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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혼자 만들어가는 ‘1인극’에 빠지는 이유


입력 2023.05.29 11:01 수정 2023.05.29 11:01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무대 위에 단 한 명의 배우만 오르는 1인극은 베테랑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러닝타임을 채우고, 연기력 하나로 관객을 설득하고 교감해야 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즉 배우의 역량에 따라 전적으로 작품의 성공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1인극 제작이 활발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연극 '온 더 비트' ⓒ프로젝트그룹 일다 연극 '온 더 비트' ⓒ프로젝트그룹 일다

그런데 최근 공연계에선 두 1인극이 나란히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작년 초연 이후 지난 17일부터 대학로 TOM2관에서 앵콜 공연으로 돌아온 연극 ‘온 더 비트’와 지난달 29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행복한 왕자’다. 두 작품은 작은 규모의 공연장에 올려졌지만 매회 관객석이 꽉 찰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파크 기준 평점도 9.8점과 9.6점으로 매우 높다.


‘온 더 비트’는 프랑스 배우 쎄드릭 샤퓌가 직접 쓰고 연기한 작품이다. 2003년 프랑스에서 초연한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1000회 이상 공연하며 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2016년 몰리에르 1인극상 후보로 올랐고, 2021년 오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최고 1인극상을 수상했다. 한국 초연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고, 윤나무는 이 작품으로 지난 1월 열린 제7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자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품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드리앙과 드럼에 관한 이야기다. 드럼을 통해 세상과 처음 마주하는 아드리앙이 자신의 세계를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의 시점과 언어를 통해 묘사한다. 한 명의 배우와 드럼세트만 존재하는 무대 위, 드럼은 배우에게 말을 걸고 교감하는 존재가 된다. 초연 당시 아드리앙 역에 더블 캐스팅된 윤나무와 강기둥은 이 작품을 위해 실제로 드럼을 배웠고, 아드리앙이 되어 무대 위에서 110분간 쉼 없이 드럼을 연주하며 관객과 소통한다.


ⓒHJ컬쳐 ⓒHJ컬쳐

‘행복한 왕자’는 세기의 이야기꾼 오스카 와일드가 1888년 발표한 동명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선의와 희생을 가르쳐준 왕자와 이를 배운 제비가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전하는 이야기다. 작품에는 단 한 명의 배우가 출연하며 해설자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제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한다. 제작사 HJ컬쳐 한승원 대표는 “작품에는 다양한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신의 목소리로 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 1인극으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행복한 왕자’는 양지원, 이휘종, 홍승안이 번갈아 연기하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이번 작품으로 1인극에 첫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휘종은 “물리적으로 대사가 많아서 힘들었고, 공연장에서 1시간 20분 동안 집중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힘들었다”고 고충을 드러냈다. 홍승안은 “연기를 할 때 다른 배우와 에너지를 주고받는 힘으로 공연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는데 (1인극이라) 너무 외로웠다. 그런데 1인극 역시 혼자가 아니라 관객과 함께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두 작품 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1인극의 활발한 제작이 이어졌다. 그 시점을 특정하자면 업계는 코로나 이후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이전에도 1인극은 드물지만 꾸준히 제작되어 왔는데 코로나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한참 활발하던 2021년 상반기 서울에서만 무려 5~6편 가량이 쏟아져 나왔다. 비슷한 시기 2인극도 대학로에서 이어졌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가장 큰 이유는 프로덕션이 최소 규모로 운영되다 보니 방역 지침을 지키기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고, 규모가 작아지면서 실험적인 형태의 공연이 시도된다. 평소 관객 쏠림이 심한 공연계에서 소규모 공연은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코로나를 계기로 평소 올리지 못했던 작은 프로덕션의 실험적 형태의 공연이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가운 건 이 시기, 마니아 관객층의 수요를 확인하고 1인극 제작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에마뉘엘 노블레가 1인극으로 각색한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대표적이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초연에서 큰 인기를 누렸고 2년 만인 2021년 6월 재연, 지난해 삼연을 올리는 동안 꾸준히 관객을 끌어들였다.


덕분에 최근 ‘행복한 왕자’ ‘온 더 비트’ 외에도 ‘돈’ ‘판소리 쑛스토리 모파상 편’ ‘내게 빛나는 모든 것’ 등이 공연됐고, 1인극 축제도 열렸다.


한 공연 관계자는 “1인극은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관객과 배우가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교감하면서 완성되기 때문”이라며 “다만 1인극은 배우의 힘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배우의 역량이 된다면 관람의 질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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