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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속 한류①] 대장금’→ ‘오징어 게임’…러시아의 '한류 공식' 이제부터 시작


입력 2022.10.06 14:04 수정 2022.10.06 10:08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1990년대부터 한국 제품으로 먼저 친근감 쌓아

성장 가능성 무궁무진

"한국의 사회 경제 정치 등도 배워야, 콘텐츠로 끝나는 소비는 아쉬워"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가 2003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한류가 아예 없었다. 한류는커녕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나라도 몰랐다. 한국어 수업 때 우리 한국인 원어민 교수님은 처음 한국 노래 들려줬는데 그게 엄정화의 ‘몰라’였다. 그게 저의 첫 한국 노래였다. 나중에 한국에 오고 나서 보아의 팬이 됐다. 영화는 수업 때 본 '친구'가 첫 한국 영화였다” (러시아 출신 방송인이자 수원대학교 외국어학부 러시아어·러시아문화 객원교수 벨랴코프 일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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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다.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극동 러시아의 중심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비행기로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거리는 가깝지만 다른 이념과 문화로 인해 심리적으로 이질적인, 혹은 낯선 나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러시아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다소 생소하게 여기며 북한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과거일 뿐이다. 현재 한국 문화는 러시아에서 하나의 문화 소비 영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 바탕에는 ‘한류’가 존재한다.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콘텐츠 붐이 러시아에서도 예외는 아닌 셈이다.


러시아 내에서 '한류'라는 명칭이 붙기 전, 전 세계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박찬욱,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중심으로 소수의 ‘한국 영화’ 마니아가 형성됐다. 인간의 심리를 그리는 순수 예술 장르와 그로테스크한 장르를 동시에 애호하는 러시아 관객들에게 김기덕 감독의 '섬', '봄, 여름, 가을 겨울',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박쥐' 등이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 2007년 MBC 드라마 '대장금'이 러시아 하바롭스크 주영 지상파 채널인 극동 국가 텔레비전라디오방송사(DVTRK)를 통해 방송되면서 한국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이 서서히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이 인기는 한국 음식으로 이어지게 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한국의 거장들이 만든 영화와 다양한 색깔의 드라마들은 서서히 러시아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들이 닦아놓은 초석 위에 케이팝(K-POP)이 2010년 이후 날갯짓을 시작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전후해 동방신기와 샤이니, 슈퍼주니어의 노래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소비됐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은 케이팝 페스티벌에서 단골 메뉴로 울려 퍼졌으며 당시 유행하더니 플래시 몹이 한류를 전파하는데 기여했다.


한류를 사랑하는 10~20대 팬들은 SNS 상에서 공지를 통해 불특정 장소에서 즉흥적인 콘서트 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는 청장년층에까지 전해져 비록 한류를 즐기지는 않더라도 한국의 드라마와 노래 등을 알리는 몫을 했다.


이후 전 세계에 K-콘텐츠를 정점으로 이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방탄소년단 열풍이 러시아에서도 불었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 2021년 말 러시아에서 '오징어 게임' 의상과 가면이 전 지역에 걸쳐 유행했으며 드라마와 함께 한국의 놀이문화도 알려졌다. 이후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러시아 유행 트렌드 한편을 장식할 정도로 성장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소개하는 사이트만 해도 수십여 곳 이상이고 OTT 시장에서는 별도의 한국 영화, 드라마를 분류해 방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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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OTT 플랫폼 myshows.me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상속자들' , '도깨비', '꽃보다 남자', '힘쎈여자 도봉순', '더블유',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태양의 후예', '미남이시네요', '역도요정 김복주', '당신이 잠든 사이에', '피노키오', '구미호뎐', '킬미힐미' 등이 5점 만점에 4점 이상을 평가를 받았다.


특히 '태양의 후예'는 러시아 비디오 스트리밍 업계에서 대부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ivi에서 10점 만점에 9점, 키노포이스크에서 8.4점, 그리고 MyShow.me에서는 5점 만점에 4.6점을 받았다.


이 열풍은 과거의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다시 한번 조명 받는 사례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국내 인기작이라면 어김없이 러시아 비디오 스트리밍 플랫폼 시장에 소개되는 새로운 '한류 공식'이 성립되어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앙대학교 국제대학원 전혜진 교수는 "러시아 내에서 한류는 2020년 무렵 더욱 다각화돼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콘텐츠를 비롯해 패션과 화장품 한식까지 확산됐다"면서 "러시아는 한류라는 문화보다는 한국적인 인 것부터 수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팔도라면, 초코파이, 요구르트, 이런 한국 제품들이 인기가 있었다. 러시아에서 한류가 하루아침에 형성된 건 아니다. 한국 제품이나 호감도가 서서히 쌓여서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러시아의 한류는 이렇게 비즈니스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한류 문화현상이 더해져 그 인기도에 가속도가 붙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K-콘텐츠는 러시아 시장에서 큰 성과를 올린 셈이다. 전 교수는 K 콘텐츠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전 교수는 "중국의 경우 자본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다. 한한령 때문에 제한돼 있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자국 주의가 강한 나라에서 우리나라 연예인이 진출해 많은 사랑을 받지 않았나. 러시아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인들 스스로 자국을 유럽과 동시에 아시아에 속한 나라라고 말한다. 서구적이면서 아시아적인 요소도 쉽게 받아들이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콘텐츠가 러시아에서 더 많은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러시아인과 한국인들에게는 정과 한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인들의 정서가 러시아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아직 러시아 내 한류의 위상에 대해 조금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들도 있다. 영향력이 확실히 넓어지고 있지만, 미국 문화와 같은 ‘주류’의 위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연기획자 소피 치바노바는 "케이팝의 경우는 여전히 러시아의 틈새 장르이지만, 이 틈새시장은 하위문화라고 하기에 너무 커졌다. 약간의 도움이 있으면 주류로 오를 것이라 확신한다. 새로운 젊은 팬들과 함께 우리는 러시아와 CIS 전역에 퍼져 있는 적어도 200~300만 명의 케이팝 숫자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벨랴코프 일리야 교수는 “중요한 건 아직 미국 문화처럼 많이 보편화돼 있지 않다. 아직까지 소수 문화라고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저는 한류를 딱히 중요시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래, 영화, 드라마보다 한국의 사회, 경제, 정치 등을 배워야 한다고 항상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한류 팬들은 대부분 음악만 듣고 끝이라는 식이라 아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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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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