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입대 꿈꾸는 박지훈 "더 힘든 곳에서 배우고 싶어"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왕을 사는 남자’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짊어졌던 왕 이홍위(단종)로 분해 누적 관객수 1689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배우 박지훈. 역대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2위라는 대기록의 중심에서 눈물 어린 눈망울로 섬세한 감정선의 정점을 찍었던 그는 전국에 '단종 오빠' 열풍을 일으키며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배우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뒤로하고, 그 뜨거운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박지훈은 곧바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지난 5월 첫 방송을 시작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의 주인공 강성재 역을 통해서다.
ⓒYY엔터테인먼트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총 대신 식칼을, 탄띠 대신 앞치마를 두른 이등병 강성재(박지훈 분)가 '전설의 취사병'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밀리터리 쿡방 판타지 드라마다. 전작의 진중함을 완벽히 지워내고 어리바리하지만 순수한 신참 이병으로 파격 변신한 그의 도전은 또 한 번 대중의 마음을 뚫으며 연타 흥행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첫 회 시청률 5.8%로 순조롭게 출발한 드라마는 입소문을 타고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더니, 최근 방송된 7화에서 전국 가구 기준 평균 7.2%, 최고 8.9%(수도권 평균 8.1%, 최고 9.6%)를 기록하며 케이블 및 종편 채널 동시간대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코믹한 장면들은 온라인 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스크린 흥행에 이어 안방극장 시청률 1위까지, 연이은 대기록을 쓴 소회와 배우로서 체감하는 변화를 묻자 박지훈은 특유의 덤덤한 어조로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일단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신다는 거에 되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제 안에 스스로 어떤 변화는 사실 없습니다. 그냥 늘 저에게 주어진 임무들을 하는 것뿐이라서요. 너무 좋아해 주시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더 들뜬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그냥 늘 똑같은 스탠스 그대로인 것 같아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본이나 책이 진짜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직장 생활을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 역할부터 시작해서 악역까지 되게 다양하게요. 그런데 아직은 제가 일일이 다 보지는 못했어요."
원작 팬층이 두터운 작품일수록 배우의 해석 역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된다. 박지훈은 강성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설정보다 드라마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상에 집중했다.
"웹툰을 보긴 했는데, 웹툰에서는 강성재가 여자를 많이 만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이건 내가 봤던 드라마 대본이랑은 많이 다른데?' 싶어서 사실 웹툰을 끝까지 다 보지는 않았고요. 성재가 처음 자대 배치받고 들어왔을 때의 초반 위주로만 참고했습니다. 사실 전작인 '연애혁명'도 그렇고 '약한영웅' 때도 그렇고, 저는 늘 원작 웹툰보다는 드라마 대본을 위주로 많이 공부하는 편이에요. 웹툰에서 표현할 수 있는 영역과 드라마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게 다르기 때문에, 대본에 집중하면서 자대 배치받았을 때의 어리버리하고 순수했던 성재의 모습을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홍위와 강성재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한 인물은 권력의 중심에서 고독과 비극을 견뎌야 했고, 다른 인물은 서툴고 엉뚱한 매력으로 웃음을 만들었다. 배우 입장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거창하게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대중이 '박지훈은 이런저런 다양한 역할도 다 소화하네'라고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바람은 늘 가지고 있어요."
거창한 흥행 수치나 대중의 호평 앞에서는 덤덤하게 자신을 낮추는 박지훈이지만, 배우로서 스크린과 무대 위에 오르기 전 자신을 가꾸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만큼은 철저했다. 날렵해진 비주얼과 체중 감량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대단한 비결을 늘어놓는 대신 요즘 새롭게 빠진 소박한 취미 이야기를 꺼내며 소탈하게 웃어 보였다.
"관리를 하고 있어요. 최근에 또 콘서트를 했거든요. 조금 더 예쁘게 나오기 위해서 체중 조절을 했어요. 지금은 사과랑은 완전 거리가 멉니다. 사과 먹은 지도 진짜 오래된 것 같아요. 요즘은 그냥 좀 건강하게 잘 먹으면서, 대신 사이클 타는 거에 취미가 생겨서 그렇게 관리하고 있어요. 한 30분 정도 땀복 입고 오르막길을 사이클로 왔다 갔다 하는데, 먹고 차라리 운동을 하자는 주의로 건강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티빙
박지훈은 사실 처음부터 요리에 대단한 소질이 있거나 관심이 깊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낯선 필모그래피에 과감히 뛰어든 배경에는 배우로서 스스로를 향한 호기심, 그리고 대본 속 인물이 가진 독특한 무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대상을 다루는 판타지적 설정과 오직 주인공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발한 연기 디테일이 그의 도전 욕구를 자극했던 셈이다.
"대본을 보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저라는 사람은 원래 요리랑 되게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요리의 '요'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요리하는 모습은 어떨까?', '이 작품을 하면서 요리에 관심이나 취미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비록 실상을 겪으며 요리와 거리가 더 멀어지긴 했지만요.(웃음) 하나 얻은 건 칼질이 정말 많이 늘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대본을 보면서 판타지적인 요소들이나, 허공을 보면서 손짓하고 시선 처리를 하는 주인공 강성재만의 고유한 스킬들이 캐릭터로서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화면에 담긴 손기술과 요리 장면들은 순전히 연습의 결과물이었다. 요리 학원을 다니며 직접 조리를 완벽하게 마스터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칼을 다루는 모습만큼은 어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촬영 전에 '왕사남' 끝나자마자 바로 요리 학원을 다니면서 한 3~4개월 정도 준비를 했었어요. 거기서 칼질을 배웠고, 제육볶음 같은 음식을 제가 손수 다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구나' 하는 메커니즘 정도는 파악을 했습니다. 특히 칼질 연습을 진짜 많이 시켜주셔서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CG와 상상력이 중요한 장면이 많았지만 박지훈은 오히려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미리 연기를 규정하기보다 촬영 공간과 상황에 맞춰 즉석에서 캐릭터를 구축했고, 눈빛과 표정의 변화를 세심하게 쌓아 올리며 강성재만의 순수한 매력을 완성했다.
"사실 대본을 볼 때는 크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갔어요. 왜냐하면 '현장에서 직접 보고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되게 강했거든요. 미리 무언가를 혼자 만들어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어디 서 있고, 어디를 바라보며 시선 처리를 해야 할지 현장에서 감독님이 원하시는 장소나 시선에 맞춰 시뮬레이션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 성재가 누군가(가디언)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장면이 심심하지 않게 눈동자를 굴린다거나 귀여운 표정을 짓는 등 디테일한 노력을 많이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후시 녹음하면서 후반 작업 된 걸 조금 봤는데, 현장에서 시뮬레이션하고 표현한 만큼 잘 담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초반 강성재는 영웅도 에이스도 아니다. 실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 오히려 자대 배치를 처음 받은 이등병의 어수룩한 모습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마냥 가볍게 웃기기만 하는 인물로 치우치지 않도록 전체적인 수위를 조율하는 과정도 거쳤다.
"감독님께서 강성재를 캐스팅하실 때 정말 군대 미필인 사람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자대에 딱 들어왔을 때의 그 순수한 이병의 모습, '지금 내가 나서야 되나,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되나' 고민하는 어리버리한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게 자연스럽게 잘 묻어난 것 같고, 또 너무 가벼워지거나 코믹으로만 치우쳐지지 않게 성재의 중심점을 감독님이 잘 잡아주셨습니다."
일명 '끝까지 가는 B급 코미디 연출'로 과장된 몸짓이나 파격적인 슬랩스틱 장면도 현장의 호흡을 믿고 과감하게 몸을 던졌다. 자칫 어색하게 보일 수 있는 코믹한 설정들이었음에도, 함께 호흡을 맞춘 베테랑 배우들과의 시너지 덕분에 망설임 없이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정말 감독님이 원하시는 대로 다 연출이 된 것 같고요, 저도 그거에 대한 불만이나 의문은 전혀 없어요. 그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 신들이 되게 잘 살았고, 워낙 베테랑 선배님들과 호흡을 하다 보니까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살이 잘 붙더라고요. 저는 어려움 없이, 서슴없이 미역 옷 입고 와이어 타고 내려오는 장면들도 너무 재미있게 잘 찍었습니다."
극 중 강성재가 윤도현 병장과 함께 닭장에 갇혀 공포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는 장면은 현장에서 완성된 코미디 신 중 하나였다. 대본이라는 뼈대 위에 현장 리허설을 거치며 살이 붙은 이 시퀀스는, 성재라는 인물이 가진 뜻밖의 허당스러운 매력이 극대화되며 촬영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때 형들이 너무 재미있어해 주시니까 '여기서 조금 더 해볼까?' 하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왜냐하면 성재가 그렇게 대놓고 무서워하는 신이 이전에는 사실 없었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너무 소리를 질러서 막 오바이트를 하려고 하는 신까지 만들어냈었지마는, 그 부분은 아쉽게도 편집이 되더라고요(웃음). 그렇게 현장에서 애드리브로 만들어간 장면들이 되게 많았습니다."
현장에서 즉흥적인 시도가 많았지만, 무작정 웃기려고 선을 넘지는 않으려 했다. 자칫 연기가 과해지면 상황 자체가 어색해질 수 있는 만큼, 대본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살을 붙이는 데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코미디 연기가 딱히 어려운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연기할 때 그렇게 오버 페이스를 하지는 않거든요. 충분히 상황적으로 납득이 될 만한 선에서 애드리브를 던졌고, 그래서 시청자분들도 웃겼다고 생각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현장 분위기가 좋았던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고요."
작품의 코미디가 자연스럽게 살아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윤경호, 이상이 등 선배 배우들과의 호흡이 있었다. 리허설 과정에서 새로운 장면이 만들어지고, 대본에 없던 아이디어가 더해지는 일이 반복됐다는 것. 박지훈은 웃음을 주는 것 이상으로 선배 배우들의 연기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웃음을 매번 참기 힘들었어요(웃음). 대본보다 현장에서 살이 추가된 장면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선배님들이 다 코미디 연기를 너무나 훌륭하게 잘하셔서 곁에서 보면서 배우는 점도 정말 많았습니다. '선배님들도 저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하시는데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고, 정말 유쾌하게 촬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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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장면 곳곳에 대중문화 패러디해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겼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연상시키는 장면부터 영화 '관상'까지, 화제가 된 순간들의 탄생 배경을 묻자 박지훈은 공을 현장의 선배 배우들에게 돌렸다.
"윤경호 선배님께서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내주신 덕분이었어요. 원래 대본에는 맛을 봐달라고 가져가는 게 한두 번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세네 번 연속으로 계속 가져다드리게 되었죠. '어떻게 하면 관철 상병의 할머니 손맛을 낼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들이 다 현장에서 만들어진 신이에요. 그런데 선배님이 '안대를 쓰고 맛을 보면 어떨까'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렇게 탄생했어요. '관상' 패러디는 원래 대본에 있었어요. 대신 제가 내레이션을 할 때 슬로우 모션에 맞춰서 눈, 코, 입, 찢어진 눈, 미간 등을 짚어줄 때 약간 사극 톤으로 중후하게 하면 더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사극 톤으로 녹음해서 완성된 신입니다."
극 중 강성재는 김관철 상병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맛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후 햄버거를 맛본 김관철이 할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 화면에는 할머니 분장을 한 강성재의 모습이 등장해 절절한 감정신과 예상치 못한 코미디가 공존하며 큰 웃음을 안겼다. 하지만 박지훈에게는 웃음보다 걱정이 먼저 앞섰던 신이었다.
"방송으로 보면 재미있는 신이지만, 사실 촬영하기 전에는 개인적으로 고민과 걱정이 정말 많았던 신이었어요. 왜냐하면 상대 배우 입장에서는 할머니와의 서사가 담긴 진지하고 절절한 감정 신이잖아요. 촬영 직전에 감독님이 조심스럽게 '지훈아, 네가 여기서 할머니 연기를 좀 해줄 수 있겠냐'라고 하셨어요. 할 수는 있는데, 울고 있는 상대 배우가 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감정을 잡아서 눈물을 흘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촬영장에서는 장난기를 싹 빼고 정말 엄숙하고 진지하게 임했습니다. 상대 배우에게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게 진심으로 에너지를 주려고 노력했어요. 다행히 촬영이 끝나고 강하경 씨가 '지훈아, '덕분에 몰입이 잘 돼서 눈물이 확 났다'라고 고맙다고 해 주셔서 정말 다행이었고 감사했습니다. 겉보기엔 웃기지만 파고들면 참 슬픈 복합적인 명장면이었습니다."
작품의 또 다른 화제 중 하나는 중대장 역을 맡은 이상이의 존재감이었다. 특별 출연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비중이 커지며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이 정도면 특별출연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박지훈 역시 촬영 내내 같은 생각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저도 참 의아했던 부분이었어요(웃). 분명 특별 출연이시라고 들었는데 대본을 받을 때마다 계속 나오시더라고요. 그런데 스토리상 중대장님이 빠질 수가 없는 구조이긴 해요. 상이 선배님이 농담조로 '어쩌다 보니 사기당해서 마지막 화까지 찍고 제작 발표회까지 앉아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너무 웃겼습니다. 선배님 입장에서는 마지막 촬영 날까지 계속 함께하셔야 해서 되게 힘드셨을 수도 있는데, 끝까지 현장을 지켜주시고 홍보도 같이 열심히 해주셔서 후배로서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박지훈의 코미디 연기가 통했다'라는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는 오히려 얼떨떨해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런 좋은 평이 있었나요?(웃음) 제가 미처 보지 못했는데 정말 감사하네요. 저는 연기할 때 억지로 웃기려고 오버하기보다는, 캐릭터가 가진 이병으로서의 순수한 중심점을 잡고 가려고 노력했어요.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 '어라, 쟤 좀 귀엽네?' 하면서 무해하게 피식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많이 고민했는데, 다행히 그 지점을 좋게 봐주시고 예뻐해 주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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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인기를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아왔다. 평소 자신의 작품을 잘 보지 않던 친구부터 가족들까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반응을 보내기 시작한 것. 박지훈 역시 그제야 작품의 화제성을 체감했다고 털어놨다.
"정말 오래된 직장인 친구가 한 명 있어요. 원래 그 친구는 제 친구라는 이유로 제 작품을 쑥스러워서 잘 안 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회사 동료들이 하도 이 작품 얘기를 하니까 '회사에서 대화에 끼려면 무조건 봐야 한다'라면서 보러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부모님과 가족들은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저희 집 카톡 단체방 말투가 지금 전부 사극 톤으로 변했어요(웃음). 최근에 제 콘서트가 끝났을 때도 '아이고, 단종 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얼른 쉬시지요', '요즘 어떠십니까?' 하는 식으로 친형까지 다 사극 말투를 쓰고 계십니다. 집안에 그런 유쾌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작품의 흥행에 따라 평소 인연이 깊은 연예계 동료 및 선배들의 축하도 이어졌다. 세세한 피드백 대신 묵묵히 기사나 소식으로 행보를 지켜보며 건네는 투박하고도 따뜻한 응원은 바쁜 촬영 스케줄 속에서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장항준 감독님께서 '야, 지훈아! 고생한 만큼 작품이 잘 되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 축하한다'라고 축하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자세하게 작품 모니터링 평을 해주신 건 아니고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하신 것 같더라고요. 직접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물론 이러한 메가 히트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박지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 편의 작품이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낮으로 피땀 흘린 감독과 작가, 수많은 현장 스태프들, 그리고 함께 호흡을 맞춘 동료 배우들의 치열한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 작품의 영광에 빠져있기 보다는 현장의 모든 이들에게 공을 돌릴 줄 아는 성숙함은 인터뷰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화려한 성과 뒤에도 박지훈은 유독 담담했다. 성공을 특별하게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으려는 태도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일단 가족들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 같아요. 늘 같은 태도를 유지하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건 부모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이 조금 잘 됐다고 으스대거나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보는 걸 너무 싫어해요. 정말 혐오스러울 정도입니다. 어떤 작품이 잘 된 건 본인이 잘해서인 부분도 있겠지만, 사실 그 작품을 위해 수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다 같이 피땀 흘려 합류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잘나서 천만 배우가 된 것처럼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제 모습을 상상하는 것조차 싫고 끔찍합니다. 어릴 때 에피소드가 하나 기억나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형이랑 저, 어머니에게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시냐니까 로또 3등인가 당첨되셨다고 덤덤하게 선물 하나씩 사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보통 로또 되면 엄청 방방 뜨고 좋아할 법도 한데, 저희 부모님은 그때도 되게 평온하셨어요. 그런 가족들의 덤덤한 성향을 제가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와 '취사병 전설이 되다'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배우 박지훈을 향한 기대치는 한층 높아졌다. 차기작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박지훈은 흥행의 무게에 짓눌리기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었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정말 전혀 없습니다. 저는 애초에 부담감을 스스로 안고 가고 싶어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전작은 전작이고, 작품이 끝나면 스스로 리프레시를 한 뒤 다음 작품은 완전히 별개의 새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접근합니다. 다만 대중분들이 저에게 기대하시는 니즈를 충족시켜 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그건 배우로서 스크린 안에 있을 때든, 아이돌 가수로서 무대 위에 서 있을 때든 변함없이 늘 깨부숴야 하는 저만의 평생 퀘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로서 정점을 찍은 직후인 만큼, 자연스럽게 다가올 군 입대와 공백기에 대한 화두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평소 공식 석상이나 팬들과의 소통 자리에서도 군 생활에 대한 남다른 포부를 종종 내비쳤던 그였기에, 마침 군대를 배경으로 한 이번 작품과의 연결고리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렸다. 미래의 행보를 그리는 그의 눈빛에는 막연한 두려움 대신,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싶다는 단단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내년에는 정말 군대에 가야 해요. 구체적으로 몇 월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병대에도 나이 제한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년에는 꼭 가야만 합니다. 해병대 수색대를 지원해도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혹여나 떨어진다고 한들, 해병대 자체는 무조건 갈 생각입니다. 이상하게 자꾸 끌리더라고요. 주변에 해병대 출신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다들 육군 나오셨고 딱히 별 말씀은 안 하셨는데, 그냥 물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조금 더 힘든 곳에서 무언가를 더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하게 계속 끌려요."
해병대와 거친 훈련을 향한 확고한 동경을 드러낸 만큼, 극 중 보직이었던 취사병에 대한 솔직한 속내도 함께 흘러나와 현장에 유쾌한 웃음을 안겼다. 입대를 앞두고 군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미리 경험해 본 셈이지만, 칼질과 요리가 주가 되는 취사병의 일상은 그가 꿈꾸던 군 생활의 로망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확실한 건 취사병 보직과는 많이 거리가 더욱더 멀어진 것 같아요(웃음). '취사병 전설이 되다'를 찍으며 밀덕(밀리터리 덕후)로서 충족이 조금 됐느냐고 많이들 물어보는데 사실 워낙 요리만 주로 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취사병에 대한 소중함은 너무나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전투의 사기는 밥심이다'라는 말처럼, 정말 그 밥심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촬영 현장이었어요. 사실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로망은 취사병보다는 강화 훈련 같은 걸 받는 보직이었거든요. 저는 훈련받는 걸 더 좋아해서, 취사병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습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온 박지훈은 최근 '리플렉트'(RE:FLECT) 활동을 통해 다시 무대 위에 섰다. 여기에 7년 만의 팬 콘서트까지 개최하며 오랜만에 팬들과 가까이 호흡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나가는 타이밍에 대해 아쉽다거나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동안 배우 활동을 연달아 하느라 가수로서 팬분들과 마주할 기회가 적었고, 공백기가 꽤 길었잖아요. 저 역시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제 본업의 모습이 너무나 그리웠고, 팬분들 또한 무대 위의 제 얼굴을 많이 보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군대에 가기 전, 올해만큼은 국내외 팬분들과 가까이서 직접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선물하고 싶어요. 무리를 해서라도 말이죠."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도 자신을 지탱하는 일상의 루틴은 의외로 소박하고 건강했다.
"제가 수면은 절대 포기 못해요. 저는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드는 스타일이라 잠을 정말 소중하게 여겨요. 그리고 최근에 시작한 자전거 타기요. 자전거를 직접 하나 사서 조립을 했거든요. 아무리 바빠도 스케줄 끝나고 땀복을 챙겨 입고 바깥에 나가서 오르막길 위주로 한 30분 동안 자전거 사이클을 타요. 건강하게 땀을 흘리고 나면 리프레시가 되어서 수면과 사이클, 이 두 가지는 바빠도 포기할 수 없는 제 루틴입니다."
지금까지 정극과 코미디를 오가며 스펙트럼을 넓혀왔지만, 여전히 연기해 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갈증은 크다. 대중에게 익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안주하지 않고, 거친 누아르나 악역처럼 완전히 다른 결의 인물들을 채워 넣으며 필모그래피를 더 다채롭게 확장해 나가겠다는 욕심이다.
"지금까지 제가 보여드린 연기를 맛으로 표현하자면 단맛과 쓴맛 정도만 보여드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맛에는 번외로 더 깊은 쓴맛도 있을 거고, 매운맛도 있잖아요. 제가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악역이나 정말 나쁜 놈, 혹은 범죄자나 거친 누아르 장르 같은 것들도 꼭 해보고 싶어요. 아직 제가 느껴보지 못한 맛들이 많기 때문에, 추후에는 그런 새로운 맛들을 연기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타고난 감각에 기대기보다 텍스트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상대 배우의 호흡까지 미리 계산해 조율하는 성실함이 지금의 박지훈을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배우로서도, 아티스트로서도 매 순간 자신만의 '평생 퀘스트'를 깨부수며 나아가는 그의 다음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제 몰입 비결은 무식할 정도로 '대본을 많이 본다'인 것 같아요. 저는 대본을 읽을 때 엄청 느리게 읽는 편이에요. 대사 하나하나를 머릿속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장면을 그려나가면서 읽다 보니, 대본을 한 번 정독하고 나면 온몸의 진이 다 빠질 정도예요. 머릿속을 온전히 대본의 상황으로 100% 채워 넣는 게 저만의 방법입니다.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요. 상대 배우가 정해지면 그 배우님의 전작들을 찾아보면서 '이 선배님은 이 대사를 이런 톤으로 치시겠구나, 그럼 난 어떻게 반응할까' 약간 뭐 이런 막 머리 굴리면서 하는 게 저만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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