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김윤옥이 말하는 ´내 남편 이명박은요…´

입력 2007.12.18 09:52  수정

<데일리안 대선기획> ´유력 대통령후보, 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10·끝>

"밖에선 ´일벌레´지만 집에선 누구 못지 않게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

“이 후보가 무뚝뚝하고 냉혹한 사람인 것 같다고요? 일을 워낙 열심히 하다 보니 밖에 비춰지는 모습이 그런 거지, 실제론 나보다도 유머가 많고 농담도 잘 하고 재미있으세요. 집에선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빠고, 또 안사람에겐 잔소리보다는 따뜻한 말로 대해주는 분인데 그렇게 비쳐져 안타깝죠.”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에 대한 부인 김윤옥(60)씨의 평가는 한 마디로 ´일벌레지만 마음이 따뜻한 남자’다.

지난달 30일 여성정책토론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왼쪽)의 옷매무새를 부인 김윤옥씨가 고쳐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처음 소개를 받던 자리에서도 30분씩이나 늦고, 결혼식 날에도 ‘일 때문에’ 오후 1시로 예정됐던 예식을 4시로 미루고, 현대그룹 재직 시절엔 간염 진단을 받고서도 ‘일하다 죽겠다’며 병원에서 출퇴근하는 등 27년간 근무하면서 지각이나 결근 한 번 없었다.

그러나 가정에서만큼은 그 어느 남편 또는 아버지 못지않게 “다정다감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란 것.

“기업에 있을 땐 해외에 출장 가 있으면서도 애들이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에게 맛있는 김밥 싸달라고 해라’며 전화하는 양반이었어요. 시험 때도 마찬가지고.”

특히 그는 “이 후보가 어린 시절부터 노점상을 해가며 힘들게 살아온 탓에 어려운 사람들의 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며 “지금도 시장에 가면 뻥튀기든 붕어빵이든 자기가 손으론 만진 건 다 사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한다.

1970년 12월19일, 김씨는 23세의 나이에 이 후보와 결혼했다.

김씨에게 이 후보를 소개한 것은 친정 큰오빠.

부모님은 이미 김씨의 배필감으로 ‘검사’를 찍어놓고 있었으나, 큰오빠는 “주변의 아무런 도움도 없이 혼자서 이사가 됐을 정도면 동생을 평생 맡겨도 될 것 같다”며 설득했다고 한다(김씨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를 다녔고 이화여대 보건교육과를 나왔다).

당시 이 후보는 29세의 나이로 현대건설 이사에 올랐었다.

“선보는 날에도 늦게 나왔어요. ‘대단한’ 사람이죠. 보통 처음 만나면 ‘학교는 어딜 나왔냐’ ‘취미는 뭐냐’ 하고 묻기 마련인데 그런 얘기는 전혀 않고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좀 늦어 좀 급하다’는둥 다른 얘기만 하더라고요…. 그래도 얼굴이 동그랗고 앳된 게 지금도 동안이지만 그때도 귀엽게 생겼었어요.”

결혼 당시 이 후보는 경부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한창 바쁠 때였다.

때문에 결혼식도 이 후보가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후에야 할 수 있었다.

요즘처럼 ‘신랑 화장’도 없던 때라 이 후보는 이발소에서 머리만 깎고 식장에 나타났다고 한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왼쪽)와 부인 김윤옥씨의 1970년 결혼식 모습.

신혼여행은 제주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첫날밤을 손만 꼭 붙잡고 ‘그냥’ 잤다.

이 후보가 그간 격무에 시달린 나머지 밤새 앓아누웠기 때문이다.

“40도까지 오르는 열을 식히기 위해 찬 물수건을 갈아주면서 철렁대는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는지 몰라요. 얼마나 심하게 아팠던지 지금도 결혼 얘기를 하거나 당시 사진을 볼 때면 그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 후보 부부의 37번째 결혼기념일이자 올해 대통령선거일인 12월19일은 이 후보의 66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자칫 ‘기념일’을 잊어버릴까봐 생일날 결혼하자고 했다는데….

덕분에 이 후보는 매해 결혼기념일마다 잊지 않고 부인에 대한 고마움을 엽서에 담아 장미꽃과 함께 선물해올 수 있었다.

“서울시장 때 첫 월급만큼은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기업에도 있었고 국회의원도 했지만 공무원으로선 처음 받는 월급이었잖아요. 그런데 안 갖고 오더라고요. 시장은 봉사하는 자리라고.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봉사는 대가 없이 하는 것이라고 가르침을 받았다면서 한 번이라도 (월급을) 받게 되면 두 번째도 다시 받고 싶어져서 안 된다고 말이죠. 처음엔 좀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 뒤론 그 뜻을 이해하게 됐죠.”

평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일용노동자 출신의 자신이 대학을 가고, 대기업 CEO(최고경영자) 자리를 거쳐 시장까지 될 수 있었던데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도와준 ‘고마운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해온 이 후보.

서울시장 재임 4년간 자신이 받은 급여를 사고와 재해, 질병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환경미화원과 그 가족, 또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한 소방공무원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부해온 이 후보는 최근엔 자신의 재산을 대선 당락에 관계없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사람 똑똑한 것 하나만 바라보고 결혼했는데 막상 옛날에 못 살던 얘기를 들었을 땐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쌀 한 톨 없어 보리만 삶아먹고 그마저도 쉬면 찬물에 다시 씻어먹고. 그렇게 어렵게 살았으면서도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참….”

이 후보는 요즘도 냄비로 갓 지은 밥에 날계란과 간장을 넣고 비벼먹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반찬은 김치 하나면 족하다.

현대그룹 재직 시절 회사 행사에서 부인 김윤옥씨(오른쪽)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명박 후보.

“37년을 함께 살면서 단 한 번도 ‘부정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큰 회사를 (운영)하면서 자금난 등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잘 되니까 걱정 말라’고 좋은 일만 얘기하고. 나중에 부인모임에 나가서야 회사에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았죠. 왜 얘기 안 했냐고 물어보니까 ‘말이 씨가 된다’면서 ‘(일이) 안 된다’고 (얘기)하면 정말 안 되고 ‘잘 된다’고 하면 잘 되는 거라고 하더군요. 정말 그렇게 됐고요.”

어느 해인가 정초에 이 후보는 가족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서 컵라면을 맛있게 먹은 식구들은 날씨도 춥고 하니 내려가자고 졸랐건만 이 후보만 ‘안 내려간다’고 버텼다.

‘한 번 산에 왔으면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에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중도에서 포기하는 법이란 없습니다. 그런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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