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빅데이터·딥페이크...지능형 범죄로 진화
디지털 위장 범죄 경각심, 교육 넘어 문화적 공감대 형성
딥페이크 관련 이미지. ⓒ데일리안 AI 이미지 삽화
2025년 대한민국. 이제는 전화 한 통, 영상 하나로도 개인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시대다.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단순한 ‘전화 사기’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딥페이크 기술이 결합되면서 범죄는 한층 정교하고 지능적인 ‘맞춤형 사기’로 진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딥페이크 기술은 얼굴과 목소리를 정밀하게 위조하며 피해자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든다. 사진 한 장, 몇 초짜리 음성만으로도 누구나 사기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심지어 가족조차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기술은 현실을 완벽하게 모방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6,421억 원에 달하며, 연말까지 1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보이스피싱과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도 이러한 위기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상대를 특정하기 어려운 이 전쟁은 그만큼 대응도 까다롭다. 과거에는 고령층이 주요 표적이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든 연령층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범죄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사회의 대응은 여전히 뒤처져 있다.
왜 같은 피해가 반복되는 걸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허점은 기술 발전과 시민 인식 사이의 간극이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시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문해력)는 제자리걸음이다. 우리는 영상 속 인물이 ‘진짜’라고 믿고, 익숙한 목소리에 쉽게 안심한다. 그러나 이제는 ‘진짜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위험한 시대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짜 같은 가짜’를 가려낼 수 있는 역량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정보가 실제보다 더 정교하게 꾸며지는 시대에, 그것을 ‘가짜’로 인식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뛰어넘는 사례도 허다하다. 더구나 이제는 단순히 가짜뉴스를 구별하는 수준을 넘어서, 딥페이크의 원리,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성, 범죄 악용 가능성까지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 기술에 대한 이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이처럼 기술 악용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단순한 처벌이나 기술적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사회 전체가 비판적 사고력과 도덕적 감수성을 함께 갖춰야 한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정책과 제도를 통해‘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강화해야 한다. 특히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유년기부터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격이 영유아기에 형성되듯, 디지털 시대의 안전 감각도 어릴 때부터 길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청자미디어재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미디어재단은 국민의 미디어 이해력 향상을 목표로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딥페이크 기반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을 펼치며, 다양한 협력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왔다. 전국 시청자미디어센터를 통해 청소년, 직장인, 고령층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실전형 교육을 운영하며, 단순한 이론 전달을 넘어 실제 상황에서의 대응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딥페이크 감별법, 보이스피싱 시뮬레이션 등 실전 중심 프로그램은 정부의 보이스피싱 대응 전략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보이스피싱은 전국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지만, 대응은 지역 맞춤형이어야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디어재단은 지자체, 경찰청, 교육청, 금융기관 등과 협력해 지역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고령층을 위한 ‘찾아가는 예방 교육’, 금융기관과 연계한 ‘AI 사기 대응 훈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실질적인 예방 효과는 이처럼 유기적인 협력체계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 공감과 감정을 자극할 때 비로소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재단은 웹드라마, SNS 퀴즈 영상, 청년 크리에이터와의 협업 등 대중 친화적인 콘텐츠를 통해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디지털 위장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함께 공유하며, 교육을 넘어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AI와 딥페이크는 결국 도구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도구가 시민의 무지와 방심을 틈타 악용된다는 데 있다. 결국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기술적 방어만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다. ‘스스로 속지 않는 힘’,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반드시 갖춰야 할 생존 전략이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정부의 전면전과 더불어, 국민들의 디지털 면역력과 근육을 키우는 작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글/ 김시관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김시관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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