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홍금표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본심'
'오빠 게이트' 열어 주군의 역린 건드린 한동훈 '아웃'
봉합된 줄 알았던 명·청 갈등 여전…정청래는 '귀양'
오세훈 공직 상실형 확신…그럼에도 자신 없는 재선거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수첩에 적힌 메모를 살펴보고 있다. 김 대표가 적은 수첩 메모에는 서울시장 후보에 정청래 전 대표를 비롯한 4인의 이름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과 무소속 한동훈 의원의 이름 옆에 'OUT'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정치(政治). 사전적 의미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좀 더 활용폭이 넓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자기 잇속만 따져 가며 머리를 굴리면 “쟤는 참 정치적이야”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직장 내에서 본인의 자리보전이나 승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사권자나 영향력이 있는 이에게 들러붙어 아부하는 걸 ‘사내정치’로 부릅니다. 본심을 숨기고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한 표현을 ‘정치적 수사’라고 합니다.
대체적으로 앞뒤가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데, 직업명에 ‘정치’가 붙은 정치인들은 그런 특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집단입니다. 대중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점잖아 보이지만, 뒤로는 치열하고 치졸한 수싸움을 벌입니다. 아마도 본심을 숨기는 능력치로 서열을 매기면 도박꾼이나 사기꾼 외에는 정치인 위에 놓일 직업군이 없을 겁니다.
그런 정치인들이 본의 아니게 본심을 들킬 때가 있습니다. 바로 ‘뒤통수를 조심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국회에는 수많은 사진기자가 있습니다. 국회 곳곳에서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촬영해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그중에서도 본회의장은 앞으로 낮게 경사진 구조상, 사진기자들이 포진한 2층 방청석에서 의석에 앉은 국회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잘 포착됩니다.
그래서, 뒤통수를 조심하지 않은 국회의원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누군가와 숨겨놨던 본심을 꺼내 주고받다가 특종의 먹잇감이 됩니다. 여러 국회 출입 사진기자들이 그렇게 특종을 냈고, 본심을 들킨 국회의원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렇게 털리고도 국회의원들이 ‘뒤통수 조심’을 잊는 건, 아마도 전면 방어에 치중하다 보니 후면 방어에 약한 직업적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자리에 앉아 본회의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 9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수첩에 적어 놓은 본심을 데일리안의 베테랑 사진기자한테 털렸습니다. 홍금표 데일리안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김 대표의 수첩에는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과 무소속 한동훈 의원 옆에 ‘OUT(아웃)’이라는 표현이 적혀 있었습니다.
다른 페이지에는 ‘서울시장 후보’라는 문구와 함께 ‘훈식’ ‘원식’ ‘청래’라는 이름이 나란히 적혔습니다. 각각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우원식 전 국회의장, 정청래 전 민주당 대표를 의미합니다.
문구 자체만 놓고 보면 이진숙 의원과 한동훈 의원 ‘아웃’은 당사자들로서도 크게 기분 상할 일은 아닙니다. 상대 투수가 반드시 아웃시키겠다는 의지를 되새길 만큼 강한 타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김민석 대표 본인의 해석을 들어 보니 그냥 아웃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머리에 빈볼을 던져 다시는 경기를 뛸 수 없게 하겠다는 의미였더군요. 그는 10일 오전 ‘민주당 TV’에 출연해 “이 두 분(이진숙·한동훈)은 국회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한국 정치에 있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특히 ‘한동훈 아웃’에 대해서는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치부를 드러낸 공격수를 제거하겠다는 의지였음을 실토했습니다. “김승원 청문회와 관련해 본인이 공격자로 나섰지만, 한동훈 사건이 돼 버렸다. 그가 들고 나온 자료들이 다 내부 자료고, 유출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명백히 법적인 위반이 걸려 있다고 확신이 되는 상황이어서 국회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입니다.
현행 국회법에서는 국회의원을 제명하려면 국회 윤리위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이뤄져야 하지만, 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과반으로 최대 1년까지의 국회의원 자격정지가 가능하다며 구체적으로 이진숙·한동훈 의원을 ‘아웃’시킬 방법까지 제시했습니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이 지명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이른바 ‘오빠 게이트’로 인해 상당히 난처한 상황입니다. 프랑스 국빈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외교 성과를 자랑할 틈도 없이 ‘오빠 게이트’에 휘말려야 할 형편입니다.
‘오빠 게이트’를 여는 괘씸한(?) 일을 저지른 한동훈 의원을 이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김 대표가 나서 제거하겠다는 본심이 그의 수첩을 통해 드러난 겁니다. 메신저인 한 의원을 제거하면 김승원 후보자가 자신을 오빠라 부르는,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는 여성의 부탁을 받고 정부 부처 수장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 처리를 요청한 게 ‘청탁’이 아닌 ‘공익적 민원’이라는 어이없는 얘길 국민이 믿을 것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에 출마한 김민석(오른쪽) 후보가 17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회 더불어민주당 정기 전국당원대회에서 당 대표 당선이 확정되자 정청래 후보와 포옹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 대표 입장에서 곤란할 부분은 주군의 역린을 건드린 ‘한동훈 제거’보다도 같은 편인 ‘훈식·원식·청래’를 귀양 보내려던 본심이 들킨 일일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김민석 수첩’ 공개 직후 정청래 전 대표로부터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 “지난번에는 마이크 잡고 농락하더니 이번에는 수첩으로 때립니까? 불쾌합니다. 전당대회 때 네거티브로 그렇게 때렸으면 됐지, 전당대회가 끝났고 이겼으면서도 진 사람을 왜 자꾸 때립니까?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라는 글을 올리며 발끈했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극에 달했다 봉합되는 듯했던, 이른바 ‘친명-친청’ 갈등이 여전하다는 게 김민석 수첩이 털리는 바람에 재차 확인된 겁니다.
이 대목에서 김 대표 뿐 아니라 여권 전체의 본심도 드러났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논하고, 후보로 언급되는 걸 ‘구타’로 받아들이다니. 현 오세훈 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공직 상실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그렇게 해서 재선거가 열리더라도 승산이 높지 않음을 스스로 인정한 모양새입니다.
김 대표는 ‘민주당 TV’에서 “서울시장 선거와 강릉의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99.99% 있다고 본다. 그래서 기존 후보군에 새롭게 거론되는 분들을 그냥 쭉 적어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판 결과를 여당 대표가 99.99%까지 확신하는 걸 보면 입법부,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 선거판이 다시 마련되면 거기서 이길 자신은 없나 봅니다.
정치인들이 꽁꽁 숨기고 있었던 이 모든 ‘본심’을 사진 한 장을 통해 온 국민이 알게 됐습니다. 오늘도 대포카메라로 국회의원들의 뒤통수를 겨냥하고 있는 국회 사진기자들에게 다같이 응원을 보냅시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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