘덜 먹고도 잘 자라는 한우’를 선별하는 기초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사료비는 낮고 품질은 좋은 한우의 선발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한우연구센터 관계자가 한우 데이터 추출 작업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번식, 온도, 질병…산업 전반의 균형을 잡는다


고품질, 고효율을 넘어 산업 지속성을 지키기 위한 기술개발도 센터의 중심 과제다. 특히 번식우의 영양 상태가 송아지 생산성과 크게 연관된다는 점에서, 센터는 임신우 대상 사양관리를 정밀화했다.


사료 증량 급여 시 거세우 자우의 성장률과 도체 특성이 개선됐다. 육질형 거세우의 경우 1++ 등급 출현율이 75%에 달했다는 결과도 있다.


특히 젊은 암소(처음 새끼를 낳는 초산우) 번식률이 낮은 문제가 현장에선 골칫거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센터는 초음파, 체중 측정, 혈액대사물질 분석 등을 활용해 번식 적정 시기를 찾아내고 있다. 이와 병행해 정액 품질관리 기준 개선, 지방자치단체와 농협 간의 협업 체계도 정비 중이다.


또 산지에서 우려가 커지는 여름철 ‘고온 스트레스’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센터는 정자의 저장능력 저하와 세포 조직의 손상을 유발하는 반응인 활성산소(ROS)와 관련된 유전자를 탐색했다.


조건별 정자 결합력 실험 결과까지 도출했다. 이렇게 축적된 자료는 향후 폭염 상황에서의 번식 효율 저감을 위한 미래 대응 기술 개발의 토대가 된다.


이밖에도 눈여겨 볼 성과는 많다. 대표적으로 친환경 가치와 연계된 ‘메탄 배출량 평가’ 연구다. 우량 한우가 일반 한우보다 절대 메탄 배출량은 많지만 사료 섭취량과 체중 대비 기준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고효율 개체의 경우 기후부담을 줄일 수 있는 ‘탄소 저감형 한우’에 가깝다는 의미다. 향후 정밀 평가와 유전자 분석이 병행되면, 환경 친화적 한우 개체 선별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씨수소 정자의 상태를 연구하는 모습.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한 마리 송아지가 바꾸는 내일, 기술의 이유를 묻다”


윤호백 한우연구센터장은 과학자 이전에 치열한 현장주의자다. 그에게 연구란 실험실 속 숫자가 아닌, 축사 안 송아지 한 마리를 살리는 일이자 농가의 경제를 되살리는 실천이다.


“사료비는 오르고, 송아지는 죽고, 한우값은 떨어지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그래서 센터도 이제 더 이상 교실처럼 있어선 안 된다.”


윤 센터장은 현재 한우 산업을 ‘삼중고’라고 진단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가 강조한 건 한 가지였다. ‘모든 연구는 반드시 현장에 닿아야 한다’는 원칙. 센터가 직접 900여 마리의 한우를 키우며 사료 실험과 유전자 분석, 번식 성과 시험을 병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기술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해도, 축사에서 적용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실제 사료를 먹이고, 질병에 노출되고, 덥고 추운 계절을 겪어야 데이터도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센터는 자가 TMR 사료 기술과 개체별 사양 최적화에 집중하고 있다. 단순히 ‘먹을 것을 싸게’ 공급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소가 어느 시기에 어떤 성분을 얼마나 섭취해야 효율이 가장 좋은지를 계산한다. 이 과정은 과거 ‘감’에 의존하던 사양관리에서 ‘데이터 축산’으로 가는 이정표다.


윤 센터장은 “먹는 것만 바꿨을 뿐인데 비육 기간은 줄고 출하 품질은 올랐다. 농가 분들 반응이 확 와닿다. ‘이게 진짜 필요한 기술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윤호백 한우연구센터장이 미래 한우에 대한 허심탄회한 소신을 말하고 있다. ⓒ

센터의 연구는 고기를 길러내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고기의 질을 좌우하는 씨수소단계를 정비하는 유전 연구 또한 핵심축이다. 특히 KPN 유전자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계통축군을 구성해 새로운 유전형질의 가능성을 실험 중이다.


그는 “만약 어떤 질병에 기존 씨수소가 취약하다면 (한우)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그래서 센터는 백신처럼 유전자원의 다양성을 확보해 두는 데 주력한다. 일종의 유전자 보험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름철 사료 섭취량이 줄고 정액 보존 능력도 떨어지는데, 여기에 아미노산과 비타민을 넣으면 조금이나마 개선되는 걸 확인했다”며 “놀라운 건, 그런 작은 개선이 송아지 건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게 결국 농가의 수입으로 돌아온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친환경 축산 관점에서 메탄 배출량 분석까지도 포함한 한우 탄소지수 개발 연구가 한창이다. 환경을 ‘피해야 할 규제’가 아닌 ‘농가의 경쟁력’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시도다.


윤 센터장은 “우량 한우가 많이 먹고, 많이 자라니까 당연히 메탄도 많이 배출할 것 같은데, 실제 연구해보니 덜 우량한 소와 탄소 효율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좋게 나오기도 했다”며 “기후 변화가 한우 산업에 준비 없이 닥치기 전에 지금부터 유전자를 중심으로 대응 기술을 미리 설계해 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 마리 송아지가 태어나는 순간, 농부는 30개월 뒤를 생각해야 한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기후의 변화가 있을지,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지 모두 알면서도 축산을 이어가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 시간을 줄이는 연구를 한다. 불확실성을 계산 가능하게 바꾸는 일이 센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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