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식 "與 상대로 구걸하지 않겠다"
3선도 힘 싣는 '18개 상임위 포기'
소수 야당 한계 뒤집을 '입법 폭주' 공세
"與, 독식하면 총선 앞두고 악재 될 것"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 계단에서 열린 규탄대회에서 피켓을 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민의힘이 법제사법위원장직을 지키지 못할 경우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포기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민주당의 상임위 독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이를 통해 2년 뒤 총선을 겨냥한 '입법 독재' 프레임을 조기에 구축하려는 의도된 전략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민의힘은 29일 의원총회를 통해 법사위원장직을 양보할 수 없다는 총의를 모았다고 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특히 정점식 원내대표가 걸림돌 없이 원구성 협상에 임할 수 있도록 전권도 부여했다.
최 원내수석대변인은 "(3선 의원들 사이에서) 전체 상임위원장은 원내대표가 전권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되), 법사위원장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 협상을 진행하기를 바란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김성원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의원총회에서 법사위원장을 확보할 수 없다면, 우리 국민의힘은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포기하는 각오로 대응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며 "몇 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나눠 갖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국회의 견제 기능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구성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이유는 법사위원장직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국회 관례에 따라 원내 2당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내 1당은 본회의 개최 권한을 쥔 국회의장을, 2당은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한 법안을 체계·자구 심사를 통해 '게이트 키퍼'(문지기) 역할을 하는 법사위원장을 맡아 국회 균형과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 이재명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법사위 문을 닫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일하는 국회'를 위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여야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기름을 부은 것은 조정식 국회의장이다. 조 의장은 지난 26일 국민의힘이 상임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자, '임의 배정' 방식으로 구성한 명단을 통보했다. 그동안 여당이 18개 상임위 독식 가능성을 들어 압박에 나선 상황에서 조 의장까지 가세하자, 정 원내대표는 "상임위원장직 몇 개를 더 받아내겠다고 여당을 상대로 구걸하거나 간청할 마음이 없다.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보라"고 협상 보이콧을 선언했다.
현재 조 의장과 민주당은 30일 본회의를 개최해 원구성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 원내대표를 비롯해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이날 저녁 의장실을 항의 방문한 이후, 기자들과 만나 "본회의 개최를 공고하겠다고 한 부분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나왔다"며 "민주당의 본회의 개최 요구에 소집 공고까지 하고 다시 여야 간에 합의하라는 건, 협의가 안 되면 민주당 안대로 내일 본회의를 하겠다는 걸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18개 상임위원장직을 단독으로 처리할 경우, 국민의힘은 2년 이후 총선까지 상임위 주도권을 모두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내에서 상임위원장을 모두 포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소수 야당 입장으로선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민주당은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 전반기 국회에서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간 바 있다. 당시에도 민주당은 의석수 비율(11대 7)대로 예결위 등을 포함한 7개 상임위를 양보하겠다고 했지만, 주호영 원내대표는 "법사위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협상을 포기했다.
이후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대표적인 것이 임대차 3법과 공수처법이다. '입법 폭주'라는 국민의힘의 공세 프레임이 강화됐던 시기였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했지만, 18개 상임위원장을 맡은 지 1년 2개월 이후인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서울과 부산을 뺏기는 참패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여당의 독주에 대한 견제가 작용된 선거로 평가된다.
정 원내대표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2020년 18개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 권력을 독점했던 문재인 정부 말기의 오만과 독주가 그토록 그리웠나"고 언급했다. 당내 일부에서도 21대 전반기 국회처럼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할 경우, 역풍이 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6·3 지방선거 이후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의 평가가 냉담해진 상황인 만큼, 부정 평가가 누적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여당이 지난 1년 동안 힘자랑 한 거 빼놓고 잘한 게 뭐가 있나"라며 "또다시 힘자랑을 하겠다는 것인데, 일 잘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힘자랑하겠다고 나선다면 말릴 수 있겠나. 우리는 국민에게 여당의 독주를 알리고 저항하고 싸워나가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현재 다수당인 민주당에 맞서 국민의힘이 법안을 관철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오히려 '입법 폭주' 프레임을 통해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과정에서 중단시킨 '공소 취소 특검'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인데, 법사위원장을 확보한 채 특검을 통과시킬 경우 국민의힘 입장에선 정부·여당에 대한 공세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2년 뒤 총선에서 '정부 견제론'을 부각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독식을 예고하고 있지만, 지지율과 민심 때문에 쉽게 가져가진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진 상황에서 '독이 든 성배'를 마시진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실상 외통수에 몰린 것은 국민의힘이 아닌 민주당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이런 것들이 총선을 앞두고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공소 취소 특검 때문에 무리수를 두는 것 같지만, 21대 전반기 국회와 동일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당도 총선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가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이미 실패한 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가져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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