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양파 품종부터 기계화까지
“밭작물 자급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현장 밀착 연구”
미래 농업의 희망을 싹 틔우는 현장. 농촌진흥청 연구소의 혁신적인 발자취를 따라간다. 농촌진흥청 연구소 곳곳에 숨겨진 혁신의 씨앗들을 찾아, 대한민국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기획 시리즈 '혁신의 씨앗'을 시작한다. 신농사직썰 시즌4인 혁신의 씨앗은 기초 연구부터 실용화 단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농업 발전을 위한 주요 사업들을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데일리안에서는 ‘혁신의 씨앗’ 시리즈를 통해 우리 농업의 밝은 미래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이 작물 없인 한식은 없습니다.”
마늘과 양파. 매 끼니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이 밭작물들은 현재 농업 위기와 맞닿아 있다. 자급률 하락, 기후변화, 노동력 부족은 단순한 작물 문제가 아닌, 식량 안보의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파속채소연구센터는 두 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대응에 나섰다. 고품질 국산 품종 육성과 전 과정 기계화. 이 두 축이 밭작물의 미래를 지탱하는 핵심이라고 보고, 적극적인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문지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파속채소연구센터장은 “마늘과 양파는 늘 먹는 작물이지만, 농가에선 해마다 더 힘들어지는 작물”이라며 “노동력 부족, 수입 품종 의존, 기후 위기까지 복합적 어려움이 겹쳐 있다”고 진단했다.
◆품종 개량의 성과, 기계화 실증으로 위기 돌파
전남 무안에 위치한 파속채소연구센터(이하 센터)는 2022년 2월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산하 ‘과 단위(4급)’ 조직으로 공식 출범했다. 전신은 1904년 설립된 목포시험장이다. 1994년부터 본격적인 마늘·양파 연구가 시작됐다.
이후 파까지 포함한 파속채소 특화 조직으로 발전했다. 센터에는 9명의 연구직과 4명의 행정·공업직, 포장관리 인력 등 모두 39이 근무하고 있다. 모두 파속채소 품종육성·기계화·유전자원 보존·재배기술 매뉴얼화 등 현장 밀착형 연구를 수행 중이다.
센터는 지난 2006년부터 2024년까지 마늘 15품종, 양파 35품종을 개발했다. 파속채소는 국내 채소 재배면적 상위 품목에 속한다.
2022년 기준 전국 마늘 재배면적은 약 2만2000ha, 양파는 1만8000ha에 달한다. 생산량은 각각 27만3000t(마늘), 119만6000t(양파)이다. 생산액 기준으로도 마늘은 1조2855억원, 양파는 9756억원 규모다. 이는 딸기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대표적인 마늘 품종 ‘홍산’은 한지·난지 겸용으로 다양한 기후대에서 활용 가능하다. ‘화산’은 항암성분을 강화한 기능성 품종이다. 또 ‘산대’는 마늘종 수확량이 우수하다.
양파는 용도별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품종 개발이 이뤄졌다. ‘맵시황’은 가공용으로 적합하고, ‘엄지나라’는 식미가 우수해 생식 소비에 적합하다. ‘스위트그린’은 당도가 높고, ‘문파이브’는 저장성이 뛰어나 유통 과정에서 장점을 발휘한다.
센터는 이들 품종에 대해 기계화 적응성까지 고려한 이중 연구를 수행 중이다. 품종 생산성과 병해 저항성은 기본이고, 기계 파종과 수확에 적합한 초형, 경도, 흙엉김 정도 등을 함께 분석한다.
품종 개발에도 불구하고 파속채소는 고질적인 불안요인이 있다. 바로 기계화 취약작물인 것이다. 정식, 파종, 수확 등 대부분의 과정이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생산비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파속채소연구센터는 양파 기계정식용 육묘 생산 기술을 실증하고 있다. 특히 일사량 기반 자동 관수 시스템은 묘의 엽초경과 건중량 등 생육 균형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입증했다.
마늘 분야에서는 멀칭, 파종, 약제살포를 동시에 수행하는 복합형 파종기가 주목받고 있다. 이 장비는 조파식 파종을 통해 작업시간을 단축하고, 거꾸로 파종률도 감소시킨다.
실증 결과, 작업자 부담을 대폭 줄이며 재배 효율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이 외에도 드론 방제 기술, 노지 자동 관수 시스템 등 디지털 농업 기술도 적극 도입 중이다.
◆속도 내는 기후 위기 대응형 품종 개발
센터는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상에 대응하기 위한 품종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마늘의 경우 2차 생장 억제, 양파는 추대와 분구 억제가 주요 과제다.
이를 위해 내건성, 저온신장성, 고온 저항성을 갖춘 계통을 선발 중이다. 양파는 유전체 마커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세대 단축 육종 기술도 도입되고 있다. 또 양파 유전체 육종용 집단을 구축해 디지털 기반의 품종 선발 시스템을 정립 중이다.
그러나 좋은 작물은 품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센터가 현장 재배 성패를 좌우하는 지역별 맞춤 재배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홍산 마늘’은 초록색 발현 문제가 과제로 떠올랐다. 센터는 이를 파종 깊이와 수확 후 건조일수에 따른 반응으로 분석해 지역별로 적정 파종 조건과 건조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재배 안정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높이는 역할을 한다. 센터는 이를 표준 매뉴얼화해 전국 보급할 계획이다.
한편 파속채소연구센터는 품종 육성 기반이 되는 유전자원 수집·평가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마늘 826자원, 부추 96자원을 보유 중이다. 이 중 상당수는 네팔, 우즈베키스탄 등 국외 자원에서 도입된 것이다.
이는 향후 기후 적응형 품종 개발의 원천소재로 활용될 예정이다. 국내 농업의 유전적 다양성과 지속가능성 확보에 핵심적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다.
◆‘씨앗부터 기계까지’…밭작물의 미래 설계자
“밭작물은 기계화가 어렵다는 고정관념, 바꾸고 싶었다.”
문지혜 파속채소연구센터장은 현재 우리나라 밭작물 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짚으며, 이를 돌파하기 위한 두 가지 축을 강조했다. 하나는 기계화 적응 품종 육성, 또 하나는 재배 전 과정의 자동화 실증이다.
“마늘은 꽃이 잘 피지 않아 교배 자체가 어렵다. 꽃이 피는 자원을 중앙아시아에서 수집했고, ‘총포’에 들어 있는 주아를 제거하면서 꽃을 피우는 작업을 반복했다. 한 개체당 단 하나의 꽃을 만들기 위해 시간적으로 수십 분의 작업이 들어간다. 그렇게 교배에 성공해 만든 품종이 바로 ‘홍산’이다.”
홍산은 센터의 자부심이 남다르다. 남부뿐 아니라 중북부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품종이라는 점에서 마늘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 성과로 홍산은 2020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마늘은 멀칭 필름을 씌운 채 파종하면 싹이 틈을 뚫지 못하고 눌리는 현상이 많다. 무멀칭 재배가 늘고 있지만, 수분 부족과 제초 부담, 수량성 저하 문제가 따라온다. 이에 대해 센터는 최적 재식 밀도, 관수 간격, 제초제 활용 등 다양한 조합을 실험하고 있다.
종구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마늘은 종구를 계속 쓰면 바이러스 누적으로 수량이 떨어진다. 센터는 생장점 조직배양을 통해 무병 우량종구 생산 기술을 정립했다. ‘남도’ 품종은 이미 보급을 마쳤다. 현재는 ‘대서’와 ‘홍산’에 대한 기술을 확대하는 중이다.
문 센터장은 “번식 속도가 느려 종구 수요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그래서 주아를 활용한 증식 기술도 병행하고 있다. 종구 수급 문제를 해결해야 자급률 향상도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파의 경우는 ‘중간모본’이라는 개념이 핵심이다. 꽃이 2년에 한 번 피는 특성상, 좋은 중간모본을 미리 확보해 두면 육종 속도를 단축할 수 있다. 센터는 현재 18개의 중간모본을 보유하고 있다. 민간육종회사에 통상실시를 통해 기술 확산을 유도하고 있다.
양파는 기계정식용 묘 생산을 위해 셀 크기가 작은 트레이를 쓴다. 이로 인해 수분·양분 관리가 까다롭다. 센터는 일사량 기반 자동 관수법과 시들음병 방제 기술을 공동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노지와 시설을 병행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문 센터장은 “품종을 만든 뒤에도 할 일이 많다”며 “실제 농사에 적합한지, 기계와 호환이 되는지, 기후에 맞는지 모두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밭작물 기계화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마늘, 양파 등 파속채소가 미래 농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계화를 통한 진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 센터장은 “밭작물은 기계화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품종부터 기계까지, 파속채소연구센터는 밭작물의 전 과정을 다룬다”며 “농업의 미래는 자동화와 맞춤형 품종에 달려 있다. 우리는 그 길을 선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마늘과 양파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라 전략작물”이라며 “센터는 씨앗부터 기계화, 현장 재배까지 전 주기를 아우르는 연구기관으로서 대한민국 밭작물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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